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자격지심)
나는 어렸을 때 열등감이 심했고 자존감도 높은 편이 아니었다. 남들이 보기엔 부족할 게 없는 아이였을텐데 왜 나는 그렇게 속이 곪았을까....
일단 다 크고 나서 내가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 집엔 부모님을 비롯해 너무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객관적으로 보기엔 그렇게 못생기거나 모자란 아이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에 비추어서는 늘 모자라고 부족했다. 어릴 때는 무조건 주변이 나의 거울이다. (나는 내 경험 때문인지 어릴 때 과한 경쟁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초등학교 때는 매우 똑똑한 아이였지만 중학교, 고등학교를 갈수록 성적이 예전만 못했고 또 총기도 사라져 갔다. 나 스스로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도무지 마음을 잡지 못했고 혼나지 않을 정도의 성적만 유지했다. (늘 시험 직전에 벼락치기로 공부를 했고, 그러다 보니 시험 이후에는 깡그리 잊어버렸다. 지금은 더하지만 예전에도 그런 식의 공부로는 고등학교 때 성적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내가 어렸을 때 하도 총명했기 때문에 기대가 크셨던 부모님은 내게 칭찬에 인색하셨지만 상대적으로 기대에서 자유로웠던 동생들은 학년이 오를수록 점점 성적이 향상되어 부모님을 기쁘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더욱 내 열등감을 커지게 했다. 내 마음속에서는 동생들이 잘해서 다행이라는 마음과 자랑스러움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며 그 마음을 감추기 위해 공부외에 자꾸 다른 것을 해서 부모님께 인정받으려고 했다. 결국 열등감이 많은 사람은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변하며, 인정이라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아서 아무리 많은 인정을 받아도 (자존감이 높아지지 않는 이상) 뭔가가 채워지지 않는 허상을 쫓는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확신과 자신감이 없었기에 직업도 여러 번 바꾸었다. 안되면 될 때까지 하는 것이 아니라 '이건 내게 안 맞는다'가 내 결론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것 조금, 저것 조금 하는 일이 계속되었다. 게다가 마음이 허하다 보니 종교에 심하게 심취했다. 모든 종교인이 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랬다. 나의 인정 욕구는 너무나 커서 나는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거의 필사적이었다. (그때는 하나님께 인정받느라 애썼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돌이켜보면 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게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20대의 대부분을 교회에서 보내며 내 속에 존재했던 많은 열등감 및 자격지심을 털어내는 계기를 가졌다. 일도 많이 했지만 수없이 많은 격려를 받고 넘칠 정도의 사랑도 받으면서 적어도 인정받기 위해 목메는 일에서만큼은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시작한 일은 내가 예전에 확신 없이 시작했던 일들과는 많이 달랐다. 오랜 고민 끝에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고 시작한 일은 나한테 많은 걸 가져다주었다. 예전 일들보다 고되고 보상도 적었지만 최소한 나는 그 일들을 왜, 무엇 때문에 해야 하는지 알았고 수동적이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했다. 그러자 승진도 보상도 따라오기 시작했고 인정도 받기 시작했다. 물론 인정을 받기 시작하니 일하기가 더 수월해졌음은 물론이다. 인정욕구뿐만 아니라 성취욕구까지 쟁취되자 예전에 가졌던 열등감은 많이 사라졌는데 (나이가 들면 주변과의 비교는 자신의 의지로 어느 정도는 컨트롤이 가능해집니다. 저는 자존감은 낮았지만 질투심은 많지 않았고 나 자신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해서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해요) 이번에는 낮은 자존감을 끌어올리는 게 큰일이었다.
여자들은 때로 외모가 큰 경쟁력이다. 그런데 나는 예쁘기보다는 잘생긴 편에 속했고, 당연히 어렸을 때부터 외모로 주목받지는 못했다. 책을 많이 읽어서 눈이 나빴기에 어렸을 때부터 안경을 썼고 (안경을 쓰면 자연스럽게 화장을 잘 안 하게 됩니다) 짱구이마, 지나치게 글래머스러운 체형(요즘은 섹시함을 최고로 쳐주는 시대지만 예전만 해도 육덕진 체형으로 불렸죠. 가슴 큰 걸 감추기 위해 어정쩡한 자세로 걷다 보니 등도 굽고) 남들보다 긴 팔다리 등 요즘이라면 찬사를 받을만한 몸인데 너무 시대를 앞서간 탓인지 어딜 가나 지적질을 받으면서 더욱 자존감이 낮아졌죠. 그런데 놀랍게도 30세를 넘자 시대가 요구하는 미인형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화장을 잘 안 했던 피부는 알고 보니 주름이 잘 생기지 않는 피부였고 (원래 태어날 때부터 노안이었는데 희한하게 30세가 넘자 사람들이 동안이라고 부르기 시작함) 화장을 시작했는데 의외로 화려한 화장이 잘 어울리는 타입이었던 거죠. (10-20대에는 톰보이처럼 하고다니기도 하고, 귀여운 옷을 좋아하는 등 체형이나 외모와는 안 어울리는 룩을 하기도 했음. 사실 나를 잘 몰랐던거죠.) 특별히 마른 몸은 아니었지만 또 살찌는 타입도 아닌지라 늘 같은 사이즈를 유지했는데 그게 30세가 넘으니 또 경쟁력이 되더군요.
아무튼 대한민국에 이마를 봉긋하게 만드는 성형수술까지 유행하면서 나는 성형을 안 한 자연미인(?)이라는 이유로 20대에는 받아보지 못한 관심을 갑자기 30대에 받게 된다. 처음에는 좀 어색하고 이상했지만 예쁘다는 소리도 자주 듣자 적응이 되는 것인지 나는 날이 갈수록 뻔뻔해졌다. 몇 번 예쁘다는 얘길 듣고 나자 나는 자신감이 붙어서 예전의 가리기에 급급한 패션에서 이젠 붙는 옷으로 패션도 바꾸고 허리도 펴고 점점 좋은 자세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결정적이었던 건 역시 남편과의 결혼이다. 내가 예전보다 좋은 사람이 되자 좋은 남자를 만나게 된 것은 자명했는데 늘 나를 사랑하고 예뻐해 주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은 내 자존감에 엄청나게 좋은 영향을 준다. 내가 자존감이 높아지자 자신감은 따라왔고 신기하게도 자존감의 높이만큼 열등감과 자격지심은 사라졌다. 물론 아직도 열등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남편과의 안정적인 결혼생활이 내 삶을 많이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이 치르는 모든 중대사 중에 결혼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늦게나마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