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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ho Nov 15. 2024

쉬어버린 미역줄기를 먹으며

언제나 그렇듯 기한이 지나버린

늘 그랬다. 

나의 식탁엔 어느 새 유통기한이 지난 반찬들이 올라와 있었다. 

-오해는 말길. 나는 다리밑이 아닌 세브란스 병원에서 태어났고, 이 밥상은 내가 차렸다- 

 쉰 음식을 딱히 즐기진 않는다. 나도 사람인데 당연히 신선하고 막 만든 음식이 좋다. 


 왜 이렇게 되었는고 하니, '어쩌다보니' 내가 늘 한발짝 늦기 때문이다.

가족이 모두 식사를 하는 시간에 나는 뭔가 일을 하고 있다. 


"된장찌개 맛있게 끓였다! 얼른 나와!" 어머니가 외친다. 


"이따가 먹을게!" 

 외치고 나서 중독된 듯 다시 키보드를 붙들고 일에 빠져든다. 일이 끝나면 언제나 새벽 세 시, 네 시이기 일쑤다. 아까 뭔가 끓였다고 하지 않았나?  말라비틀어진 멸치나 눅눅해진 김, 배추는 없이 무채만 남은 김치 그릇 등등이 눈에 띈다.  이것이 나의 저녁상이다. 


내가 아는 한 가족들이 날 미워하진 않는다. 오히려 매우 사랑받고 있다. 내가 그냥 이 상태를 딱히 싫어하지 않(게 되었)을 뿐. 


비위가 좋은가보다 내지는 입맛이 무디네 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전혀 반대다. 

나는 생각보다 입맛이 까다롭고, 비위는 후각보다 시각이 앞설 정도로 약하다. 

그런데, 이게 싫으면 버리고 새 걸 먹으면 되잖아? 

아깝다. 

내가 천성이 뭔가를 버리지를 못하는 성격임을 알았다. 

아껴왔던 것을 내치지 못하는 성격. 추억을, 사람을, 시간을 저편으로 던지지 못하는 성격. 

그게 그냥 나였다. 


지금은 안다. 상한 것은 버려야 한다는 것. 유통기한이 지난 것은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 

아무리 좋아했던 것이라도, 사랑했던 것이라도 변해버린 다음엔 예전의 그 맛도 그 향도 아니다. 


곰팡이가 피어버린 포도잼은 오래된 택배상자 냄새가 났다. 그리고 뚜껑을 열자마자 회색가루가 날려 연거푸재채기를 했다. 

오래된 쌀독을 열었을때는 움직이는 검은깨들이 쌀 위로 버둥거렸다. 소름이 돋았었다. 

오래된 치즈는 푸르딩딩한 곰팡이가 민들레씨앗같이 하얀 솜털과 함께 여기저기 박혀 있었다.  

왜그런지 오늘 열어본 미역줄기 볶음은 허옇게 막 같은 것이 씌워져있었다. 

딱 일주일 전에 먹었는데... 


상한 것은 냄새가 난다. 뭔지 모를 이상한 존재들이 계속해서 번져 나간다. 먹으면 아니 될 일이다. 


상한 관계는 냄새가 난다. 움직일 때마다 서로에게서 나는 먼지에 코끝을 찡그리게 된다. 

잡았던 손은 바스라지고, 맞대었던 곳은 짓무르기 시작한다.  

더이상 상한 서로에게 맞대어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상한 것을 알았음에도 우리는 서로에게서 먼지가 날 때마다 숨을 참았고, 짓무른 곳을 무딘 칼로 버혀내며 다시 맞대보려 애썼다. 


하지만 서로는 알고 있다. 이 관계의 유통기한이 이미 지났다는 것을. 

그 독기를 다시 머금으며 이런 맛도 사랑이라고 생각한 우리는 격하게 배앓이를 하고, 화장실을 밤새 들락날락거리면서도 여전히, 예전에 맡았던 향기를 서로에게서 기대한다. 내 비위는 이정도는 견딜수 있다며 스스로를 속인다. 


오늘 다시, 오래된 요거트의 뚜껑을 열었다. 

오백미리리터 중에 두 스푼 밖에 먹지 않았는데. 또 다시 물이 고이면서 시큼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먹지 뭐 

아니야 그러지 말까 

꿀을 넣으면 괜찮아 진다

아니야 또 배탈이 나려고 그래?

조금 향이 진한 잼을 넣어보면 되잖아 

아니야 이건 그냥 버리는게 맞는 것 같아


나혼자 읖조리다가 

그대로 싱크대에 요거트를 엎었다.


얼굴에라도 바를걸 

뒤꿈치에라도... 


그 짧은 순간 또 한 웅큼의 후회가 뒤통수를 둥둥거린다. 

상한 요거트는 청소에도 쓸수 있.


버려. 아니야. 


새 요거트를 사러가자. 


그럴까. 그러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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