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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휴 Oct 06. 2021

국뽕 이야기 1.

(feat. 오징어 게임, 마이 유니버스)

자고 일어나면 빅뉴스라더니...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 전 세계 1위를 한지 벌써 10여 일이 훌쩍 지났다. 내가 오징어 게임을 보게 된 것은 그야말로 <갯마을 차차차>를 기다리기가 너무 힘들어서였는데... 어쨌든 요즘은 한국문화가 전 세계를 선도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뭐만 찍었다 하면 넷플 1위, BTS는 노래만 냈다 하면 빌보드 1위를 하는 통에(그것도 핫샷으로) 이젠 감흥도 생기지 않을 지경이다. 중국이랑 일본이 난리부르스를 출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 두 나라 반응은 조용하다. 왜 그럴까? 사실 BTS가 미국 시장에서 처음 먹힐 때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을 포함해서 중국, 일본인들도 그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미국 시장을 씹어먹는 인기를 구가할 줄 몰랐을 거다. 아직 BTS는 창창한 20대요 소위 말하는 전성기가 어디일지 가늠할 수도 없기 때문에 더 무섭게 느껴진다. (BTS 멤버 3명이 팬들에게 보여줄 영상인 짤막한 '댄스 무브'를 무려 9번 이상 녹화하는 걸 보고,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지친다는 팬들이 있더라. 스스로에게 대충이라는 걸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래서 무섭다) 어쨌든 한국문화가 이제는 발목 정도 잡아서는 티도 안나는 넘사벽이라는 걸 느껴서 그럴 수도 있고, 이 두 나라는 훔칠 줄은 알되 창조를 할 수는 없는 민족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우리나라도 전두환 대통령 때까지는 국가원수를 비판하면 끌려가는 나라였다. 입조심, 말조심을 해야 했고 9시 뉴스가 시작하자마자 전대통령 소식으로 뉴스가 시작했기 때문에 '땡전뉴스'(9시 땡 하면 전두환이 나왔다는 뜻)라는 자조적인 말도 나왔다. 그걸 자의반 타의반으로 깬 사람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다. 물론 그 전부터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이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예전 기억(대통령 욕하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는)이 있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워했고, 대놓고 국가원수를 비판하진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고졸 출신의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원수에 당선되자 국회의원들 포함 정치인 다수가 대놓고 노대통령을 무시하기 시작했고 (대통령이 국회에 연설하러 들어섰는데 국회의원 모두가 기립도 안 하고 앉은 채로 맞이함. 연설 후에도 박수도 안친 건 아주 유명한 일화죠) 그 모습을 보게 된 국민들도 대통령을, 또 다른 정치인들을 맘 놓고 비난하기 시작함. 결국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란 말은 그의 재위 시절 동안 광범위하게 쓰이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직 대통령과는 다르게 한 번도 사람들을 탄압하는데 자신의 권력을 사용하지 않았던 그는 측근의 권력비리로 자살하지만 어쨌든 또 다른 문화유산을 남기게 된다. 한번 물꼬를 트기가 어렵지 물꼬가 터진 길은 다시 되돌리기가 상당히 어려워 결국 노대통령 이후 권력을 잡은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도 예전처럼 다시 자신의 권위를 되살리려고 했지만 이미 비판에 익숙해진 한국인인지라 결국 그 둘 역시 측근비리로 현재 감옥에 수감 중인 상태. 그 이후 대통령 자리에 오른 문대통령은 언론개혁을 하려고 하지만 가능하지도 않고 국민들이 순순히 따를 것 같지도 않다. 오징어 게임을 본 사람이 그 시나리오를 본떠 <문재앙 게임> 혹은 <문죄인 게임>을 만들었다고 하니 문대통령 입장에서는 웃기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할 것이다.


중국이 문화면에서 우리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은 (아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것은) 시진핑을 비판할 수 없는 문화 때문이다. 중국은 저력이 있는 나라이므로 공산당 체제를 포기한다면 정말 르네상스 같은 시대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정희처럼 평생 권좌를 노리는 시진핑이 그 체제를 쉽게 포기할리 없고 따라서 당분간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일본은? 일본의 경우, 섬나라라는 지정학적 특성에 의해 극단적이고 마니아적 문화가 발달한다. 균형감각을 키울 필요가 없는 민족이라 컬트문화 같은 비주류 문화가 발달할지언정 주류를 생산해내기 어렵다. 게다가 중국과 일본은 둘 다 내수가 어느 정도 받쳐주는 나라들이므로 굳이 뭔가를 만들 때마다 전 세계를 생각하며 글로벌 대작을 만들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것도 한몫하겠다. 하지만 내수시장이 좁은(게다가 인구감소로 더 줄어들 예정인) 우리나라는 내수만 목표로 해서는 아마 손익분기점을 넘기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민족 감수성은 "네가 하면 나도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앞으로 더 많은 BTS, 더 많은 오징어 게임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가끔 인터넷 댓글을 보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할 정도로 기상천외한 댓글들이 많은데, 이것은 그 자체로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주는 거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리 한국인이 기상천외하더라도 그 판을 만드는 것까지 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는데 (비영어권 국가이며 내수시장도 좁은 한계) 어느 날 세상에 유튜브가 나오며 글로벌한 판이 만들어졌다. 원래 미국이 전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는 미국인들은 영어와 달러를 이용해 거대한 판을 만들었고 당연한 말이지만 그 판을 이용해서 가장 먼저 세계시장에 진출한 건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되었다. 그리고 또 어느 날 넷플릭스라는 판이 만들어지자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빠르게 또 효과적으로 그 판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혹자는 재주는 곰(우리나라)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미국)이 가져간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사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넷플릭스가 깔아놓은 전 세계적인 자본금과 34개 언어나 되는 더빙/자막 서비스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성공이 보이는 곳에 자본과 시간을 몰빵하는 미국 문화의 특성상 앞으로 한국인과 협업하려는 움직임은 더 강해질 것이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금보다 점점 더 좋은 조건으로 글로벌 마켓에 진출하게 될 것이다. 


BTS가 유엔 연설을 한 것을 기억하는가? 예전에 한 번이라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한국관이 어디에 위치해 있었는지.... 한국관을 찾으려면 미로 같은 곳을 빙빙 지나 어렵고 힘들게 찾아가야 했다. 그들이 얼마나 콧대가 높았는지 일국의 대통령이 방문하겠다고, 중요 미술품을 기증하겠다고 해도 그러든지 말든지 식으로 일관하다가 BTS와 함께 방문하겠다고 하니 바로 꼬리를 내려 한국관을 메트로폴리탄 중앙으로 옮기고 관장 이하 주요 인사가 마중 나온 일이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유엔 열설도 어떤 정상의 연설보다 BTS연설이 가장 인기 있었고 유엔이 올린 유튜브 영상 중 가장 조회수가 폭발하여 한때 유엔 홈피가 다운될 지경이었다. 이미 유엔에서 BTS가 보여준 폭발력에 주목하는 각국 정상들 역시 향후 각종 세계적 협의나 모임에 그들을 초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듯하다. 한국에서는 모든 게 빠르게 변한다. 이미 '오징어 게임'이 한국에서는 넷플릭스 1위가 아니고, 'My Universe'도 멜론 차트 1위가 아니라고 한다. 더 이상 전 세계 1위를 했다고 해서 황송해하고 감격해하는 한국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는 마인드인데 그렇게 때문에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건 사실이다. 요즘 내가 보는 <그레이 아나토미>가 시즌4를 넘어서자 정말 짜증이 날 정도인데 만일 이 드라마가 한국에서 방영되었다면 지루하다고, 이 따위로 만들 거면 종영하라고 난리가 났을 거다. 나오는 사람은 정해져 있고 서사도 없이 이 사람 저 사람이랑 sex를 해대는 통에 진짜 스토리가 산으로 간다. 정말 꾹 참고 보면서 향후 리뷰도 할 작정이긴 하지만 이러니 한국 드라마에 그렇게 올인을 해대지~ 싶기도 하다. 한국은 정말 시즌제 드라마가 매우 드문 편인데 늘 금방 싫증내고, 그 와중에 퀄리티가 떨어지는 꼴은 또 못 보는 한국인 특성 때문이기도 할 거다. 


빛이 밝을수록 어둠도 깊은 편이라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을수록 당연히 어려운 사람들도 많아 여전히 생활고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고, 우울한 뉴스도 많아진다. 아이들을 극히 적게 낳는 나라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사람들이 힘없는 아이들이라는 게 정말 속상하고 마음이 미어진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생명값이 가벼운 건 아니지만 나라 전체가 아이들과 젊은 사람들에게 조금은 관대한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들을 놀이터보다는 학원으로 내모는 문화와 성인이 되기도 전에 각종 빚을 1억이나 부담시키는 나라가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각자도생과 극도의 경쟁이 한국을 새로운 문화대국으로 만든 것도 사실이지만 그 반대편에서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손길이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오징어 게임을 보고 그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듬. 늘 눈치 빠르고 행동이 잽싼 사람들은 다 죽고 언제나 느리고 우유부단한 이정재가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건 시사하는 바가 컸다. 게다가 이정재는 마지막 오징어 서클에 들어가기 바로 직전, 게임포기를 선언한다. 456억원보다 동네동생의 목숨을 살리겠다는 그의 선택은 한국인이 아니라면, 절대 이해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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