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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이 된 느린아이

40대의 육아란? 남들보다 10년늦게 아이키우기 #6

by 시휴

우리는 어렵게 한국으로 다시 컴백했다. 그리고 2년간의 공백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컸다. 아이가 중국어에 익숙해지는 댓가로 잃은것은 그만큼의 한국어노출이었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한국어에 꾸준히 노출되면서 자연스럽게 익힌 어휘력과 한글에 그만큼 뒤쳐져있었고 벌써 5살이 되자 주변에는 한글을 읽는 아이가 늘어났다. 중국에 있는동안 자연히 주변과의 비교에서 자유로웠던 나는 이번에는 말이 아닌 글과의 싸움으로 지쳐갔다. 그래도 5살에는 아직까지 한글을 읽지못하는 아이가 더 많았으므로 나의 공부욕심은 절정에 이르지 않고있었고 내겐 아직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영어유치원, 어린이집, 일반유치원, 놀이학교 사이에서 잠시 고민의 시간이 있었지만 일단은 한글에 중점을 두기로 하고 일반유치원을 선택하였다. 중국에서부터 알아본 유치원이었던 까닭에 막상 한국에 도착하자 집에서는 조금 멀었지만 원장선생님의 마인드가 좋으시고 유치원선생님들뿐만 아니라 방과후선생님들까지 오랜기간 재직하신 유치원이라서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다행히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아 아이는 유치원생활에 잘 적응하였다. (유치원은 어린이집과 달리 매일 아이의 생활을 적어주시지 않고 조금은 딱딱한 느낌입니다. 정말 학교를 준비하는 기관같다고 할까요?) 아이는 유치원에서도 늘 가장 느리게 줄을 서는 아이었지만 5세반 담임선생님은 전혀 채근하시지 않았고 편안한 분위기덕에 아이는 즐겁게 유치원생활을 했다.


그리고 내가 자리잡은 동네는 타운하우스같은 느낌의 편안한 동네로 날씨가 좋을때면 동네의 아이들이 나와서 뛰어노는 곳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한번도 시골에 살아본 적이 없었던 나는 동네아이들이 서로의 집을 자연스럽게 드나들고 마을사람끼리 친하게 지내는 문화가 몹시 어색했지만 또 그에 반비례해 좋아보이기도 했다. 낯가림을 많이 가렸던 우리아이는 뛰어노는 아이들틈에서 같이 놀고싶어했지만 그 마음만큼 아이들과 잘 지내지는 못했다. 같이 놀기보단 주로 아이들을 관찰했고 내 뒤로 숨는 일도 잦았다. 동네엄마들은 아이를 그렇게 감싸지만 말고 좀 자유롭게 풀어놓으라고 말했지만 그건 내 의지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 <한글이 야호>를 비롯해 각종 한글동영상 및 책을 들이밀었지만 아이는 모든 걸 거부했다. 그림책을 읽어주려고 몇번 옆에 앉혀놓고 시도했지만 녀석은 내가 책 읽어주는 것마저 싫어했다. 왜 우리애는 이렇게 책을 싫어할까를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나는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다고 해서 어린시절이후에는 거의 끊다시피 한 독서를 다시 시작했지만 모든것이 무용지물일 정도로 우리 아이에겐 소용이 없었다.


한편 중국주재원생활에서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내지못하고 돌아온 남편에게는 크나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한직으로 발령을 낸 것이다. 자존심이 강한 남편은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회사에 사표를 썼고, 이제 외벌이에서 무벌이로 전락한 우리에게는 선택이 별로 없었다. 나는 남편대신 급하게 직장을 구했는데 아이가 있으니 가급적 동네에서 가까운 곳에 취직을 했고, 아이를 보살펴야 하니 정시출퇴근이 내 조건이었다. 그러다보니 좋은 조건의 취업은 불가능했지만 그나마 가진 기술이 있어서 얻은 취직자리였다. 남편은 한동안 자리를 잡지못하고 방황하며 힘들어했고 나도 힘겹게 직장생활을 했다. 야근을 하지않는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유치원에 혼자 남아있는것은 우리아이였고 불만을 토로하는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 집안일까지 하는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남편에게 도와달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남편이 집안일을 하면 이 상태가 계속 유지될까봐 두려웠다. 남편이 집안일을 하기보다는 밖에서 빨리 자리잡기를 원했다)



(6살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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