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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휴 Dec 22. 2021

꽃다운 나이

꽃다운 나이란 대체 몇살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개는 10대후반에서 20대중반정도를 가르켜 이야기하고 보통 서른이 다가오면 더이상은 젊지않고 나이를 먹어간다고 느끼게 된다. 나 역시 그랬는데 특히 나는 '서른'이 되는게 그렇게 싫었다. 한때는 서른이 되는게 어찌나 싫었던지 스물아홉에 요절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그토록 서른이 되기 싫었던 나는 스물아홉, 서른, 서른하나에 걸쳐 3년이나 소위 "서른병"을 앓았으며 30언저리에 한동안 우울해했다. 그토록 맞이하고 싶지 않았던 30대를 맞이한 덕분(?)인지 나의 30대는 우울하게 흘러갔는데 집과 회사를 왕복하며 회사에서는 인정받고 승진해갔지만 수많은 연애에 실패하며(나는 연애의 끝은 결혼이라고 믿었던 올드한 사람이기에 그랬음. 양해부탁드립니다) 30대중반이 되자 결혼보다 노후준비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내 기억속에 나는 20대이후 더 이상은 누군가에게서 "젊어서 좋겠다"거나 "꽃다운 나이다"라거나 "청춘이네"라는 말을 듣지 않았었는데 참으로 기이하게도 며칠전 동네에서 그런 말을 듣게 되었다. 내 글을 다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비교적 나이가 꽤 있는 편에 속하며 이제 40대 끝자락에 와 있다. 며칠 더 있으면 40대라고 우기기도 애매한 나이가 된다. 그 연유가 무엇이었는지 이하글에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우리집 근처에는 목욕탕이 하나 있다. 요즘은 찜질방이 많은데 이 곳은 요즘 트렌드와는 살짝 맞지않는 예전 스타일의 목욕탕이다. 나 역시 이 곳을 처음 방문하고는 "헉"소리가 절로 나왔는데... 코로나라서 그런가 사람이 없고 시설도 약간은 후진(?) 이 곳을 다른 곳보다 애용하게 되었다. 젊은 사람들 취향이 아니다보니 이 목욕탕은 늘 새벽에 북적거리고 오후4시만 되면 사람이 점차 줄어들어 5시반쯤 되면 거의 적막이 흐르는 듯한 곳으로 실제로도 7시쯤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나 역시 처음 이 곳을 방문할 때 멋모르고 5시에 방문하여 혼자 목욕을 하고는 이렇게 장사가 안되서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한 적이 있다. 이 걱정은 추후 토요일 오전 8시에 방문했다가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보고 여지없이 사라지고 말았지만) 이 목욕탕은 새로 들고나는 사람들이 거의 없고 늘 주고객층이 정해져 있다보니 코로나로 난리통인 지난 2년간에도 전혀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바로 티가나는 탓에 나는 조용히 있었지만 한달에 한두번은 가다보니 (원래 1주일에 최소한 1번은 갈 정도로 사우나를 좋아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정말 줄이고 줄여 한달에 1번정도 갔음) 어느새 사람들과 안면이 익숙해지고 말았다. 아는 사람들이 많아져 사우나에서 조용히 있기가 힘들어지자 나는 시간대를 옮겨 다시 4시쯤 사우나를 갔다. 그러면 역시 또 혼자서 조용히 목욕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엊그제는 안면은 있었지만 인사를 나누지는 않은 분과 같이 있게 되었는데 내가 혼자 등을 미느라고 끙끙대자 조용히 와서 등을 밀어주셨다. 나도 등을 밀어드리겠다는 말을 건넸으나 극구 거절하던 그 분은 내가 음료수라도 대접하려고 하자 그것도 사양하며 갑자기 살 이야기를 꺼내셨다. 안 그래도 요즘 갱년기 초기라 그런지 아니면 폐경이라 호르몬변화 때문인지 자꾸 살이 찌는통에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내게 살이 포동하게 있어서 보기좋다는 말씀과 함께 말이다. 그 분은 자신 역시 어느정도 살집이 있었는데 수술을 여러번 하자 이렇게 마른 몸이 되어버렸다는 말씀과 함께 부럽다고 하셨다. 나는 언제나 살집이 있었기에 내 몸에 대해서 불평과 불만이 더 많았지 감사한 마음이 없었는데 정말 의외였다. 그리고 내 나이를 물어보시곤 정말 꽃다운 나이라며 좋겠다고 하시더라. 나는 최근 어느 누구에게도 이런 비슷한 류의 말조차 들은적이 없어 당황했고, 생소했으며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지만 상대방의 진지한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는 내게 최소한 그분의 마음과 말은 진심이었던 것이다. 연배가 꽤 있어보이시던 그 분은 자신이 80언저리라고 말씀하셨고 건강을 잃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라가는 자신이 송장같다며 쓸쓸하고 슬픈 얼굴을 하셨고 그 모습에 갑자기 나는 작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났다.


우리 할머니는 꽤 장수하신 편이셨는데 100세를 훌쩍 넘기고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꽤 건장하신 체격을 유지하고 계셨으나 78세쯤 엄청 아프시면서 10kg정도를 잃고 기적적으로 회복하셨다. (보통의 노인분들은 그 고비를 못 넘고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다고 한다. 할머니는 내가 볼 때에도 삶의 의지가 굉장히 강하고 워낙 자기관리도 잘 되시는 분이긴했다) 할머니는 그때이후 부쩍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시기 시작하면서 손주들을 만날때마다 용돈을 주시곤했다. (자식들이 용돈을 드리면 그걸 손주에게 되돌려주는 시스템. 할머니는 많은 손주들에게 용돈을 주실 때 헷갈리거나 누락되지 않도록 하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고 그게 결과적으로는 할머니의 치매를 막았다) 할머니는 특별히 지병을 앓지는 않으셨지만 세월에는 장사가 없었기에 서서히 노화를 겪으셨고 나를 비롯한 손주들과 할머니의 자녀들은 할머니의 늙어가는 모습을 그대로 봐야만 했다. 나이가 70을 넘게되자 할머니를 집에서 모시는게 점차 힘들어진 큰아버지 및 아버지, 고모 등은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기로 하고 대신 자주 찾아뵙기로 결정을 하셨다. 그리고 큰아버지는 정말로 아침저녁을 문안인사드리듯 요양병원에 출근도장을 찍으셨고 아버지는 일주일에 2번씩 방문하시며 할머니가 외롭게 느끼시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두분 다 자택이 요양병원에서 멀었음. 그 생활을 10년 가까이 하시는걸 보고 존경심이 절로 우러남) 할머니가 100세를 훌쩍 넘기시자 수명을 다한 치아는 하나둘씩 빠지기 시작했고 휠체어를 타고 산책을 나가실 수 있었던 몸상태는 누워서 지내실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나빠졌다. 할머니는 그 와중에도 우리들이 오면 끊임없이 말을 하시려고 하셨고 언제나 입을 크게 벌리셨다. 나는 그게 할머니가 어떻게든 삶을 이어가려는 의지였다고 생각을 한다. 일제강점기때 태어나서 8.15광복을 겪고 또 6.25전쟁을 겪고 전쟁통에 남편을 잃은 할머니가 홀로 자식들을 키우시기 얼마나 힘드셨을까를 생각해보면 마음이 아려온다. 우리 할머니는 코로나로 인해 면회가 막히자 결국 자식들을 보지못해 1년넘게 외롭게 지내시다 돌아가셨는데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도 살아계실 수도 있다.

나는 할머니와 사이가 좋았고 할머니가 장수하셔서 힘든것도 딱히 없었지만 할머니만큼 장수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이 늙어서 이빨이 다 빠지면 얼굴이 더 이상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약간은 의 형상으로 바뀐다. 살도 다 빠져서 뼈와 가죽만 남는것은 물론이고 말을 하려고 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움직일 수 없기때문에 대소변을 가릴 수 없는것은 물론이고 그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도 쇠약해진다. 눈동자도 검은 눈동자에서 점차 회색처럼 변해가며 나중에는 거의 각막이 하얗게 되는데 실제로 보게되면 솔직히 좀 무섭기도 하다. 할머니는 백세이후에는 자신의 나이를 언제나 100세라고 못박고 싶어하셨다. 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사람이 병에 걸려 100세 이전에 죽는것이 어쩌면 축복이 될수도 있구나 라는 마음과 함께 내가 늙어가는 모습을 후손들이 (자식까지는 모르지만 손주, 어쩌면 증손주에게까지는 보여주고 싶지않다) 몰랐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우리 할머니가 보기에는 80세의 노인도 아직 꽃다운 나이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정말 '늙은 나이'라는건 존재하지 않는다. 언젠가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해주셨는데... "오늘이야말로 네가 세상에서 사는 가장 젊은 날이다"라고. 나 역시 나이가 들고나니 아쉬운 부분이 분명 있다. 아무리 운동을 해도 체형이 리즈시절로 돌아가지 않고 20대에는 조금만 식단조절을 해도 살이 금방 빠졌다면 30대에는 운동+식단을 병행해야 겨우 살이 빠지고 40대에는 운동+식단을 병행해도 전혀 살이 빠지지않는 현실말이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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