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3-12)
구경이가 끝났다. 한가지 아쉬웠던건 너무 시청률이 저조했고 그렇다보니 동력이 없어서인지 약간 용두사미 드라마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살인사건은 디테일이 중요한데 표현이 어려웠던 부분을 게임이나 다른 연출로 스리슬쩍 넘어가려던 부분이 많아서 그 점이 좀 아쉽다. (굉장히 창의적이긴 했음) 그리고 거침없이 살인을 저지르던 케이가 산타를 죽일때 지지부진했던 점이 가장 옥의 티이며 참신하게 시작했던 드라마가 막판에 너무 권선징악으로 흐른점이 개인적으로는 제일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불특정다수가 보는 드라마이니 케이가 벌을 받지않게 놔두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이 드라마를 보고나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역시 여자들만 나오는 드라마는 시청률이 높기가 쉽지않다는 거다. 진부한 말이지만 여자들의 적이 여자들이라서 그런걸까? 왜 (드라마의 주 시청자들인) 여자들은 정작 주인공도 여자, 살인마도 여자, 빌런도 여자인 드라마를 왜 보지 않았던 걸까? 이건 여권신장하고는 아무 관련도 없는 그저 균형감각을 상실한 캐스팅이라서 그렇다. 모든 주인공을 여자로 포진하게 하는건 참신하고 좋았던 색다른 시도였지만 '한국드라마는 로맨스로 통한다'는 대명제 앞에서 처음의 신선했던 시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힘을 잃었고 (게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살인사건이 참신함보다는 기존영화나 드라마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게 됨) 그러다보니 기존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지않는 액션씬, 총격씬 등이 가미되면서 (아무래도 여자들의 액션씬이라 긴박감이 덜했음) 외려 처음보다 재미가 반감된 것. 어쨌든 작가가 자신의 능력안에서 최선을 다해 드라마를 마무리한건 알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지나치게 애쓴 느낌이 드라마로 보여서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탐정사무소를 차려도 여전히 게임에서 빠져나오지 않은 구경이, 그리고 감옥에서도 자신의 잘못은 말 안해도 맛집이야기엔 빠지지않는 김부장(용국장 비서), 손바닥만한 햇살을 받으려고 몸을 이리저리 돌리던 케이가 누군가 옆방에서 외치는 소리(그놈은 죽어야돼~ 뭐 이런)에 바로 반응하는 모습 등은 사람은 역시 쉽게 바뀌지 않는구나를 보여줘서 더 반갑다.
이 드라마의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한다면 케이(김혜준)는 날때부터 소시오패스 성향이 강한 인물로 부모의 죽음(아빠가 엄마를 죽이고 본인도 자살함)을 보고 산속에 일주일간 방치되어 있었다가 무사히 구조된 후 이모와 함께 생활한다. 그녀는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는데 연극에 유독 관심이 많아 연극대본을 보고 살인을 저지르며 뭔가 자신이 나쁜 사람들을 죽임으로써 세상이 조금 더 깨끗해지는데 일조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고등학교때 수위아저씨를 죽이며 그의 아들인 건욱과 손을 잡게된다. 건욱은 아버지를 죽이고 싶을만큼 미웠지만 (아버지가 알콜중독자로 늘 엄마와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함) 차마 죽이지 못하다가 케이가 독극물을 마시고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숨통을 직접 끊어주자 묘한 쾌감을 느끼고 그녀의 조력자가 된다. 드라마에서는 구경이(이영애)가 케이만큼 머리가 똑똑한 사람으로 나오는데 한때 경찰관이었던 그는 남편의 자살로 인해 모든것을 그만두고 폐인처럼 생활하다가 자신의 후배인 나제희(보험조사관)에게 이끌려 세상으로 나오게 되는 인물이다. 보험사기사건을 조사하다가 이 사건이 얽히고 설킨 살인사건임을 직감하게 되는 그녀는 산타, 보험사의 나제희, 오경수와 함께 팀을 꾸려 3회부터 본격 사건조사에 나선다. 3회에 그들이 팀을 꾸릴 수 있었던 이유는 용국장이 자금을 대주기 때문이었는데 그 이유는 뒤늦게 밝혀진다. 용국장은 아들인 허성태를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하는 인물로 겉으로는 푸른어린이재단을 운영하며 뒤로는 각종 악행을 저지르는데 손자뻘같은 막내아들인 허현태가 마약을 비롯해 각종 사고를 일으키자 그것을 무마하고자 케이를 잡으려한다. 케이는 사람을 죽이긴 하지만 완벽하게 계획을 짜서 사고사로 위장하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는데 구경이가 그것이 사고사가 아님을 알고 자꾸 자신의 뒤를 캐자 불안감을 느낀다. 인물관계도에는 안 나와있지만 중요한 인물인 고담(김수로)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한국을 뜨려고 했으나 조사B팀(구경이와 팀원들)의 방해로 고담 대신 유일한 가족이었던 이모(배혜선)를 죽이게 된 케이는 그때부터 이성을 잃고 폭주한다. 한편 CCTV회사에 다니는 건욱이 동성애인을 만나 자꾸 살인계획에서 빠지려하자 케이는 건욱을 위협해 자신의 살해계획에 가담시키고, 케이대신 고담을 죽이는데 성공한 용국장은 허성태를 마침내 대통령후보에 올려놓으며 승승장구한다. (용국장이 고담을 죽이려고 했던 이유는 고담이 또다른 유력한 대선후보였기 때문이며 또한 고담이 허현태의 마약 동영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케이는 용국장의 정보를 알기위해 용국장 밑으로 들어가 용국장이 죽이라고 부탁한 사람들을 죽이며 그들(용국장+케이)은 공동의 목표인 구경이를 제거하고자 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구경이는 다시 팀원들과 만나 계획을 짜고 건욱을 만나러 간다. 용국장이 케이를 찾고자 했던 이유를 마침내 알게된 조사B팀과 역시 용국장이 고담을 죽인 이유를 알게된 케이는 각자의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 케이는 자신이 죽이려고 했던 리스트에서 유일하게 빠져나온 인물인 허현태를 죽이려고 하며, 그 사실을 눈치챈 용국장은 어떻게든 아들만 살려달라고 구경이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구경이는 용국장을 이용해 케이를 잡으려고 한다. 11회에서 용국장인척 케이를 속이려던 구경이가 케이를 위로하던(?) 장면은 무엇인가 감동적인 느낌을 주었는데 김혜준이 그 장면을 워낙 잘 살리기도 했고 (날 때부터 외로운 존재였던 케이가 누군가에게 이해받는듯한 느낌을 줌) 늘 사건중심으로 움직이던 드라마에서 모처럼 감정이 흘러넘치던 장면이었음. 결국 11-12회에서는 케이가 아무도 죽이지 못하면서 케이와 용국장은 감옥으로, 조사B팀은 새로운 <구경수 탐정사무소>를 구경이의 집에 개설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리고 그 첫 의뢰인은 바로 '산소같은 여자 이영애' (동영상 참조!) 끝까지 정체가 의심스러웠던 산타는 케이가 구경이 남편의 죽음(결국 남편은 자살한 것으로 판명)과 관련이 있었다고 했지만 또 경수는 아니라고 반박하며 결국 산타의 정체는 미궁으로 남았다.
https://tv.naver.com/v/24041173
드라마를 끌고간 히로인인 이영애의 변신은 말하자면 입 아프며 50이 넘은 나이에 액션 및 새로운 것을 익히느라 고군분투한 그녀의 노력은 정말 칭찬받아 마땅하다. 예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아무리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거적대기같은 옷을 입어도 그 특유의 아우라는 지울 수 없었던 듯. 희대의 연쇄 살인마라는 어찌보면 남자도 소화해내기 어려운 역할을 맡아 해맑은 웃음과 순간순간 변하는 표정으로 잘 소화해낸 김혜준도 대단하다. (김혜준이 얼마나 좋은 배우인지는 첫회와 마지막회에서 달라진 액션만 봐도 알 수 있다) 생전 처음으로 빌런역을 맡은게 아닌지 의심스러운 김혜숙 배우님은 <도둑들>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역을 소화해 내셨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진짜 게임회사 직원을 캐스팅한게 아닐까 할 정도로 연기를 자연스럽게 했던 조현철배우가 경수역할로 나와 반가왔다. 나제희 역의 곽선영은 다 좋은데 머리모양이 좀 아쉬웠고(후반으로 갈수록 좀 나아짐) 개인적으로는 얼굴도 되고 피지컬도 괜찮은 산타가 앞으로 주연배우로 대성할지 여부가 궁금하다. 원래 16부작이었는데 시청률이 저조해 12회로 줄인건 아니었는지 좀 의심했으나 그건 아니고 원래 12부작으로 계획했었다고 함. 원래도 연출이 독보적이었는데 12회에서 구경이가 어떻게 케이 뒤통수를 치는지 알려주는 장면들이 특히 대박임. 앞으로 연출자님 작품은 믿고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정말정말 멋졌음. 국내에서는 시청률이 저조했지만 웰메이드 작품인 만큼 향후에 아님 해외에서라도 꾸준히 사랑받는 작품이 되길 기원합니다.
p.s. 허현태 역의 박지민은 처음에는 나이차가 너무 나서 엥? 아들이라고? 할 정도로 어색했으나 다들 연기를 잘해서 그런지 나중에는 그냥 극중에 잘 젖어들어서 전혀 어색함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좀 더 나잇대가 적절한 배우를 캐스팅했더라면 더 좋았을 듯하다. 워낙 아역배우로 유명했던지라 더 어린 느낌이 강해서 아쉬움이 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