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현실적인 대사에 공감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을 걸로 사료된다. 나 역시 그동안의 며느리 생활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큰며느리가 나오는 부분이 사이다이긴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여자들이 솔직히 몇 명이나 되겠는가?! 대부분은 사린(박하선役)과 큰동서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하고 존재할 것 같다.
01.
동갑내기이자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온 사린과 구영은 평범하게 연애를 하고 결혼한다. 첫회는 결혼을 하고 맞벌이인데도 불구하고 시어미니 생신상을 차리느라 분주한 사린. (게다가 그걸 시누가 사주한다는 게 포인트) 전날 시댁에 가서 자고 다음날 아침에 생신상을 차리는데 결국 남편과 시누는 자고, 며느리인 사린만 동분서주한다. 생신상을 차리느라 고생한 건 사린인데 아침식사 도중 이야기하는 시댁 식구들의 대화에 끼어들 수가 없다. 설거지까지 마치고 자리에 앉은 사린은 먹을 과일도 없는 현실이 답답하다. 회사에서 점심 중 선배에게 '며느라期'가 무엇인가에 대해 듣게 된다. 사춘기, 갱년기같이 며느라기가 있고 빠르면 1-2년, 보통 10년, 사람에 따라 평생 안 끝나기도 한다는 설명을 듣는다. 결혼 전에 예비 시댁에 인사를 가기로 한 후배는 결혼도 하기 전에 며느라기가 시작되는 모습을 보이자 사린은 당황한다. 그래도 사린은 며느라기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02.
가족들이 다 모인 식사자리. 임신한 큰 며느리는 둘째 며느리인 사린이가 혼자 시어머니 생신상을 차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들 너무했다"며 이야기를 한다. SNS 주소를 알려달라는 시누를 막아주기 위해 큰 며느리가 도와주지만 눈치 없는 사린이는 모른다. 출산할 때 자연 분만하고 굳이 일하는 아들 부르지 말라는 시어머니 말에 큰 며느리는 "저희가 의논해서 하겠다"며 시어머니의 말문을 막는다. (큰며느리 나이스! 하지만 어지간한 여자들은 이렇게 할 수 없다는 게 포인트) 사린이는 대찬 큰며느리가 궁금하고, 구영인 사린이가 형수와 달라서 고맙다고 한다. 작년 추석일이 나오고, 큰 며느리인 예린은 동생 2명이 데이트하기 위해 나가고 남편은 들어가서 자게 하는 시어머니의 처사에 "잠깐만요"라며 제동을 건다. 여기서 큰 시누의 명대사 "다들 너무했다"가 또 나옴. 큰 며느리는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큰 아들 구일이 부모님과 이야기한다. 구일은 자기가 일을 거들겠다며 예린이에게는 일 시키지 말라고 한다. 구일은 예린이가 이제 자기 식구라며 더 이상은 부모님 말을 무조건 따를 수 없고, 명절엔 혼자 오겠다고 한다. 단호한 큰 아들의 말에 엄마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작은 아들인 구영은 속으로 '엄마 조금만 기다리세요. 사린이는 착하니까 다를 거'라고 한다.
03.
시누인 미영은 시어머니에게 싹싹하게 굴지만 가정경제에 무책임한 남편 때문에 힘들다. 사린은 자기 부모님 결혼기념일도 모르는데 시부모님 결혼기념일까지 챙겨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힘들다. 회사에서 일해야 하는데 찜질방에서 전화해서 길게 이야기하는 시어머니가 신경 쓰이고... 결국 마음 약한 사린은 결혼기념일에도 시댁에 방문을 한다. 시어머니는 아들 내외가 맞벌이를 하는 게 좋으면서도 혹시 사린이 사치를 하는 게 아닌가 걱정되고, 또 사린이가 출장을 간다고 하자 아들인 구영보다 돈을 더 잘 벌어 아들 기를 죽이는 건 아닌가도 걱정하는 이중적인 마음이 든다. '며느리의 출장=아들 밥' 걱정으로 귀결되는 시어머니들의 마음. (이게 발전하면 며느리가 암에 걸려도 아들 밥 걱정하는 시어머니가 되는 것임) 집에 온 사린은 시어머니가 자신에게 앞치마를 선물해주자 복잡한 심경이다. 휴일에 친구들 3명과 브런치를 하는 사린. 부잣집에 시집갔지만 사업자금과 용돈을 받는 친구 A는 시부모님을 상사 모시듯 해야 해서 피곤하고... 쌍둥이 육아를 하는데 남편이 실직한 친구 B는 맘 편하게 밥 한 끼 편하게 할 시간이 없다. (진짜 친구 B는 화장기 없는 얼굴로 나와서 쌍둥이 육아의 피곤함을 보여준다. 현실감 오짐) 미영은 매일 게임만 하고, 생활비를 안주는 남편 때문에 괴롭다.
내 할머니는 100세를 훌쩍 넘겨 돌아가셨다. 그녀에게는 2명의 며느리가 있었는데 그 당시 관습에 따라 큰아들 집에서 사셨다. 워낙 장수하셨기에 며느리들과 보낸 시간들도 오래되었다. 우리 아빠는 작은아들이었기에 할머니는 우리 집에서 오랜 기간 계시지는 않았지만 할머니와 가끔 보내는 시간들은 나와 동생들에게는 고역이었다. 우린 어린 나이었기에 왜 할머니가 똑같은 말을 100번씩 하시는지 몰랐고 왜 그렇게 고집스러우신지도 몰랐다. (그건 할머니의 성격이라기보다는 그저 노인의 특성에 가까운 것이었음) 말을 직선적으로 하는 할머니와 비슷한 성격이던 우리 엄마는 B형이라서 그랬는지 생각보다 할머니의 이야기에 크게 상처를 받진 않았다. 뭔가 억울하거나 한 일이 생기면 그냥 마음에 담아두기보다는 이야기했고 또 시간이 지나자 할머니도 자연스럽게 엄마를 받아들이면서 어떻게 보면 무난한 고부관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할머니의 "base"였던 큰댁은 달랐는데 큰엄마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어른들은 자세한 이야기를 자식들에게 해주지 않으므로 나도 추측만 할 뿐이다. 큰엄마는 할머니의 사과를 받고 싶어 하셨는데 결국 할머니는 며느리에게 사과를 하지 않고 돌아가시고 말았다.
교육서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부모도 자식에게 잘못한 일이 있으면 사. 과. 를 해야 한다고... 그래서 나도 우리 아들에게 사과를 자주 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라서 특히 더 그렇다. 나는 우리 아들이 원하는 3종 사과를 한 적도 많다. (미안해-잘못했어-다신 안 그럴게) 아이가 어릴 때는 하루에 10번도 넘게 사과를 하다가 지친 적도 있다. 그러나 내 사과 덕분인지 예민하고 까다로운 아이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자랐고, 이제 더 이상 눈치를 보기보다는 본인의 마음이 불편할 때 상대에게 사과를 요구할 수 있는 아이로 자랐다. 우리나라는 특이하게 어른들은 잘못을 하고도 나이 어린 사람에게는 사과를 하지 않는다. 사과란 유독 나이 어린 사람들의 전유물일 뿐이다. 사실 시댁문제는 어떻게 보면 시부모님의 '진정 어린 사과'만으로도 풀릴 때가 많다.
우리나라는 왜 결혼을 하면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고 생각하지 않고, 본인의 가정에 '편입'시킨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55년을 같이 살아도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절대 친해질 수 없는 걸 보니 (원수지간이나 안되면 다행) 딸 같은 며느리를 원한다는 것 자체가 허무맹랑하게 느껴진다.
드라마에서 사린의 시어머니는 분명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실수를 한다. 일하는 며느리인 사린에게 시대가 변했으니 둘이서 맞벌이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집안일은 여전히 예전 관습을 따르자고 한다거나, 찜질방에서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어 한참 동안 수다를 떠는 장면 등은 정말 시어머니가 못되서라기 보다는 (굳이 배려 부족이라고 보기 보다는) 단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해서라고 사료된다. 시어머니의 생신상을 차리거나 결혼기념일을 차리면서 뭔가 지쳐간 사린은 '제사준비'를 통해 뭔가 각성(?)을 한 모습을 보이고, 설거지를 하냐마냐를 고민하던 후배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어"를 내뱉는다. 앞으로의 드라마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Key Word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