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시작한 촬영 일이 계속 다른 촬영 일로
막말로 남들 다 따는 일본어 자격증 하나 땄다고 바로 번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한동안 다른 길에서 계속 방황했다. 하지만 그 길이 결국 현재와 맞닿아 있으므로, 조금만 더 사족과도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겠다. 뒤에 가서 ‘아니, 이게 이렇게 이어진다고?’ 싶을 수도 있는데,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자기 자리가 아닌 듯한 곳을 헤매고 있는 사람들에게 힌트가 될지도 모른다.
부끄럽지만 동영상 강의 촬영 아르바이트 말고는 한 곳에서 일 년을 넘긴 적이 없다. 나는 정말 조직에 맞지 않는 인간이었다. 단언컨대 나만큼 막무가내로 일을 그만둬 버리는 인간을 주변에서 보지 못했다. 나는 짧으면 한 달, 길면 네 달이 한계였다. 동영상 촬영을 오래 할 수 있었던 것은 혼자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늦지 않고 제시간에 와서 카메라를 설치하고, 맡은 수업을 누락 없이 제대로 녹화한 다음, 파일을 편집실에 전달하면 끝이었다. 원하는 시간대의 수업을 골라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친밀한 인간관계를 도모하기 위해 동료들과 긴밀하게 의사 소통을 할 필요도 전혀 없었다.
세무회계 학원 아르바이트도 어느덧 그만두게 됐다. 촬영실 분위기가 점점 엄격해져, 촬영 시간에 계속 딴짓을 하자니 눈치가 보였다. 아르바이트치고 꽤 오래 했으니 슬슬 그만둘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직장이 중요하다는 말에 무척 공감한다. 첫 아르바이트가 촬영 일이었다 보니 자연히 다음 아르바이트도 촬영과 관련된 것 중에서 고르게 되었다. 내세울 것이 촬영 경력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딱히 촬영에 뜻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적성에 맞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적성에 맞는 다른 경력을 만들기보다는 갖고 있는 경력으로 어서 다른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조건에 맞춰 대충 구한 일들은 오래 가지 못했다. 베이비 스튜디오에서 한 달, 웨딩 스튜디오에서 세 달을 버텼다. 사진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앨범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진 보정을 기깔 나게 하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촬영 준비와 보조, 손님 응대, 공식 웹사이트와 블로그 관리 정도였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온갖 잡일을 도맡아 처리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지?’ ‘이 일을 계속하면 나는 뭐가 될까?’ 날마다 회의감이 들었다.
스튜디오에 들어갔으니 포토그래퍼로 진로를 잡아도 좋았을 것이다. 하다못해 디자인이나 편집 요령이라도 배우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스튜디오 사진이 싫었다. 거금을 들여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고 앨범을 만드는 사람들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꼭 그렇게 똑같은 배경에서 똑같은 소품을 들고 똑같은 콘셉트의 사진을 찍고 싶을까?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날들을 굳이 그런 판에 박은 듯한 사진으로 기념하고 싶을까? 얼굴만 다르고 설정은 완전히 똑같은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왠지 복제된 삶들의 집합체 같아 절로 진저리가 처졌다. 정해진 코스를 그대로 답습하는 그 일이 너무나도 숨 막혔다. 취향이 유별나고 유난히 비딱한 시선을 가진 내가 그런 상업 스튜디오에 들어간 것부터가 잘못이었는지 모른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그땐 너무 철이 없었다. 그래서 싫은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루 대부분을 일터에 꼼짝없이 붙들려 있는 것도 싫었고, 상사의 감시하는 듯한 눈초리를 받으며 동료와 미묘한 기싸움을 벌이는 것도 싫었다. 물론 싫은 건 싫은 거지만, 뭐든 경력이 쌓일 때까지는 좀 더 참아야 했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은 사회인으로서 정말 잘못된 태도였다. 그래서 결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사회인이 되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가장자리에서 아슬아슬하게 겉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