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하는 본업 이야기
"뭍 아래의 삶 - Life Below"는 논문을 위한, 나의 이틀 간의 공연이었다.
나는 현재 9월에 제출할 논문 [이머시브 공연이 감응(Affect)을 통해 어떻게 생태감수성에 기여하는가]를 Autoethnography: 연구자 자신의 경험을 탐구/탐색해 그 경험을 드러내고 분석하는 방법론으로 작성 중이다. PaR- Practice as Research라는, 실험 혹은 공연을 토대로 논문을 쓰고 있는 중이라 가능한 일이다. 논문에 공연을 포함할 수 있다니! 신이 났었다.
얼마 전 끝난 이 공연의 도입부는 이렇다.
검은 공간에 하얀 의자. 그리고 그 위에 앉은 나에게 쏘아지고 있는 스포트라이트.
"제가 다섯 살 때 일이었어요.
감기약을 타러 어머니와 간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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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실제 이야기다.
다섯 살 때, 엄마의 손을 잡고 감기약을 타러 갔던 병원에서
커다란 어항을 처음 보았다. 너무나 신기해서 가까이 얼굴을 대고 물고기들을 관찰하고 있었는데, 물고기들이 나에게 모여들었다. 한 명 한 명 인사를 하듯 유리를 툭 툭 치고 사라지는 모습.
하늘하늘 거리며 내 눈앞에서 꼬리를 흔드는 모습이 어쩐지 나는 너무 익숙했다.
"엄마, 우리 여기 온 적 있어요?"
"아니, 처음 온 것일 텐데. 왜?"
"나 이 느낌이 너무 익숙해요. 엄마! 나 인어였나 봐!!"
희한하게도 우리 엄마는 그 이야기를 웃기다고 생각하거나(적어도 내 느낌에는) 헛소리 말란 식으로 반응하지 않으셨다. 대신 조용히 웃으시면서 "그럴지도 모르겠네"라고 하셨다.
그때부터였다. 나에게 물속의 삶이 있었다고 믿게 된 것은.
원하던, 원하지 않던 나의 삶은 계속해서 물, 바다와 연결되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바다 앞에 서서 편안함과 먹먹함, 그리고 왜인지 모를 슬픔을 계속해서 느꼈다. 오염으로 인해 바다가 앓고 있는 일이 저 멀리 옆 동네일이 아닌 나의 일처럼 느껴진 것도, 내가 언젠가 다시 돌아갈 곳이자 내가 비롯된 곳이라고 느껴서 인 것 같다.
아무튼 저 어린 날의 기억은 아직도 나에게 생생히 남아있어 나는 [박인어씨 (Park in a Sea)]라는 개인전도 제주에서 열었었다.
조금 부끄럽지만, 당시 전시를 자세히 다룬 기사가 있어 올려둔다 (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27822&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오마이뉴스 2022. 04.22 황의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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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허설에서 교수님은 나에게 물었다.
- 시호, "Mom, I think I was mermaid before I was born!(엄마, 나 태어나기 전에 인어였나봐!)" 라는 대사가 조금 신경쓰여. Mermaid 라는 표현을 한국 말로는 뭐라고 해? -
- Inno 라고 해요. 인어.
-음.. 그러면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Mom, I think I was 인어 before I was born, water spirit! the mermaid!" 이렇게.
- 한국말로 그대로 '인어'라고 하라고요? 알아들을 사람이 있을까요?
- 상관없어. 너는 한국인이고, 이건 너의 이야기잖아. 네가 처음에 어떤 단어로 이야기 했었는지 말 한다음에, 부연 설명으로 '물의 정령, 물의 영혼말이에요! 인어요!' 라고 덧붙이는 게 좋을 거 같아. 바로 Mermaid라고 하면 사람들은 바로 만화에 나오는 인어공주, 혹은 소설속의 사이렌을 떠올릴거라고. 너의 소중한 물의 경험과 전생의 기억이 사람들에게 그런 소비적 이미지로 Shift되어버리는 건 정말 별로인 거 같아.
전에 없이 강경하게 말씀하시는 부분에 나도 공감이 갔다. ' 나 전생에 인어였어요' 라고 하면 풉. 니가? 라고 비웃을 것만 같은 사람들의 모습도 떠오른다. 왜 인어는 어떠한 모습이어야만 하는가? 물론 나는 디즈니의 인어공주를 너무 사랑하고 못해도 골백번은 봤겠지만, 그 이미지가 너무 강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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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공연 이야기로 돌아오자.
이 공연은 관객들이 퍼포머인 나를 따라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때로는 참여도 하거나 앉을 수도 있게 구성했다. 바다를 느끼게 하기 위한 소소하지만 다양한 장치들도 두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지 하필이면 대사도 거의 빈 공간이 없이 써져 거의 25분짜리 모노로그가 되었다. 왜 그런 거야!!!
나는 열심히 준비했지만 역시나 남의 나라 말로 하는 공연은 처음이라 알게 모르게 계속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슈퍼바이저인 Andrew교수님은 공연일자가 다가올 때마다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나에게
"쫄을 거 하나도 없다. 이거 (돈 받고 하는) 정식 공연이 아니라 그냥 논문의 일환으로 하는 '실험' 인걸 기억해. 전혀 완벽할 필요가 없는 중간 과정 공유야"라고 누누이 일러주셨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창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중간 과정을 보여주면서 "지금까지 이랬고요- 그냥 과정 공유예요 하하. " 할 수 있단 말인가. 애초에 쇼케이스라는, 과정 공유의 형식이 있지만 그것 조차도 리허설에 가깝지 과정공유라고 하기엔 정말 많은 연습과 노력이 있어야지 않나.
또한 Cami교수님은 자꾸 완벽을 추구하는 나에게 "제발, 거지 같은 것을 만들어내는 걸 두려워하지 마!"라고 일침 하셨다. Crap에서 나오는 소중한 경험과 인사이트를 무시하지 말라면서. 그런데 거지 같은 걸 어떻게 남들에게 보여주냐고. 나는 한국인이란 말이다. 가능하지도 못할 지나친 완벽성을 추구하는.
몇 날을 울고 짜고 하면서 계속 나는 나에게 가까워졌다. 살이 쪄서 다이빙 슈트가 엄청 끼이는 것도 더없이 불만이었는데, 그런 것들이 뭐가 중요하랴.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남의 평가에 쩔쩔매고 신경 쓰는 건 정말이지 발로 밟아 짓이겨 버리고 싶은, 혈관을 40년이 넘게 타고 흐르는 한국인의 정신이다. 그걸 버리려고 여기 온 게 아닌가?
정말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보인다면 그걸로 됐다고 스스로를 다잡기까지 거의 열 흘 넘게 걸린 것 같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에 참 많은 과정이 들어갔다. 이 과정이 다 논문에 담길 것이다.
처음엔, 전혀 물이 없는 곳에서 바닷속의 다이빙을 재현한다는 것이 다소 허황되게 들렸다. 본디 수영장을 빌려서 하려던 공연인데. 관객들이 물속의 편안함과 내가 느낀 무언가를 함께 가져가길 바랐는데. 그런 저런 고민을 할 때 Cami교수님이 한 마디 하셨었다. 공간보다는 에센셜을, 메시지를 우선 고민하라고.
"시호, 무대의 힘을 믿어"
그리고 나는 그 힘을 믿었다. 약 25분의 퍼포먼스는 땀을 뻘뻘 흘리며, 그러나 양일간 무사히 진행되었다.
과연 관객들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해했을까?
공연이 끝나고 피드백을 받았다. 느낀 점을 내가 기존에 준비한 65개의 단어에서 골라 시로 적어내는 다소 창의적인 방식을 차용해 보았다.
많은 작품들이 나왔지만 관객 두 명이 오랫동안 고민하고 적어낸 이 두 편의 시가 기억에 남는다.
관객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오랫동안 로비에 앉아 바다에 대한 추억을 나누며 상념에 촉촉이 젖었다. 어떤 관객은 어릴 때의 기억 때문에 물을 무서워한다고 했는데. - 그리고 사실 이 부분이 전시+공연을 준비하며 가장 고민한 부분이기도 하다. 물에 대한 트라우마나 공포가 있는 사람들이 공간을 무섭게 느낄까 봐.
그러나, 나의 우려와 달리 그녀는
"시호가 이렇게 느낀 바다라면, 나도 이제 한번쯤은 다시 바다와 친해져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라는 피드백을 나에게 전했다.
어휴. 또 울컥.
그리고 또 한 명의 관객은 시를 만든 종이 뒤에 나에게 메모를 남겨주었는데,
You paced it beautifully + held us so confidently.
The breath work is powerful + unifies us in the experience.
Which means we came with you in both your joy and your grief.
You are a warrior, a sage and a mermaid.
Thank you.
Shila xxx
해석하면
당신은 전체의 리듬을 정말 아름답게 이끌었고, 우리를 아주 든든하게 감싸 안았어요.
함께 한 숨쉬기는 강력했고, 우리 모두를 하나로 이어주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당신의 기쁨 속에서도, 슬픔 속에서도 함께할 수 있었죠.
당신은 전사이자, 현자이자, 인어입니다.
고마워요.
— Shila xxx
그래, 나는 이런 순간을 위해서 무언가를 만들고, 관객들을 만나는 거였지.
뚱뚱하건, 한국인이건, 키가 작건, 안 예쁘고 나이가 들었건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지.
너무 보이는 예술에만, 있어빌리티에만 익숙했던 나를
또 한 번 이렇게 깨고 나온다.
어이쿠, 나 또 울어.
괜찮아, Andrew교수님이 그랬어.
물에서 비롯된 너니까, 계속 눈물을 흘리는 것도 당연하다고. 부끄러워 말라고. 당연하다고.
'인어' 니까.
*Andrew 교수님은 "인어 - Inno"라는 발음을 배우신 후로 저 멀리서 나를 발견하면 이노! 이노!라고 부르시는데. 뭔가 또 울컥.
*표지 그림은 AI를 이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