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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휴 Nov 29. 2021

옷소매 붉은끝동

구경이를 한참 보던 어느날, 내가 가끔가던 <레몬*라스>에서 '옷소매'에 대한 이야기가 심상치않게 나오기 시작했다. 이 드라마가 너무 재밌다면서.... 댓글들 반응도 장난아니고. 사실 나는 남들이 다 보는 드라마는 안보는 청개구리같은 성향의 사람이었는데 이런것도 나이가 들면 바뀌는건지... 이제는 나혼자 재밌고 즐겁고 하는게 별로고 남들도 다 알고 즐기는걸 같이 하는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전에는 드라마든 영화든 혼자봐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이제는 남편이랑 같이 보는게 좋아서 남편을 꼬드겨 '옷소매 붉은끝동'을 보자고 했다. 1화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이 이야기는 세간에 많이 알려진 영조와 정조이야기로 딱히 새로울게 없는데 뭐가 그렇게 재미있을까 싶더니.... 1회 시작부터 장난아니다. 갑자기 새로 부임한 사또이야기가 공포스럽게 흘러가더니만 장화홍련이야기가 딱!! 1회를 보는순간 이 드라마가 왜 잘 되는지 알 수 있는 포인트였다. 일단 배우들의 합이 좋다. 2PM의 준호가 연기를 꽤 잘한다는건 '김과장'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군대를 갔다와서 그런지 어딘가 모르게 더 남자다워지고 어른스러워져서 남자주인공으로 극을 잘 이끌어간다. 의외로 한복이 너무 잘 어울려서 깜짝 놀람. 여주인공인 이세영은 아역출신인데 연기내공이 상당하고 준호랑 케미가 좋아 드라마를 보는 재미가 있다. (이세영이 정말 예쁜 얼굴인데 머리를 꼭 저렇게 해야했는가는 약간 의문) 물론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쓰는 작가님은 물론이고(웹소설이 원작으로 있기는 하다) 역사를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픽션을 적절히 가미한 고증은 역사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도 재미를 준다. 주인공은 물론이고 조연들도 딱히 연기구멍이 없는데 특히 영조를 연기하는 이덕화, 중전을 연기하는 장희진이 배역에 찰떡이라는 평이 많다. 화완옹주를 연기하는 서예림에 대해서는 목소리톤이 지나치게 앙칼지다는 의견이 있긴하나 내가 볼때 드라마의 몰입을 해칠정도는 아니고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연기가 안정되니 드라마가 잘 굴러갈 수 밖에.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드라마를 이끌고 가는 가장 큰 힘은 바로 연출력이다. 연출이 세련되기도 하지만 음악사용이 절묘하며 특히 6회 마지막씬에서는 둘이 목욕탕에서 서 있는데 서로간의 숨소리가 섞이며 키스씬도 아닌데 아찔한 장면을 연출해냈다. 사극이라 음악이 쌩뚱맞으면 안되는데 감정이 고조될 때 북소리를 이용한다던지 하는 식으로 감독님의 센스가 돋보이더라. 사극이기 때문에 당연히 극의 흐름이 아역-성인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는데 1회에는 공포스러운 장면으로 충격을 주었다면 2회 시작은 호랑이의 등장으로 시선을 끌면서 뻔하지만 뻔하지 않게 연출을 한 감독님의 연출력이 바로 입소문을 타게하며 뒷심을 발휘하는 원동력으로 보인다. 요즘은 워낙 드라마도, OTT도 많기에 초반에 시청자를 휘어잡지 않으면 상당히 어려워지는데... 1,2회를 잘 마무리한 듯. 이야기 서사는 아무래도 '대장금'이나 '동이','이산'을 연상시키지만 결말을 다 아는데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보게하는 힘은 전적으로 배우, 연출, 극본의 힘인듯. 이 드라마로 인해 MBC가 얼마나 기쁜지는 쏟아지는 메이킹영상 숫자만 봐도 알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Izq_9Vg8bA

 

나는 '옷소매 붉은 끝동'을 보면서 영조가 정조를 대하는 태도가 나랑 비슷한 데가 있어서 놀랄 수 밖에 없었는데 극 중에서 영조는 상당히 변덕이 심하고 감정기복도 극심한 사람으로 나온다. (실제로도 좀 그렇다고 하네요) 정조를 사랑하는 마음은 분명하지만 감정의 진폭이 커서 정조는 영조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고 어려워하는데 나 역시 우리 아이에게 저런 모습을 보이지 않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영조처럼 아이의 뺨을 때리거나 체벌을 한적은 없지만 아이가 잘못할 때, 나를 속였을 때, 나를 실망시켰을 때 나도 감정적으로 아이를 궁지에 몰아넣은 적이 많다. 그리고 또 속상하고 마음아프니 아이를 달래준다고 옆에 가서 안아주고 달래주고 또 마음을 읽어준 적도 꽤 된다. 아이는 내게 적응해 예전처럼 속상해하거나 힘들어하지 않고 내 사과를 받아주고 여전히 나를 사랑해주지만 극단적인 감정 진폭이 아이에게 좋을리 없고 불안하게 만드는데 일조한것은 아닌지 나를 반성하게 된다. 불행 중 다행인것은 남편은 나처럼 감정적이지 않아 아이를 이성적으로 대하고 또 늘 내게 감정을 억누르라고 말하지만 나도 영조처럼 "나도 그때그때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는 말을 하게될까봐 두렵고 또 두렵다. 영조는 정조에게 화를 많이 내고 벌도 많이 주지만 그 일을 몇백년 후 TV로 보는 우리에게는 '저게 저럴 정도로 큰 일인가?!'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 당시에는 큰 일이었던 법도가 세월이 지나고나면 별 일이 아니게 되는 것이 흔한 일이라는거다. 내게 큰 일이 남에게는 별 일이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아도 받아들이는게 쉽지는 않은 일이다. 아들에게 큰 기대를 가지고 지나치게 몰아세워서 결국 아들(사도세자)을 죽게 만들었던 영조나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는 걸 보고 자랐던 정조가 어떻게 정신적으로 건강할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대에 좋은 왕으로 남았던 정조는 정말 많은 노력을 했던 것이 분명하다. 자식을 극단적으로 대했던 영조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사도세자의 경우를 보면 영조에게 화완옹주같은 자식이 있다는 점은 정말 아이러니 - 당시 화완옹주는 영조의 막내딸로 남편과 자식을 잃자 그것을 안타깝게 여긴 영조가 궁에 들어와 살라고 했다고 함.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중심과 균형이 필요한 시점이다. 즐겁게 드라마만 보고 싶었는데 예상외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드라마였음.


*옷소매는 드라마리뷰가 이 한편으로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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