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82년 (82년도는 한국 프로야구 원년임) 어느 날, 아버지가 들고 오신 OB 베어스 어린이 회원권을 받아 들게 된다. 당시 아버지가 다니셨던 회사의 대주주가 OB라서 어린이 회원권을 우연히 받게 된 것. 그 당시 나는 야구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프로야구 회원권을 갖게 된 것을 계기로 야구 룰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아버지로부터 야구 룰을 배워 나는 야구라는 스포츠에 입문하게 되었는데 (야구는 내가 처음 배운 스포츠 룰이라서 나는 야구 룰이 몹시 간단하다고 생각했으나 세월이 지난 후 가장 관람하기 어려운 스포츠 중 하나가 바로 야구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지금까지 한 번도 직접 야구를 하지는 않았으나 오랫동안 야구를 관람해오고 있다. 예전에는 야구팬이라는 것은 거의 다 남성뿐으로 내 윗세대는 야구를 보겠다는 남편과 드라마를 보겠다는 아내 사이에 다툼이 흔할 정도로 야구 시청은 부부싸움의 해묵은 이슈였다. (예전에는 각 가정에 TV가 한대뿐이었으므로 집집마다 리모컨 쟁탈전이 심했다. 요즘에는 뭐든지 '다시 보기'도 쉽고 각자 핸드폰을 이용해서 TV를 보는 시대이다 보니 이해가 잘 안 갈 것이다)
아무튼 나는 베어스의 광팬은 아니었지만 처음 팬이 된 구단이라는 상징성 때문인지 40여년이 가까운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구단을 바꾸지 않고 있다. 나는 잠실구장 바로 맞은편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내가 하교할 때쯤이면 떡을 팔고 김밥을 파는 행상 아줌마들로 분주했고 매일 저녁마다 야구장 함성소리로 시끄러워서 우리 학교는 야자(야간 자율학습)가 거의 없었다. 중간에 OB 베어스는 두산 베어스로 이름을 바꾸었고, 또 요즘은 매년 가을야구에 진출하는 강팀이지만 한동안은 꼴찌를 도맡아 하던 시절도 한동안 있었다. (요즘 한화랑 비슷하다고 보면 됨. 내 기억으로는 한 10여 년 가까이 그랬던 것 같기도)
그렇게 야구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맹숭맹숭한 사이를 유지하던 내가 확 바뀐 계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한국을 떠나 중국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게 되면서부터였다. 나는 그 흔한 유학이며 어학연수 한번 다녀오지 못한 세대라 해외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남편이 주재원으로 발령받았을 때 짧은 기간이었으나 흔쾌히 따라가겠다고 나섰는데 중국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후진국이라 뻑하면 TV를 막아놓곤 했다. 중국에 무슨 안 좋은 이슈라도 있는 날이면 인터넷을 포함해 모든 것이 먹통이 되는 날이 흔했으며, 올림픽 때 베이징의 공기가 아주 맑음을 유지했다는 말은 정말 전혀 과장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이 행하는 짓거리를 보면 너무나 짐작 가능한 일) 아무튼 1년 내내 별 탈 없이 유지되는 한국 TV 프로그램은 거의 스포츠채널과 만화채널만 있을 정도로 (한국에서부터 사용하던 TV 채널을 가지고 갔는데도 불구하고) 볼 수 있는 TV프로가 몇 개 없어 나는 거의 1년 내내 프로야구만 주야장천 보았다. (한동안은 6시 반부터 9시 반까지 늘 두산 중계가 틀어져 있었을 정도) 그렇게 한 시즌을 보다 보니 가끔 성적만 확인하던 때와는 달리 나는 선수들 이름부터 모든 것을 꿰뚫게 되었다. 많이 알게 되니 관심도 폭발한 걸까? 나는 타국에서 네이버의 가장 유명한 두산팬카페인 <대야베>에 가입도 하고 글도 쓰며 사람들을 알아갔다. 그런데 내가 중국에 있던 시절인 2013년도에는 두산 베어스가 오랫동안 준우승에 머물면서 우승 열망이 최고조로 올라갔던 때였다. 게다가 그 해는 포스트시즌에 거의 힘겹게 승차했는데 마치 도장깨기처럼 밑에서부터 기적적으로 차근차근 올라가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랑 맞붙게 되었다. 삼성은 그전까지 거의 난공불락의 팀이었는데 (지금은 삼성이 하위권에 자리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임) 무서운 기세로 한국시리즈에 올라온 팀 두산은 1,2차전을 잡고 거의 우승이 코앞에 다가온 상태였다. 그런데 박근혜씨가 3차전에 시구를 하러 오고 3차전을 삼성이 가져간 이후에 (삼성팬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편파판정논란이 있을 정도로 3차전 경기는 좀 그랬음) 기세가 급격하게 기울면서 결국 또 한 번 준우승에 머문다. 그 여파로 김진욱 감독님도 경질되고 송일수 감독님이 부임하며 (두산팬 사이에서는 일수강점기라는 말 유행) 헤매다가 현재의 김태형 감독님이 부임하시며 그 이후 전성기가 계속되고 있다. 나는 승기를 잡았을 때 밀어붙였어야 했는데 7차전을 준비하는 듯한 커피 감독님(김진욱 감독님의 별명)의 자세에 울분을 금치 못했고 타국에서나마 두산의 우승을 간절히 바랬다. 어쨌든 그 이후 두산팬들의 기대보다 더욱 좋은 성적을 올리시며 오랜 기간 김태형 감독님이 버티고 계시니 가끔 고집을 부리시긴 해도 김 감독님께서 두산의 종신감독으로 계셔주길 바랄 뿐이다. (한동안 두산이 금전적으로 어려워 모든 FA들을 놓칠 때, 구단을 돈 많은 다른 회사가 사주길 바란 적도 많았으나 이제는 두산이 그냥 야구단 운영처럼 모그룹 들을 잘 운영하길 바랄 뿐)
나는 남편과 연애를 할 때 남편이 두산 야구팬이라고 해서 더욱 호감이 생긴 적이 있다. 최소한 채널 갖고는 안 싸우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같은 야구팬이라고 해서 다가 아님. 만일 적수로 만나면 사람에 따라서는 싸움거리가 될 수도 있음) 태생이 집돌이라서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하는 남편도 야구장이라면 군말 없이 따라나섰으며 야구 이야기로 부부간의 대화가 더욱 풍성해졌음은 물론이다. 나는 한동안 아들이 운동신경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야구선수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체격은 누가 봐도 야구선수에 적합한 몸이지만 지나치게 세심한 성격, 그리고 단체생활을 싫어하는 성향 덕에 그 마음을 접었다. 요즘 두산이 예전보다 좋지 못한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사실 김태형 감독님 아니었다면 이미 몇 년 전부터 아래로 내려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독님의 인터뷰를 볼 때마다 선수들을 관찰을 하고 계시다가 언론이든 직접이든 적합한 타이밍에 툭 던지는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하시는 걸 보고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 역시 유머를 겸비한 카리스마를 갖추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아들 육아를 할 때 상당히 도움이 됨)
올해는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 목표라고 한다. 늘 두산 베어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