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4학년이 되자 남편과 나는 고민에 빠졌다. 좀 더 나은 교육환경을 찾아 이사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아이가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에서는 고학년으로 갈수록 이동이 잦았고 (오는 아이들도 많았고, 나가는 아이들도 많았음) 우리 아이가 특목고를 가지 않는다면 취사선택할 일반고가 별로 마땅치 않았으므로 나도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아이가 날이 갈수록 학업성적이 나아지고 있어서 더 고민이 되었다. 분당집에 있는 세입자분과도 의견을 나누었는데 가급적이면 방학때를 맞춰 이사를 하자는 것이 우리의 요구조건이었다. 그러던 중 2월부터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중국에서 뭔가 발생했구나 정도로만 여겼지 지금처럼 오랜기간 숨죽이며 살아야할줄은 그 당시에는 꿈에도 몰랐다. 코로나로 개학이 계속 미루어지고, 정말 한두달만 참으면 메르스때처럼 끝날 줄 알았던 예상과는 달리 반년이 넘도록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자 우리는 그냥 학기중에 이사를 하기로 했다. 어차피 학교도 못가는 판국에 굳이 방학을 이용해 이사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
우리는 방학을 한달정도 앞둔 7월초에 이사를 했고 일주일에 하루만 학교를 갔던 아이는 금새 새로운 곳에서도 적응을 마쳤다. 예전집에서 6년이나 살았기에 친구들의 부재에 한동안 힘들어하긴 했지만 한적한 곳에서 지내다가 번화가에 오자 아이는 더 좋아했다. 나는 태생이 도시녀여서 그런지 지하철역이 가까이 있고 상업시설이 근처에 모여있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어렵게 만들었던 엄마들과의 네트워크가 끊어지자 앞으로 정보를 어디서 얻어야할지 고민이 되기는 했다. 아이는 어차피 학원보다는 집에서 공부를 해왔던터라 코로나라고 특별히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아이가 학교를 안가니 밥을 챙기고 자유시간이 없는 내가 외려 힘들었지만 어차피 한번은 겪을 일이었다.
오래도록 30분에 붙박이처럼 묶여있던 독서시간을 나는 늘려야하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고, 아이는 통크게 1시간동안 독서를 하겠다고 했다. (우리아이는 독서가 취미인 아이가 아닙니다. 스톱워치로 1시간을 재고, 1분도 더 읽지는 않지만 하루에 1시간씩 독서가 쌓이니 무섭긴하네요. 처음에는 30페이지 그림책도 못 읽어서 힘들어하던 녀석이 언젠가부터 200페이지 넘는 책도 거뜬히 읽어냅니다) 3학년 겨울방학에는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수학익힘책으로 복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번에 3년치를 복습해보니 확실히 구멍이 어디였는지가 보이더라. 그 프로젝트를 하고나서 4-6학년 교과서를 구비해두었다. 국어는 지문이 어려워지는게 눈에 보여서 4학년 국어책은 방학동안 지문을 한번씩 읽어보고, 사회랑 과학도 교과서 읽기에 나섰다. 4학년은 특히 학교를 못가고 온라인을 하다보니 내가 평소보다 조금은 더 신경쓸게 많았다. 똑똑한 아이들은 본인들이 알아서 하는게 보이던데 나는 아이가 도움을 요청하면 가급적 다 해 주었다. 그동안의 내 경험상 우리 아이는 본인이 준비되면 어느날 아침, 스스로 하겠다고 나서는 아이었기 때문이다. 영어는 리스닝-그림책 읽어주기를 그냥 하루도 빼먹지 않고 계속 해 나갔는데 흘려듣기도 아이에게 맡기니 언젠가부터 본인이 보고싶어하는 영상을 찾아서 보았다. 그림책 읽어주기를 꼬박 3년을 한 어느 날, 아이는 이제 자기가 책을 읽겠다고 말하며 본인이 영어책을 읽어나갔는데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내가 읽는걸 도와주기는 하지만 감격이긴 했다. (중간중간 사이트워드 단어들 한번씩 흝어주고, 문법책도 살짝 흝어주고, 단어연습도 시키긴했다. 단언컨대 우리아이는 저절로 되는건 하나도 없는 아이다) 남들보다 빠른 아이들은 사실 어떤 코스로 가도 잘하고, 설사 잘못된 코스를 탔더라도 되돌릴 수 있지만 느리고 성실한 아이들은 만일 잘못된 길로 갔다가는 되돌리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그동안 나도 실수하지 않기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새로 전학온 학교에서 만나뵌 담임선생님과 첫 면담을 (전화지만) 하게되었을때 선생님은 왜 면담신청하셨냐며 아이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씀해주셨다. 선생님께선 의례적인 말씀이셨을지 몰라도 항상 아이에 대한 지적을 받아온 나로써는 실로 감격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면담뿐만 아니라 그 이후 적어주신 통지표에서도 너무 예의바르고 모범적인 학생이라며 적어주셨고, 아이의 단원평가 점수도 90점과 100점을 오갔다.
3학년을 기점으로 많은 아이들이 독서에서 손을 뗀다. 그리고 게임에 빠져든다. 예전에는 남자애들이 주로 게임을 했다면 요즘 아이들은 남녀구분없이 게임을 많이 한다. 우리아이는 핸드폰은 없었지만 남편이 1학년부터 게임전용폰을 만들어 주었다. (말그대로 전화는 안되고, 게임만 할 수있는 용도) 나는 원칙이 하나 있었는데 게임은 스마트폰으로 할 것, 유튜브는 데스크탑에서만 볼 것, 영어영상은 TV로만 볼 것이었다. 어차피 모두가 하는 게임을 안할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용인은 하되, 조절능력을 기르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조절도 일종의 습관이라 초1때부터 4년을 조절해 온 아이는 적당한 시점이 되면 유튜브와 게임을 그만하고 멈추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문제집을 풀다가 막히더라도 끝까지 답지를 보지않았다. (물론 저절로 되지는 않아요. 조절능력을 키우는건 정말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는 아들에게 공부는 중학교때부터 하는 것이고, 독서는 5학년때부터 본격적으로 하는 것이며, 초등학교때는 본공부의 준비기간이라는 말을 거의 세뇌처럼 해왔다. 그대로 될지 안될지는 모르지만 말한대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앞으로도 꾸준히 공부를 하면서 최선을 다하되, 능력이 부족하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아이가 공부뿐만 아니라 한번밖에 없는 인생을 최선을 다해 살길 원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