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10년 늦은 여자#2
연애의 끝은 결혼...?
남편과는 동호회에서 만났다. 무슨 동호회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친목 동호회의 한 일종이었으리라. 그 날 내 뇌리에 박힌 남편의 모습은 끊임없이 앉은자리의 술잔을 정리하는 모습이었다. 나도 정리를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술자리에서 자리 정리는 잘하지 않는 편이라 그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 남편과는 1차에서는 자리가 멀어서 말 한마디 나눠보지 않았고, 2차로 자리를 옮겨서야 몇 마디를 섞었다. 의례적인 이야기였고, 딱히 서로에게 인상 깊은 모습을 남기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날 이후 남편은 내게 적극적으로 연락을 했다.
하지만 내게는 남자 친구가 있었고, 그 모임에 가게 된 것도 남자 친구랑 싸우고 우발적으로 가게 된 것이라 나로서는 남편의 대시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사실은 남자 친구가 있음을 밝히고 연락을 하지 말아 달라고 정중히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 나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그런데 결혼을 추진하던(?) 나를 부담스러워하는 남자 친구와 이견차를 좁히지 못해 헤어지고 나서 나는 남편을 떠올렸다. 그래서 몇 달 만에 남편에게 연락을 취해보았으나 남편 입장에선 그 연락이 반갑지 않았던 것 같다. 생각보다 냉담한 반응에 놀라 전화를 끊었던 기억이 난다.
또다시 몇 달이 흘렀다. 12월이 한참 지난 어느 날, 남편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번호를 저장하면 어지간해선 지우지 않는 성향입니다. 회사 다닐 때는 안 받는 전화가 없기도 했고요) 웬일인가 싶었는데 횡설수설하며 올해가 가기 전에 나를 잘 정리하고(?)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다. (그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던 나도 참...) 결국 이야기가 길어지고 줄 것도 있다고 해서 한번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공교롭게도 만남의 날짜는 12월 31일. 우리는 집 앞 카페에서 만났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보다 이야기가 잘 통하는 거다. 나는 나 역시 30대 후반이면서도 또래의 남자들에 대한 강한 편견이 있었다. 내 또래의 (결혼을 안 한) 남자들은 뭔가 문제가 있을 거라는 편견. 그래서 가급적 연하를 만나려고 했고, 또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남편은 나보다 연상인 데다 외모 또한 내 이상형이 아니었다.
우리 회사는 매우 바쁘고 늘 일이 많았는데 뭔가 되려고 그랬는지 내가 37이 되는 1월 초에는 일이 별로 없고 한가했다. 그래서 우리는 거의 매일 만나서 데이트를 하고 놀러 다녔다. 특히 나는 스키를 좋아했는데 남편과 함께 스키 타는 일이 매우 재미있었다. 그렇게 딱 10일이 흐르고, 남편은 내게 프러포즈를 했다.
나는 데이트의 끝은 결혼이라고 믿는 몹시 보수적인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프러포즈는 나를 매우 당황하게 만들었다. 아직 우린 서로를 잘 모르지 않냐고 좀 더 시간을 갖자고 얘기하던 중, 남편은 자기가 얼마나 많은 신입사원을 뽑는지 아느냐며 이 정도 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거였다.
아니, 지금 신입사원을 뽑는 게 아닌데... 난 와이프... 아니 그것보다 와이프도 뽑는 게 아닌데... 암튼 당황스러운 남편의 말에도 불구하고 뭔가 계속 관계를 이어갔던 것은 남편의 놀랄만한 추진력과 믿음을 주는 행동이었던 것 같다. 남편은 내가 망설이자 졸업증명서, 재산목록, 건강검진 진단서 등을 보여주며 나를 설득했고 부모님께 갖다 드리라며 PPT까지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시어머니를 먼저 뵙게 되었는데 어머니가 나를 만나러 나오시기 전, "나이 많다고 이 여자 반대하면 또 언제 결혼할지 모른다"며 사전작업까지 해 놓았던 것.
결국 우린 그 해 6월에 결혼했다.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