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살이 된 느린아이

40대의 육아란? 남들보다 10년늦게 아이키우기 #4

by 시휴

우리아이는 3살에도 여전히 말을 잘 하지 못했다. 나의 속은 점점 타들어져 갔다. 왜 우리아이는 입을 열지않는 것인지... 왜 문장으로 말을 하지않는 것인지.... 가 내 최고관심사였고 해결되지 않는 난제였다. 게다가 말만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아이는 그때까지 기저귀를 떼지 못했다. 나는 18개월때부터 무던히도 기저귀를 떼는 배변훈련을 시켰는데 이 녀석의 고집은 황소 저리가라여서 배변훈련이 도통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남들은 말도 척척하고, 배변훈련도 한두번만 시키면 아니 한달정도만 시켜도 다 된다는데... 우리애는 아니었다. 그 유명하다는 호야배변영상도 보여주고 배변관련 그림책도 사서 보여주었지만 만사가 허사였다. 워킹맘도 아니고 전업맘이니 뭔가 아이가 발달에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내 마음과는 다르게 뭐든 순순히 따라와주지 않는 아들녀석이 나는 점점 원망스러웠다.


그 때 마침 남편이 중국주재원으로 발령받을 기회가 생겼다. 선진국으로 가는건 아니었지만 대신 조건이 좋았고 나는 한국에서도 아이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으므로 중국에 가는게 어쩌면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했다. 한번도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는 나에게는 일종의 타국살이에 대한 로망도 있었으며 혹시 아이가 한글,영어,중국어의 3개국어를 할수도 있다는 큰 꿈도 전혀 없었다고는 못하겠다. (현실적으로 아이는 한국어도 안하고 있었는데 내 나름대로는 꿈이 컸다) 내가 적극적으로 동의의사를 밝히자 중국주재원으로 나가는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사온지 얼마 되지않아 전세를 또 빼야되는 바람에 날짜가 맞지않아 남편이 먼저 중국으로 나갔어야 했지만 몇달이후 나도 역시 아이와 함께 중국으로 가게되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중국은 베이징과 상해가 전부였던지라 우리가 가서 살게 될 대련이라는 곳은 내게는 참 생소한 곳이었다. 그래도 아주 소도시는 아니라고 들었는데 그 곳의 첫 모습은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사실은 한국식 어린이집(놀이학교 비슷함)이 단지내에 있었고 대학동창 중 한명이 근처에 살고있어서 그 친구에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대학시절 친하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중국에서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그녀는 내게 물심양면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어린이집에 가게된 아이는 나름 <한국식 어린이집>이라고 하지만 정작 한국인은 한명이고, 많은 중국인선생님들과 함께 생활하는것을 힘겨워했다. 그 어린이집의 3-4살 중 기저귀를 떼지못한 아이는 우리아이 한명뿐이었고 한달을 아이들의 배변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는 내게 어느 날 더이상 기저귀를 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다. (진짜 말 그대로 선언이었다. "나 오늘부터 담배안필거야"같은)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밤에는 혹시 모르니 기저귀를 차고 자자고 했다. 하지만 녀석은 "안 하겠다고 했잖아"라며 기저귀를 뗀 그 날부터 소변,대변은 물론이고 밤에도 실수한번 하지 않는 모습으로 나를 놀라게했다. 기저귀떼기는 드라마틱하게 이루어졌지만 아이는 여전히 말을 길게는 하지 않았다. 아이는 3살 초반만 해도 많이는 아니지만 가끔씩 밤중에 젖병을 먹기 원했는데(일종의 밤중수유같은) 기저귀를 뗌과 거의 동시에 밤중젖병수유도 중단했다. 나는 아이의 결단(?)으로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어린이집에서 참관수업이 있던 어느 날, 내가 가서 본 놀라운 광경은 중국인 선생님들이 중국어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중국어도 영어도 전혀 모르는 아이가 과연 이 수업을 잘 들을 수 있을까 나는 염려했고 그 우려대로 우리 아이는 드러누워서 율동이든 합창이든 전혀 하지않는 모습으로 나를 경악케했다. 다들 고사리같은 손을 들고 열심히 선생님의 발음을 따라하는 아이들속에서 우리애는 단연코 튀었다. 내가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랄 때 모범생이었던 나로서는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긴 좀 힘들긴했다. 하지만 나름 아이가 스트레스가 있을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내 마음을 다독였다. 현실적으로는 우리 아이가 공부를 못할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한 첫 시점이기도 했다.


(4살에서 계속)

keyword
이전 10화2살이 된 느린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