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끊었던 드라마를 최근 다시 보고 있다. 뭔가 새로운 드라마를 보려고 해도 2% 부족한 느낌에 중도하차한 적이 많았는데 최근 남편의 최애 드라마인 <슬기로운 의사생활 2>가 시작해서 같이 보고 있다. 하지만 1주일에 1편이라 뭔가 부족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는데, 드디어 나의 녹슨 연애세포를 반짝반짝 빛내줄 새로운 드라마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바로 <알고있지만>.
웹툰은 완결인데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결말을 모르고, 드라마를 보니 대충 여지를 주고 썸은 타지만 연애는 안 하는 남자인 박재언(송강)과 나쁜 남자인 줄 알면서도 그와의 로맨스를 꿈꾸는 유나비(한소희)의 이야기다. 1,2회 내용을 간략하게 묘사하자면 유독 '나비'를 좋아해 집에서 나비도 키우고 목에 나비문신까지 하고 다니는 남자인 박재언은 큰 키와 잘생긴 얼굴로 주변에 여자들이 가득하다. 끊임없이 매력을 발산하고 여자들에게 친절하게 대하지만 한 명에게 정착하지는 않는, 만인의 연인인 느낌의 남자인데 자꾸만 자신을 특별하게 대하는 통에(착각이라고 자꾸 치부하려 하지만) 유나비는 자신의 마음을 부정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박재언에게 점점 빠져든다. 박재언은 유나비에게 계속 키스를 시도하고 유나비는 몇 번이나 얼굴을 돌리지만 결국 2회 마지막에 박재언에게 먼저 키스하며 험난한 연애의 문을 스스로 열어젖힌다. 같은 학교 같은 과인 탓에 (박재언은 유나비와 동갑이지만 반수해서 조소과 1학년인 것으로 나온다. 예전에는 무조건 학번순으로 나이에 상관없이 깍듯하게 선배 대접을 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는 걸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됨) 유나비와 박재언은 자주 마주치고 그녀는 잡히지 않는 나비인 그(남자 주인공이 나비 마니아로 나오지만 정작 본인이 나비라는 아이러니. 드라마에서는 그를 '꽃'에 비유하는 것도 특이점. 보통 남자를 나비로, 여자를 꽃으로 비유해왔는데 작가는 그 통념을 뒤집는다)를 나만의 나비로 만들고 싶다. 드라마 회차에 맞춰 웹툰도 조금씩 무료공개 중인데 작가님 성향상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나는 이미 작가의 전작을 본 적이 있었음. '투명한 동거') 스토리보다는 심리묘사에 치중하는 편이라 드라마 역시 클로즈업 화면이 굉장히 많은 편이다. 이 드라마는 웹툰의 분위기상 캐스팅이 핵심 요소였는데 남녀주인공인 송강과 한소희 모두 웹툰과 싱크로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고 둘 다 연기가 드라마 몰입을 방해할 정도로 서투르지 않아서 보는 재미가 있다. 송강이 그렇게 큰 키인지 몰랐는데 한소희보다 20cm 이상 훌쩍 큰 모습으로 화면상 둘의 키 차이가 또 다른 설렘 포인트이기도 하고 20대 특유의 티카타카가 옛 생각을 나게 한다. 어제는 3편이 방송되었는데 2회 마지막에서 키스를 나눈 그 둘은 그날 밤 잠을 이루기 힘들고, 서로 연락을 기다리지만 상대에게 아무 연락이 없자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그 사이 박재언을 잘 아는듯한 여자(설아)가 귀국을 하고 그녀는 본능적으로 유나비에게 경계심을 느낀다. 유나비 역시 설아가 박재언에게 특별한 여자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챈다. 둘이 소모적인 감정전(?)을 하는 동안 유나비에게 1학년 후배가 마음을 어필하고 박재언은 강렬한 질투심에 휩싸인다. 결국 박재언은 남자 동기에게 견제를 하는듯한 말을 건네고, 유나비와 박재언은 옥상에서 언쟁을 한다. 유나비는 그 후배와 데이트를 하지만 자신이 누군가의 대타였단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 또 그 장면을 박재언에게 들키면서 여러모로 화가 난다. 여러 가지 일로 머리가 복잡한 데다 몸까지 안 좋았던 유나비는 박재언의 연락처도 지우고 다시 평상시의 생활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밤늦게 걸려온 박재언의 전화 한 통에 모든 것이 무너진다. 그는 유나비의 집으로 찾아와 병원에 안 가겠다는 유나비를 위해 먹을 것을 사 오고 침대 곁에서 간호도 해주는 등 지극정성의 모습으로 마침내 유나비의 마음을 얻고,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드라마에서 박재언은 끊임없이 유혹을 하지만 항상 결정은 유나비가 하는 것이 포인트이다!
나는 만화 마니아이긴 하지만 만화를 드라마로 만드는 것은 잘 안 보는 편인데 왜냐하면 만화(웹툰)의 감성이 화면에 잘 옮겨지지가 않고, 시청했다가 실망만 했던 기억이 많아서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드라마는 왠지 느낌이 나쁘지 않다. 물론 '치즈인더트랩'처럼 용두사미가 될 수도 있겠지만 요즘 봤던 드라마 치고는 드물게 웹툰 정서를 화면에 잘 옮겨놓았다. 그리고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음악인데 약간 기묘한 느낌의 음악이 화면과 묘하게 잘 어우러진다. 분명 로맨스물인데 음악만 따로 듣는다면 약간 공포물 같은...? 그리고, 매력적인 두 남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둘 간의 케미가 중요하고, 스토리보다는 심리묘사가 관건이라 연기가 안되면 망하기 쉬운데 다행히 송강과 한소희는 전작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연기의 합이나 비주얼이 잘 어울린다. 한소희는 <부부의 세계>에서 처음 봤을 때 충격적일 정도로 얼굴이 예뻐서 깜짝 놀랐는데 소위 성형빨로 만들어지기 어려운 얼굴이라 더 매력 있다. 그리고 연기 천재들이 모인 <부부의 세계>에서 딱히 튀지않는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줘 더욱 눈길을 끌었는데 <알고 있지만>에서도 드라마 전체를 이끌어가는 여주인공으로 손색이 없다. 송강은 전형적인 미남은 아니지만 매력이 철철 넘치며 '스위트홈'에서는 그렇게 키가 큰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큰 키라서 더 멋지게 보인다. 속을 잘 알 수 없는 미소가 더욱 매력적. 20대에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에게 그렇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지금은 아무리 눈을 감고 보지 않으려고 해도 사람들의 속마음이 다 보여서 탈인데 20대 초반에는 (느린 사람은 30대까지도) 폭넓은 인간관계를 배워가는 시점이라 약간 의뭉스러운 사람에게 무조건 끌리게 되어있다.
내가 늘 말하지만 남자든 여자든 나쁜 이성을 굳이 안 만나려고 발버둥을 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대개 외모도 출중하고 매력적이기에(본인들 역시 자신의 매력포인트를 잘 알고 있고 활용도 잘한다) 주변에 또 다른 이성도 많고, 잘 잡히지도 않아 상대방은 마음고생을 할 수밖에 없지만 그런 경험을 해야 좋은 이성의 소중함을 깨닫고 역시 좋은 사람을 골라 결혼생활도 잘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나쁜 이성에 대한 면역력이 없어서 결혼한 이후에 혹은 나이 들어서 나쁜 이성을 만나면 만회할 시간도 기회도 없어진다는 점이다.
드라마의 완결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둘의 관계가 해피엔딩으로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좌충우돌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길.... 웹툰의 메타포가 담배라서 요즘 드라마들과는 다르게 담배 피우는 신이 정말 많이 나오는데 남녀차별이 전혀 없는 담배 씬, 은근히 깔리는 동성애, 사랑 유무에 상관없이 갖는 여학우의 잠자리.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여주인공과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의 동기들, 그리고 오래된 여사친('내 운명은 너지'라고 말하면서 다른 여자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함)이 있지만 여주인공에게 끌린다고 말하는 남주인공. 여러 가지 인간군상과 조소과의 작업환경. 오랜만에 설렘 아닌 설렘을 느꼈네요. 왜 이렇게 우리나라에는 끝도 없는 로맨스물이 나오나 했더니 대학생들은 물론이고,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죽지 않는 연애세포로 인해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은 나 같은 아줌마들 때문인 듯.... 다들 즐감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