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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휴 Apr 17. 2021

열등감 02.

(feat. 친구관계)

나는 20대후반에 아주 예쁜 친구를 한명 사귀게되었다. 나는 그녀가 내 친구라는 사실만으로도 참 자랑스럽고 좋았는데 내가 좋아했던 남자가 나말고 그녀를 좋아하는 걸 깨닫자 바로 그 순간 나는 마주하기 싫은 진실과 맞닥뜨려야 했다. 나는 그 남자에 대한 마음을 조금씩 키워가고 있었는데 그는 내 친구에게 대놓고 호감을 표시했고 내 친구에게 그 남자는 그녀에게 호감을 표하는 수많은 남자 중 한명일 뿐이었다. 나는 그때 여러가지 선택 중 하나를 할수도 있었다. 내 친구를 이용해서 그 남자를 사귈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 남자때문에 그녀를 질투하거나 싫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둘다 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면 그녀는 내가 가장 힘들때 정말 하늘에서 보내준 친구라고 느낄 정도로 특별하게 만난 사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친구사귀기가 정말 힘들다. 게다가 학창시절도 아닌 20대후반에 만난 친구가 평생친구가 되는것은 생각보다 정말 쉽지않은 일이다. 그녀는 그당시 내게 일타친구(일타강사에서 따옴)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나는 조용히 그 남자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아마 그 남자도 내 친구도 내게 이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모를 것이다. 나는 그녀와 20년이 훌쩍넘은 지금까지 친구로 잘 지내오고 있다. 다행히 우리는 그 이후에는 서로 연애사가 겹치지 않으면서 각자 무난하게 배우자를 만나 잘 결혼했다. 그 일 이후에 나는 질투심을 이기는 것은 (진부한 이야기지만) 사랑하는 마음밖에는 없구나라는 걸 또한번 느끼게 되었다.


몇년이 흐른 후 나는 또 한명의 친구를 만나게된다. 그녀랑은 임신했을때 알게 되었는데 같은 동네고 아이들도 비슷한 시기에 출산해 우리는 가족여행도 함께 가는등 즐겁게 잘 어울렸다. 그런데 아이가 커가면서 나는 그녀의 아이들이 우리아이보다 똘똘하다는 걸 눈으로 목격하게 되었다. 다른 글에서 썼다시피 우리아이는 조금 느린축에 속했는데 특히 어릴때는 아이들의 발달상황이 몇달차이만으로도 크게 느껴지고 그것에 초연할 수 있는 엄마는 드물다. 나는 우리 아이가 학업에서 확실히 뒤쳐지는 걸 발견하자 마음이 힘들어졌다. 게다가 그녀는 시댁이 부자로 남편이 부모님으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아 사장자리에 오르자 한달에 받는 월급이 다른 사람들 연봉에 육박하게 되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움추러드는 걸 느꼈고, 어느순간 그 가족을 만나면 몸으로 봉사(그들부부가 자연스럽게 돈을 더 많이 부담하고, 우리부부는 요리를 한다던가 애들데리고 놀이를 한다던가 하게 됨. 누가 그렇게 하자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정말 자연스럽게 역할분담이 됨) 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그런 일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마침내 남편이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실직상태가 되자 나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졌다. 그래서 그냥 그 친구와 연락을 끊고 말았다.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그 친구는 내게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 하지만 내 열등감은 그 모든것을 덮었고 나는 우리 가족의 정신건강을 위해 그 친구랑 연락을 단절했으나 마음한켠에는 그녀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남아있다. 나는 그 일을 겪을때 미성숙하고 멘탈도 약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는 조금 더 성숙해졌다. 나는 그 일이후 아무것도 재단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내가 질투가 심하지 않은 사람인줄 알았지만 그 당시 나는 질투의 화신이었고, 그동안 내가 정신적으로 비교적 건강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내게 주어졌던 좋은 환경덕분이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최소한 남들정도는 철이들도록 하자는 모토를 가지고 살던 나는 우연찮게 또다시 한명의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그녀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로 남편이 돈을 잘 벌었지만 매우 소박하고 겸손했다. 나는 그녀의 인간미에 상당히 매력을 느꼈는데 약간 우유부단한 면은 있었지만 나와는 다른 성격이라 더욱 친해지고 싶었다. 나와는 달리 신중했던 그녀는 쉽게 사람들과 친해지는 편이 아니라서 나와도 오랜 기간을 거쳐 가까워지게 되었다. 아마 집이 근접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친해지지 못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녀의 아이들도 역시 두뇌회전이 빠르고 운동신경도 좋았는데 내 열등감은 다행히 많이 발현되지 않았다. 이걸 또 시간이 지나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이 친구를 많이 좋아했기 때문인데 (역시 진부한 말이지만) 질투의 반대말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실직했던 남편도 새 사업을 시작해 많이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들도 커갈수록 발달의 폭이 예전에 비해 줄어들면서 빠르거나 느리다는 것이 곧 각자의 성격으로 자리잡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녀의 따뜻하고 착한 천성이 내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주변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면 열등감은 크게 발화되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환경에서 자랄수는 없지만 날이 갈수록 양극화가 심화되는 이 시기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차갑고 냉철한 시선보다 조금은 무디지만 따뜻한 시선과 감성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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