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세무회계 학원의 동영상 강의 촬영실
지금까지 대체로 작가 겸 프리랜서로서 대체로 누군가에게 고용된 적이 없는 인생을 살아왔지만, 그래도 월급을 받던 때가 없지 않았다. 특히 대학을 졸업하고 번역가가 되기 전인 20대 중후반, 약 5년간은 직장에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도 생활비는 벌어야 했기 때문에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힘들었다. 사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철이 없고 제멋대로였는데, 살짝 또라이였다. 그게 겉모습에서도 다 드러나는지 아르바이트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20대 여성인데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았고 머리는 대체로 짧은 커트였으며 복장도 자유분방했고, 피어싱을 여러 개 했으며 머리는 때때로 완벽한 탈색이었다. 2000년대 중반, 그땐 그 꼴로 일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문신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문제는 스스로가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업체에서 바라는 용모단정한 모습으로 면접에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성장이 너무 부족했다. 또 그때만 해도 작가가 되겠다는 둥 작업을 해야 한다는 둥 작가 뽕에 잔뜩 취한 채 허송세월하던 때라, 별로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일을 적극적으로 구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다 자기 자리가 있는 모양이다. 때마침 지인이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라며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해 주었다. 종로의 세무회계 학원에서 강의를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일이었다. 지인의 입김이 작용한 데다, 별로 겉모습이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무난히 합격했다.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못해 그냥 집구석에 틀어박혀 손가락만 빨고 있었는데, 하여간에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월급을 받는 일 중에서 가장 오래 한 것이 바로 그때 얻은 일이다. 너무 오래 전 일이라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1년 반은 넘게 했던 것 같다. 사실 나처럼 근성 없는 사람이 그렇게 오래 일할 수 있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촬영이라고 하면 전문적일 것 같지만 실은 손가락만 멀쩡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주 쉽고 간단한 일이었다. 칠판이 비춰지도록 교실 천장에 비디오 카메라를 매단다. 카메라 렌즈에 비친 장면은 촬영실의 컴퓨터 화면으로 송출된다. 강사와 필기 위주로 촬영한다. 교단 위의 강사가 설명을 하며 자리를 옮길 때, 칠판 한 면이 꽉 차 다른 면에 판서하기 시작할 때 한쪽 카메라의 각도를 틀어 준다. 이 모든 게 촬영실 안에서 원격으로 이루어진다. 마우스 왼쪽 버튼으로 녹화 버튼을 클릭하고 조이스틱 레버를 상하좌우로 움직이면 된다. 강사가 수업 내내 엄청난 속도를 판서를 하는 것도, 칠판 앞을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아니라서 자주 많이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촬영실에 나 혼자 있으니 간섭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야말로 개꿀 알바였다.
촬영은 보통 수업 단위로 이루어졌다. 한 수업은 보통 서너 시간이었다. 나는 보통 오전 수업 네 시간을 촬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돈 욕심 때문에 근무 시간을 점점 더 늘리게 되었다. 오후 네 시간을 더 일하기도 하고 어떨 땐 저녁에 세 시간을 추가로 일하기도 했다. 앉아만 있어야 하니 정말 정말 지루했고 잠이 왔다.
이 알바가 정말 꿀인 이유는 촬영 중에 얼마든지 딴짓을 할 수 있다는 거였다. 조금만 요령이 생기면 한 손을 조이스틱에 올린 채, 곁눈으로 녹화창을 확인해 가며 얼마든지 웹 서핑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촬영실에 앉아 실컷 웹 서핑을 했다. 그래도 아무도 말릴 사람이 없었다. 수업만 제대로 녹화를 하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어느덧 시간을 그렇게 헛되이 보내는 게 아까워졌다. 교실 안에서 회계사, 세무사가 되기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에 비하면 나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웹 서핑을 관뒀다. 그 대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마침내 교실 안의 학생들처럼 나도 뭔가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게 일본어였다. 특별히 일본어일 이유는 없었다. 단지 예전에 몇 번 도전했다가 시험장까지 가기 귀찮아서 번번이 때려치운 일본어 자격증에 다시 도전하고 싶었을 뿐이다. 끝맺지 못한 느낌이 영 개운치 않아서 매듭을 짓고 싶었다.
촬영장 안에서 몇 개월 동안 기출문제를 풀었고, 결국 JLPT 1급을 무난히 취득했다. 이것이 번역가로서의 출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