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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휴 May 01. 2022

스물다섯 스물하나 #1.

(feat. 2521)

남편과 나는 가끔 철 지난 드라마를 같이 본다. 이것은 언젠가부터 우리의 취미생활 중 하나가 되었는데 원래 드라마보다는 영화를 좋아하던 남편과 영화보다는 드라마보기를 좋아하던 나는 서로 TV코드가 잘 맞지않아 야구중계외에는 같이 TV를 보는일이 드물었다. 그런데 OTT이후, 종영한 드라마 몰아보기가 가능해지고 코로나로 인해 바깥활동도 힘들어지자 평일에는 하루 한편씩, 주말에는 2편 혹은 3편까지 같이 보면서 16편(대개 한국드라마 미니시리즈는 16편임)을 2주일안에 클리어하기가 가능해졌던 것. 가끔은 아들까지 합세하며 우리가족의 즐거운 드라마깨기 시리즈는 시작되었는데 이번에는 오랜만에 최신버전으로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보게되었다. 이 드라마를 본방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화제성이 높은 드라마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결말이 사람들에게 꽤나 충격을 주면서 배신감(?)을 느꼈다는 사람들이 꽤 있더라. 이 드라마는 1998년 IMF때 고등학생과 대학생이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주인공인 김태리와 남주혁을 제외하면 나머지 3명은 잘 모르는 얼굴들이지만 어쨌든 5명이 얼키고 설키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나 역시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기에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옛 흔적에 보는 재미가 있었고 (의외로 아들은 재미없어함. 삐삐라는 시스템을 이해하기도 힘들고 왜 저 당시에는 010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지만 공중전화에 대해서만큼은 매우 신기해했다)


이 드라마의 큰 줄거리는 이렇다. 펜싱선수인 나희도(김태리)는 어렸을때 특파원인 엄마를 따라 가게된 파리에서 아빠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펜싱을 하게된다. 어릴때부터 신동소리를 들으며 승승장구하던 희도는 중학교이후 아빠의 죽음을 겪으며 긴 슬럼프에 빠진다. 펜싱을 그만두고 공부나 하라는 엄마의 권유에도 굴하지 않으며 펜싱을 계속하던 희도는 IMF로 인해 학교 펜싱부가 사라지며 펜싱을 그만둬야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다. 그녀는 펜싱으로 유명한 학교인 태양고로 전학가길 소망하는데 태양고의 유명한 국가대표출신 코치인 양찬미에게 자신을 스카우트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코치는 귓등으로도 듣지않는다. 강제전학이라도 가기위해 사건사고에 휘말리려는 그녀는 결국 엄마의 부탁10%(양찬미와 희도의 엄마는 친분과 악연이 동시에 있는 관계였음)와 자신의 노력90%로 태양고 전학에 성공한다. 태양고에는 자신의 우상이었던 고유림이 있었고 (고등학생인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고유림과 친해지고 싶었지만 고유림은 가난한 자신과는 달리 가방이며 신발을 메이커만 하고 다니는 나희도가 마음에 들지않았고 그들은 앙숙으로 지내게 된다. 애정이 깊었던 만큼 증오도 커서 그들은 오랫동안 애증의 관계로 지낸다.

한편 재벌집 아들로 압구정동에서 잘 살던 백이진(남주혁)은 IMF로 인해 아버지는 경제사범이 되고, 집은 가압류가 되며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된다. 아버지는 군산으로, 엄마는 포항으로, 남동생은 고모네 집에 가게되며 자신은 군대를 가게되는데 그나마 군대에서도 오래 있지 못하고 의가사제대(집안을 보살펴야해서 6개월만 복무하고 일찍 제대하는 것)를 하게된다. 나희도가 사는 동네 반지하방에 이사를 오게 된 백이진은 신문배달 및 만화방 아르바이트를 하며 겨우 생활을 해 나간다. 등록금때문에 연대 공대 학생이지만 휴학을 하고,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도 모두 의절한 채 하루하루가 고달픈 이진에게 희도의 존재는 뭔가 희망을 주는 존재였다. 자신보다 4살이나 어리지만 '오빠''선배'(백이진은 태양고 출신이었고, 희도가 태양고로 전학함으로써 직속후배가 됨)라는 말대신 항상 자신에게 이름을 부르거나 '너'라며 반말을 하지만 언제나 모든 일에 진심으로 부딪치고 솔직한 그녀는 자신과 달라 신기하면서도 항상 애정어린 시선을 갖게하는 존재였다. 자신의 집에까지 찾아온 빚쟁이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며 절대 한순간도 행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이진에게 희도는 그를 학교 운동장으로 데리고 가 운동장 개수대에서 물을 틀어주며 자신의 방식대로 그를 위로한다. 이진은 계속 면접에서 낙방하면서도 희도를 보고 웃을 수 있었는데 마침내 동생에게까지 빚쟁이들이 찾아오자 견디지 못하고 동생을 데리고 포항으로 내려간다. 포항의 외삼촌 가게에서 생선장사를 하며 지내던 이진은 희도에게 말도없이 이사를 하게된것이 마음이 쓰이지만 핸드폰도 없던 그 시절, 삐삐번호도 모르는 희도에게 연락할 길은 없었다. 희도는 자신의 국가대표 발탁소식(전국순위 26등이던 나희도는 국가대표에 발탁될 가능성이 전무했지만 IMF때문에 2명이 펜싱을 그만두게 되면서 기적적으로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할 기회를 얻는다. 그녀는 반드시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양찬미 코치에게 특훈까지 부탁하며 새벽훈련부터 야간훈련까지 하는 열정을 보인다. 그리고 마침내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그 기쁜소식을 백이진에게 전하려는데.. 그만 백이진이 아무말도 없이 사라진 것)을 전하기위해 그의 집에 찾아갔지만 이진을 만날 수 없고, 이진의 삐삐번호를 고유림에게 얻어내 그에게 음성메시지를 남긴다. 백이진이 힘들때마다 포항에서 공중전화로 그 음성메시지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것은 이 드라마 초반의 백미!

이진은 동생과 싸우게 된 어느날 중학생인 동생이 "형이 힘들어서 도망친거면서 나 위해서 포항에 왔다고 하지말라"는 말에 충격을 받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기로 한다. 5개월후 이진은 IMF때 한시적으로 실시되었던 고졸 언론채용에 입사해 합격하고 (그 당시만 해도 대졸들이 고졸을 비하하는게 심했음. 비행기에서도 담배를 태우려는 국가대표 코치의 모습에 충격받는 사람들 많았을 듯) 희도에게 연락을 취하려 하지만 엄마에 의해 강제적으로(?) 핸드폰을 갖게된 희도와는 연락이 닿지않았다. 게다가 당시 희도도 고유림과 같이 태릉선수촌에 들어가 있던터라 집으로 찾아가도 만날 수 없었음. 어느날 우연히 광화문 시위현장에서 마주하게 된 그들은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되고 (그런데 희도의 남자친구랑 셋이 만나게 됨. 이런 장면을 코믹으로 풀어내는 작가님의 솜씨가 대단함) 서로 핸드폰번호를 교환하며 그 이후에도 계속 기자(백이진은 스포츠국을 담당하게 됨)와 선수로 만나게 된다. 1999 경주아시안게임 (실제로는 1999년에 경주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리지 않음/허구)에 출전하게 된 희도와 유림은 결승전에서 맞붙게되고 치열한 공방끝에 결국 희도가 금메달을 딴다. 그러나 동시타(동시에 타격해서 불이 동시에 들어오는 경우. 그때만해도 비디오판독 도입 이전이라 판정은 심판의 고유권한이었음)였고 판정으로 인해 희도가 금메달을 목에걸자 듣보잡(?)인 나희도의 선전을 받아들이지 못한 국민들과 눈물을 흘리는 고유림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희도는 금메달을 훔쳤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그녀는 억울함과 슬픔때문에 기자회견에서 냉정을 잃고 둘은 그 사건으로 인해 3개월 징계를 받아 대표팀에서 빠지게된다. (이 과정에서 백이진이 심판을 찾아 포대기를 안겨주며 인터뷰에 성공해 희도의 억울함을 풀어주는게 포인트! 그리고 결승전을 앞두고 칼이 뒤바뀌는 소동중에서도 이진이 희진에게 깨알같은 도움을 계속 주게된다) 자신의 감정이 사랑이라는 걸 알고있지만 고등학생인 희도의 상황을 고려해 고백을 하지않는 이진과 유림에 대한 마음은 사랑이라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이진에 대한 감정(자신에 비해 머리가 좋은 이진에 대해 질투, 동경, 사랑 등 복합적인 마음을 느낌)은 뭔지 모르겠다며 이진과 자신의 관계는 '무지개'라고 칭하는 희도는 언제나 이진에게는 웃음을 주는 존재였다.


드라마는 이 당시 여고생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만화가 원수연의 <풀하우스>를 매개체로 극을 이끌어가며 결국 <풀하우스>는 이진과 희도의 서사를 쌓는것과 유림-이진-희도사이에 삼각관계(?)를 부각를 시키는 것에 아주 큰 역할로 자리매김한다. 주인공들의 연기를 평가하자면 진짜 이 드라마는 김태리가 활어처럼 드라마에서 날뛰는데 남주혁이 안정적으로 서포트를 하고 (남주혁은 연기파 배우는 아니지만 솔직히 김태리를 보좌하고 극을 이끌어가는데는 부족함이 없다) 나머지 3명도 각자 자기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 가지 아쉬웠던건 나희도의 현재역으로 나오는 김소현(뮤지컬배우)의 초반연기가 상당히 어색하다는 것. 김태리가 워낙 잘하다보니 상대적으로 그런 모습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이 드라마는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연출을 너무 잘하고 (화면전환이 거의 예술) 캐릭터마다 서사를 충분히 제공하며 5명이 조금씩 얼키고 설키게 설정한 작가의 글솜씨가 무척 돋보이는 드라마다.


리뷰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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