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변하면 억울하지 않겠음?
오랜만의 통화에 어머니가 대뜸 놀라며 하신 말씀.
아니 엄마, 그러면 내가 생판 다른 땅에 와서 일 년을 거진 있었는데
생활도 고대로, 말투도 고대로, 몸무게도 고대로 (이면 좋았으련만) 이면 쓰겠어요?
이 반응이 놀랍지도 않은 것은 시시각각 변하는 나의 마인드 셋이며, 가치관, 태도를 나 스스로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엄청 난 발전 아닌가?
이방인 생활 9개월을 찍은 이 시점에
나에게 생긴 크고 작은 변화들에 대해 기록해 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다.
우선은 후져진 (?) 것부터 시작하자. 겸손하게.
1. 벌크 업
- 본래 의미의 벌크업은 좋은 것인데, 나의 경우는 불필요한 지방들이 벌크 업 된 케이스. 영국 유학 다녀온 지인이 영국 가면 먹을 거 없어서 살 빠질 거라고 했는데... 아마 이건 의지의 차이인 것 같은데
친구: 아, 뭐야 맛있는 것도 안 팔고 먹을 게 없네. 굶자.
본인: 아, 뭐야 맛있는 것도 안 팔고 (비싸고) 먹을 게 없네. 만들어 먹자. 의 차이이겠지.
외식을 매번 할 정도로 형편이 고급지지도 못하거니와 몇 번 사 먹은 음식들이 대부분 값에 못 미치는 만족도를 선사했기에 나는 그냥 하루 두 끼를 만들어 먹기로 결정했다. 물론 이에 쏟는 정성과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들긴 했다. 그리고 스스로 만들어 먹다 보니 양도 자꾸 늘어난다. 분명 아까 브런치를 자셔 놓고서 점심에 뭔가를 찾아 헤매는 나를 발견... 그리고 워낙 밀가루 음식과 단 후식이 많은 나라다 보니 호기심 많은 나는 하나둘씩 도전해 보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 뉘를 탓하랴.
2. 자기 합리화 달인이 되어 감
- 이건 좋은 것이기도 하고 나쁜 것이기도 한데, 한국에 있을 때 보다 외부활동에서 쉽게 지침을 느끼는 나를 종종 발견한다. 물론 시간이 갈수록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마도 나의 본래 언어가 아닌 영어로 대화나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데 있어서 적지 않은 텐션과 스트레스를 (모르긴 몰라도) 받고 있는 거겠지? 알아들으려 기를 쓰는 것도 있을 거고...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사실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만 싶다. 그러면서 죄책감이 몰려올 새도 없이 생각한다. ' 당연하잖아. 타지 생활인데 당연히 피곤하지. 쉬어도 돼. 응당 그래야지.' 그리고 이 생각은 위의 1번으로 이어진다. '힘들었으니까 먹어도 돼...'의 악순환.
3. 기웃거리고 도전한다.
- 이 역시 장단점이 있다. 한국에서와 달리 모든 정보가 내가 직접 찾아먹지 않으면 누구도 떠먹여 주지 않는 구조라- 한국에서는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식, 정보통이 있었지만 여기서의 나의 인간관계는 그에 비해 다분히 제한적이기에- 어딜 지나가다가 벽에 붙은 공고, 홍보, 메일로 오는 기회들을 엄청 눈여겨보게 된다. 학생일 때에 할 수 있는 많은 워크숍, 프로젝트, 공모 등이 이런 나의 눈썰미로 찾아졌다. 나중에 이 이야기만 따로 풀어도 좋을 정도로 나는 이 '기웃거리다 운 좋게 얻어걸린' 좋은 기회와, 그로 인해 알게 된 사람들이 많았다.
1) 뭔지도 모르고 개강 첫 주에 나가본 영어 writing세션에서 하라는 영어는 안 쓰고 봉사 학생과 이야기 하다가 데이비드 아텐보로 경 (구글 해보시라!)를 알게 되었다. 이런 위대한 분이 계셨는지 난 몰랐지.
2) 기숙사 생활이 적적하여 나갔던 마인드풀 쏘잉 (마음 챙김 바느질) 클래스에서는 랭커스터에서 다시없을 나의 소중한 현지 어머니즈가 생겼다. 현지에서의 보호자 번호를 요구하면 두말없이 자기 번호를 써내라고 하신 두 이탈리아 할머님들. (이라고 쓰지만 나의 모친과 정확히 동갑이신... 엄마 의문의 1패 미안)
3) 베드버그 물려서 벅벅 긁으며 찾아갔던 병원 게시판에서 '12주 코스 온라인 다이어트 세션 (무료!)을 발견하고 등록했다. 12주 동안 주 2회씩 편지와 운동 링크를 보내주는데, 계속 챙김 받는 느낌이 쏠쏠하다. 12주를 무사히 마치면 우리 집 앞의 GYM 3개월 이용권도 준다. 와우! 병원에 안 갔으면 몰랐을 거잖아? 럭키비키 잖아?
4) 학교 화장실에 붙은 심리학과 실험공고에 지원하여 용돈도 탔다. 약 30분짜리 컴퓨터 설문인데 게임 같이 잘 진행하면 용돈벌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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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수 없다. 한국에도 물론 많은 기회들이 있지만 어떤 사람들이 오려나, 날 아는 사람들이 오려나, 등등 생각이 많아져서 결국 결정을 못 하고 놓친 일이 많았는데 여기서는 날 아는 사람이 있을 리도 없고, 외국인인 나에게 기본적으로 매우 친절하게 내용을 알려주고 이끌어 주는 경우가 많아서 마음 편히 모두 등록한다.
4. 자꾸 감사하게 된다- 특히 작은 것들에.
- 여기서 얻은 크나큰 소득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사실 상황은 한국과 다를 게 없다. 좋은 사람들, 좋은 환경에서 부족함 없이 지내는 건 그곳과 여기가 다르지 않다. 아, 물론 형편이 조금 많이 부족하긴 하다. 하하.
하지만 어쩐지 모르게, 사나흘을 찌푸리던 하늘이 갑자기 언제 그랬냐는 듯 파랗고 맑아진 유리 같은 아침을 선사하면 "Thank God" 이 절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날이 좋으면 어디건 좋은 거 아니냐고? 아니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주로 햇빛을 싫어하는 편이었다. 한국에서 햇빛은 곧 기미, 주근깨, 주름... 피해야 할 1순위이다. 태양을 피하는 법이라는 노래까지 있지 않은 가.
그러나 이곳의 하늘은 나를 무장해제 시키는 엄청난 힘이 있다. 랭커스터의 특징이겠지만 높은 건물이 없이 환하게 트인, 여기서 저- 멀리 사오십 분 거리의 공원까지 한눈에 보이는 시야와 함께 이런 빛나는 날씨에 화답하듯 형형 색색, 가지 각색의 모양과 향기로 나를 정신없이 홀리는 수많은 꽃과 나무들이 있다. 나는 내가 식물에 이렇게 관심이 많은지 몰랐다. 아니, 걸어가는 족족 새롭고 아름다운데 어떻게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가 있어.
내가 슈퍼마켓에서만 보던 블랙베리, 구즈베리, 라즈베리 같은 것들이 지천에 깔려있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갈 수 있어? 어? 저기는 로즈 힙이 열렸네, 어, 이건 양귀비, 저건 사과잖아? 식물 대백과 사전에나 있을 것 같은 녀석들이 그냥 학교 등굣길에 보이고, 나는 꼭 동화책 속에 있는 것만 같다. 구악구악 대며 나를 경계하는 거위 가족이랄지, 호기심 어린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는 조랑말 같은 것도 도시의 삶에서는 볼 수 없던 보석들이다.
그것이 꽃이든, 나무이든, 열매이든, 혹은 동물이거나 향기이든 나는 그들과 안녕하며 꼭 감사를 보태게 된다. 이곳에 있어서 감사해. 볼 수 있어서 감사해. 내일 또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해.
그러다 보면 이곳에 와 있는 나의 상황을 또 한 번 깨달으며 저 멀리 높은 곳에 계신 분께 도 한번 감사하게 된다. 어떻게 나를 이 먼 곳까지 이끄셨을까? 감사함을 배우라고 그러셨을까? 어떤 이유에서였든, 꽤 성공적입니다. 감사해요.
5. 칭찬하게 된다.
거리를 지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마트에서 마주친 할머니, 혹은 아이들과도 짧은 농담이나 인사를 건네다 보면, (아주 소수의- 두려움이 느껴져 피해야 하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꼭 한 다리 건너 아는 지인처럼 느껴진다. 나를 스쳐 지나가는 한 여성의 귀걸이가 너무 아름다워 눈길을 빼앗겼다면, "와, 당신 귀걸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라고 칭찬하면 된다. 누구도 해하지 않고, 그녀는 더욱더 빛나는 얼굴로 오늘 하루를 살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자리를 양보했다면, 나는 마음을 담아 큰 감사함으로 그에게 축복을 빌어준다. 버스를 타고 내리며 감사와 운을 빌어 주는 일, 문을 잡아준 앞사람에게 고마운 인사를 건네는 일, 내 품에서 쏟아진 사과를 주워준 청년에게 사과 하나를 내미는 일, 거리에서 노래하는 기타리스트에게 나에게 남은 모든 동전을 선사하고 함께 노래를 흥얼거리는 일, 버스 옆자리의 모르는 사람에게 "오늘 날씨 엄청 좋지 않아요?"라고 싱글벙글 웃는 일. 같은 것들이 처음엔 그렇게 낯설었지만 이제는 자연스럽다. 같이 행복한 하루가 되고, 같이 촉촉해지는 기분. Why Not?
6. 인내심이 커진다.
- 아마도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가진 그릇이 작은 나는 작은 일에 화나거나 삐치는 일이 많았다. 제때 답을 안 하는 친구, 약속을 까먹는 친구, 늦게 도착하는 택배며 시끄러운 버스, 냄새나는 정류장, 작동을 멈춘 드라이기 등 세상 모든 게 불편하고 짜증이 났었다. 나는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한국이 저런 나라여서 내가 답답하다고 느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그 생각은 어느 정도 유효하다) 그렇지만 결국 내가 마음먹는 대로 내 주변이 보이게 마련이다. 이곳에 와서 부딪힌 엄청난 불편 - 느려터진 와이파이, 일주일을 기다려 받은 택배, 제시간에 안 오는 버스, 앞사람이 물건을 전부 집어넣고 떠날 때까지 다음 사람의 계산을 시작하지 않는 마트 계산원 등 세상 모든 게 천천히 흘러가는 이곳에서 누구도 아닌 나 혼자만 화가 나 있었다.
'왜 저러는 거야?' '엉망이네 진짜' '도대체 왜 이렇게 느려 터진 거야?' '서비스 정신이 틀려 먹었네'
이런 모든 생각들은 결국 나를 갉아먹는 것들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내 탓이오 하는 도인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저 '응 그렇구나' 하는 마음이 나의 한편에 자리 잡았을 뿐이다. 각박하게 누군가를 몰아붙이고, 옥죄고, 나의 방식을 들이밀며 그게 아닐 거면 꺼져라고 하기보다는, (부끄럽게도 어릴 적 내가 그러했었다) 아하, 이 사람은 이런 모양이고 저 사람은 저런 모양이구나를 인정하고, 나 역시 그들에겐 이런 모양이겠지.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배우며, 서로를 인정하며 성숙해져 가는 거겠지.라고 천천히 삶을 걸어가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참으로 자연스럽다. 억지로 밀어내거나 억지로 당기는 관계도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또 연결되는 것이다.
이렇게 쓰다 보니 알겠다.
나, 변했네.
안 팤으로 넓어지고 있네. (울음)
잘하고 있네. 그러고 있었네.
이곳을 떠날 때쯤엔,
밀가리 반죽처럼 죽 죽 늘어나 있을 내 그릇을 한번 기대해 보아도 좋겠다.
아, 따수운 멸치 국물에 잘게 썰린 애호박 들어간 수제비 먹고 싶다.
(사진이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