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10년 늦은 여자#3
악몽 같은 신혼여행
내 결혼기념일은 6.6 현충일이다.
다들 왜 현충일에 결혼을 하냐며 만류했지만 나는 잊지 못할 날짜이기도 하고 내 생일과도 가까워 반드시 챙기게 될 줄 알고 강행을 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보니 남편은 자상한 사람이라 생일, 결혼기념일은 물론 빼빼로데이까지 챙기는 남자더라. (결혼식을 굳이 현충일에 할 필요가 없었던 것)
암튼 우리의 결혼은 양가의 개혼이 아니었기에 연세가 많으신 양가 부모님들은 우리가 40 되기 전에 결혼한다는 그 사실이 중요했을 뿐, 결혼식에는 별로 큰 관심이 없으셔서 결혼식은 대부분 우리 뜻대로 다 진행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결혼 준비기간에 회사일이 너무나 바빠진 관계로 나는 웨딩플래너를 고용하고, 가구/가전 고르기는 엄마한테 다 맡기는 등 내가 고른 건 오직 웨딩드레스 하나뿐이었다.
요즘은 마흔 가까이 돼서 결혼하는 게 꽤 흔한 일이 되었지만 우리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내 대학 동기들은 20대부터 40대까지 20년에 걸쳐 결혼을 했고, 그러다 보니 내 친구들의 아이들도 나이가 5~25세 사이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당시 신랑인 남편의 나이는 38, 나는 37. 우린 누가 봐도 딱! 10년 늦은 신혼부부였다.
동안인 얼굴만 믿고(체력도 젊은 줄 착각하고) 신혼여행을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가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89년에야 해외여행자유화(누구나 해외여행을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는 뜻. 그전에는 해외를 가려면 특별한 이유가 없이는 갈 수가 없었음. 지금 코로나랑 비슷한 상황이라고 보면 되겠네요)가 이루어졌으니 90,91학번인 우리 부부에게 장기간의 일정을 요하는 유럽여행이란 언감생심이었을 수밖에...
어렵게 회사에서 휴가를 얻고 앞뒤로 주말을 넣어도 뺄 수 있는 날은 8일이 최대. 이틀은 친정과 시댁에서 하루씩 자야 하니까... 우린 20대거나 혹은 30대 초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타는 에너지로 멋들어진 신혼여행을 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말 그대로 참혹.
결혼식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피곤하고 힘들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30후반의 신혼부부로 이미 양가 부모님들이 연세가 있으셨기에 결혼식은 거의 우리가 직접 모든 것을 챙겨야 되었다. 결혼식 축의금까지 우리가 다 정리를 했을 정도니까. 그걸 다 직접 하고 나니 왜 모두가 신혼여행을 휴양지로 가서 잠만 자다 오는지 저절로 깨닫게 되었다. 신혼여행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돈을 아낀답시고 미련스럽게 stop over를 하고 또 이왕 간 거 한 군데만 보면 아쉬우니까 이태리와 스위스 두 나라를 돌아보는 여정을 짜고 스위스에서 2곳(인터라켄, 취리히), 이태리에서 3곳(밀라노, 베네치아, 로마)이나 되는 도시를 돌아보자니 하루에 한 도시씩. 몸은 피곤해 죽을 것 같아도 걷고 또 걷고... 구경하고 또 구경하고....
덕분에 신행 사진 중 지금 쓸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죄다 피곤에 쩔어있는 얼굴인 데다가 스위스는 우리나라 11월 날씨, 이태리는 7월 날씨 같았던 바람에 옷이 전부 어정쩡~ (특히 스위스에서는 가져간 옷을 모두 걸쳐 입는 바람에 거런지룩이 따로 없다) 암튼 우리는 스스로를 잘 몰랐던 듯...
하지만 남들보다 10년 늦은 결혼이 꼭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장점도 많다.
1) 서로 연애를 많이 한 덕에 집착이 적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해의 폭이 크다. 서로의 옛 연인에 관해 집요하게 묻고 질투하는 법이 없다. (귀차니즘일 수도 있음)
2) 남자가 결혼에 대해 충분히 준비가 된 다음에 해서 그런지 육아에도 적극적이고 시댁과의 문제에도 엄청 현명하다. 중재를 잘한다.
3) 둘 다 돈을 많이는 아니어도 적절하게는 모아놓아서 바로 아파트 전세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20년 전에 결혼했다면 현재 넘사벽인 부동산이 있었을 듯*
(4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