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명: K 오이김치를 전파하라

정신없는 부엌에 고춧가루 뿌리기

by Siho

"시호, 그 큐컴버 킴치는 도대체 무슨 맛이야?"

훗. 그냥 하나 달라고 해 임마.


내가 매 끼마다 신주단시 모시듯 꺼내어 아그작아그작 먹곤 하는 오이김치가 그들 눈엔 그렇게 맛있어 보였나보다. 물론! 내가 오이김치는 좀 담그지... 가 아니라, 감사하게도 근처 중국마트에 오이소박이 양념이 입고된 것!!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늘 떨이 세일중이다. 본디 3파운드 (5500원)가까이 하는 것이 늘 2천원 수준이니 안 사고 배길수 있나.


처음 이 양념을 사서 집에 왔을땐 아하! 왜 인기가 없었는지 알겠더라. 김치를 담그는 양념인데 고춧가루를 제외한 모든 재료(사과, 마늘, 생강 등..)가 들어 있는 것... 오이만 사면 되는 것으로 오해한 외국인들이 이걸 샀다간... 낭패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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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아님... 홍보 아님 내돈내산

성분은 영어로 잘 쓰여있는데 요리법은 한국어로 되어있어서 그렇다. 그림엔 뻘건 양념이고... (새미네 부엌 관계자님 이거 보시면 수출용 양념 라벨제조시 참고해주세요) 그렇지만 나는! 무려 한국에서 빻아온 고춧가루 보유자 아닌가?? 고춧가루 팍팍 넣고 하루만 재우면 오이김치가 되니 이렇게 편리할데가...


그런데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가하면 그렇게 아껴아껴 먹던 배추김치가, 이 오이김치가 내 냉장고의 한켠을 자리 한 뒤로 세상 찬밥이 되어 얼마 전 열어보니 거의 묵은지가 되어가고 있다. 그는 그대로 김치찌개 끓여먹고 볶음밥 해먹고 그랬으니 제 몫을 다했지만. 내가 김치를 묵힐 줄이야!


사실 오이 김치를 냉장고에 넣어두면서 걱정이 없진 않았다. 워낙 잘 빠지지도 않는 특유의 냄새 때문에 열때마다 존재감이 확실한지라. 그런데 다행히 나와 냉장고를 공유하는 불가리아 친구 NAS는 이 발효취를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는거다. 아니, 좋아하다 못해 결국 오이김치를 한입 얻어 먹더니 눈에 별이 뿅! 해서는 "이거 너무 프레쉬하다! 진짜 맛있어!!!! 얼른 레시피 내놔!" 라며 나를 조르기에 이르렀다.


레...레시피??


"그래! 시호! 한국인들도 각자 집마다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머니들만의 김치 레시피가 있지? 혹시 그게 시크릿이면 안 가르쳐줘도 돼. 존중할게!!" 그런데 너무 맛있다아~"


어, 어머니. 어머니만의 김치 레시피랄게 있었나요? 한국인의 전통 레시피는 '만개의 레시피' 아니었나요..


그러나 저러나 나는 레시피도 뭐도 없이 그냥 저 시판 양념을 사용했기에 조금 민망해졌다. 사실대로 고해야 하나. K-부심이 깎여 나가는 순간이다. 에이, 그래도 저 양념을 마늘부터 양파며 사과며 다 갈아서 언제 해. 매일 세상 피곤하다고 투덜대는 NAS 에게는 사실대로 이실직고 해도 될 듯.


이거, 아시안 마켓에서 파는 양념이야. 엄청 간단해! 고춧가루만 넣으면 돼!


"오, 그것 정말 편리한데?? 당장 박스채 쟁여야겠어. 어디야!"


좀처럼 행동력이 없는 NAS가 이 정도로 나설 때에는... 빈말이 아닌 진짜로 맛있어서 일터다.

다음 날, 나는 슈퍼에서 파는 양념과 고춧가루 한 통, 그리고 오이까지 준비한 채 나를 기다리는 NAS를 부엌에서 마주쳤다.


" 시호! 지금이야! 시간 돼지? 어서 전수를!!"

아니 전수랄게 있나.. 그냥 양념 넣고 버무리면 되...


K- 손맛을 기대하는 것 같은 똘망똘망한 눈초리에 나는 어쩔수 없이 다라이 (전문용어 바케스)를 꺼내왔다.


자. 지금부터 이 양념에 고춧가루를 넣고 섞는거야. 내가 할테니 너는 오이를 큼직하게 썰라.

소위 한석봉의 어머니에 빙의한 듯 녀석은 오이를 탕탕탕 예쁘게도 잘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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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마침 누리 선뱃님(다시 한번 감사!) 에게서 얻어온 유기농 부추가 있었다! NAS 너 이녀석 오늘 계 탄거야! 이거 정말 귀한 거라구! 나는 부추도 송송송 썰어 넣어 주었다.


IMG_2303.HEIC 저 멀리서 Matt도 오이김치 클래스에 오며들고 있다


안그래도 좁아터진 부엌이 오이 김치 클래스로 바뀌자 그렇게 떠들썩 할 수가 없다. "나는 김취 싫어함!" 이라고 딱 등을 돌리던 Matt도 오이김치를 한 입 먹더니 갑자기 우리에게 상냥(?) 해졌다.

이쯤되면 오이김치 전도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그런데 NAS 가 갑자기 파를 꺼내오더니 함께 썬다.

오, 뭘 좀 아는데?


tempImageLg2v6k.heic 에미야 간이 짜다


나는 비닐장갑을 하나 주고 마무리 작업을 시켰다. 옆에서 훈수를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데헤-이, 그렇게 막 주무르면 오이가 물러지잖아. 약간 덖듯이, 아니, 그러니까 약간만 섞으면서..."


마치 시어머니가 관찰하듯 면밀히... 그러나 열심히 잔소리를 시전하고 보니 어느새 겉절이 오이김치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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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노스의 손이다! 를 연발하며 신나하는 걸 보니 별로 힘들지 않았나보다. 우리는 다 만들어진 오이김치에 비닐을 씌워 하루 동안 숙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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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 ! 이것봐. 물이 생겼어. 잘 숙성되고 있는 거야!!! "


"야호!!! 신난다!! 나 이거 정말 매일 매일 먹을거야. 옴뇸뇸"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설마 매일 먹으랴... 거의 3주치는 만든 것 같은데.

나는 냉장고를 열 때마다 남은 양을 확인했다. 혹여 마음에 안 들어서 계속 같은 양이 남아있다면 "내가 대신 먹어줄게~" 하며 슬쩍 덜어올 요량으로. 그런데 이게 웬 걸? 만든지 3일밖에 안 지났는데 오이가 딱 3조각 남아있는 거다. 뭐야 이게?


[나스, 너 오이김치 네가 다 먹은거야?]

나는 텍스트를 보냈다.


[오, 시호. 그거 너무 맛있어서 내가 계속 덜어먹다가 거의 다 먹었지 뭐야 하하하]


[이런, 한번에 그렇게 많이 먹으면 배탈 나]


[응...안그래도 오늘 아침에 엉덩이가 좀 많이 힘들어(?) 했어...]


앗, 거기까진 안 말해줘도 돼. TMI.



여하튼 나의 K-오이김치 클래스 미션은 또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렇게 믿었는데,


tempImageslC01W.heic 이녀석이 바로 이전 브런치북에 나오는 ED



"시호, 이건 뭐야??? 토포키???"


오우, 이런...

그대, K-분식 편을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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