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 영상 번역 수입이 쏠쏠하다고?
집단 파업이 일어나 도중에 당황하긴 했지만, 교육 방송국에서의 4개월은 나쁘지 않았다. 선배 절반 가까이가 자리를 비워 한산해진 사무실에서 자유를 만끽했다. 야근은 잦아졌지만, 그 대신 회식은 사라졌다. 나는 조용히 내 할 일을 했다. 내가 맡은 수업은 모두 제때 송출되었다.
혼자 이루어 낸 일은 아니다. 모든 과정에 체계적인 매뉴얼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래서 입사한 지 한 달 된 신입사원도 평균 정도의 일머리만 있다면 금방 요령을 익혀 영상을 제작할 수 있었다. 분업도 잘 되어 있어서 책임 PD가 부재하더라도 촬영팀, 디자인팀 등은 정상적으로 잘 돌아갔다. 교수도 일정에 맞춰서 자신이 맡은 과목을 충실히 강의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스케줄만 잘 챙기면 강의 영상이 제때 제공되지 않을 리 없었다. 이토록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모든 AD는 계약직으로, 1년 11개월 후에는 방출되었다. 직원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누가 새로 들어오든 금세 적응할 수 있는 구조여야 했다.
특이한 것은 계약을 한 학기 단위로 끊어서 했다는 점이다. 대학이라는 곳의 특성상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 있다. 방학 동안에는 수업이 없으므로 영상을 만들 필요가 없다. 그동안에는 모든 AD가 좋든 싫든 강제로 휴식에 들어갔다. 월급은 당연히 지급되지 않는다. 만약 딸린 식구가 있어서 잠시라도 월급이 끊기면 생계가 곤란해지는 경우 너무나도 치명적인 계약 형태였다. 그에 관해 입사 전에 미리 들은 바도 없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 동료 AD들은 별로 문제 삼지 않았다. 근로자의 권리 같은 개념이 느슨하던 시기이기도 했고, 희한하게 당시 내 동료들은 대체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래서 쉬는 동안 여행을 갈 수 있겠다고 좋아하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내 퇴사는 긴 통근 시간 때문도, 느닷없는 파업 때문도 아니었다. 특이한 계약 조건 때문도 아니었다. 사실 선배 PD가 무심히 던진 우연한 한 마디가 방송국을 뛰쳐나오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교육 방송국에서의 촬영은 세무회계 학원에서의 촬영과 아주 비슷했다. 오히려 더 편했다. 판서가 태블릿 PC로 이루어지므로 교수가 움직일 일이 전혀 없었다. 따라서 카메라를 움직일 일도 전혀 없었다. 카메라 녹화에 맞춰 슬라이드 화면 녹화의 시작 버튼과 종료 버튼만 잘 누르면 되었다. 강의가 이루어지는 동안 선배 PD와 카메라 감독님과 나, 셋이서 녹화 화면을 앞에 두고 밀려오는 졸음을 쫓으려고 애를 쓰며 멀뚱멀뚱 앉아 있는 게 다였다.
괜히 시간이 아까워졌다. 그래서 지난 아르바이트 때 습관 그대로 일본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일본 소설 원서를 들고 촬영실에 들어가서 읽었다. 애써 일본어 자격증을 땄으니,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계속 하고 싶었다. 촬영에 지장이 없는 한 아무도 내 행동을 나무라지 않았다. 다들 그냥 심드렁하게 ‘책을 읽는구나’라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호기심을 갖고 나를 지켜보던 선배 PD가 한 명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지나가는 말로 어떤 정보를 귀띔해 주었다. 방송 일을 하다 보면 간혹 일본어로 된 영상을 자료로 쓸 때가 있는데 그것을 번역하면 보수가 꽤 짭짤하더라는 것이었다. 정말 그런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지만, 꽤 솔깃했다. 방송 일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늘 촬영 대상이 있고 스태프가 있다. 촬영을 위해 여러 사람과 일정을 조율하고 합을 맞추는 일이 번잡하게 느껴지던 참이었다. 하면 할수록 내 길이 아닌 것 같았다.
이대로 계속 회사를 다니다가 계약 기간이 끝나 퇴사하면 더더욱 내 진로가 촬영 쪽으로 가닥이 잡힐 텐데,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사람들과 부대낄 자신이 없었다. 나는 촬영 그 자체보다 촬영 시간에 조용한 촬영실 앉아 일본어 책을 들여다 보는 것에 더 큰 즐거움을 느꼈다. 출퇴근길에 독서 계획을 짤 정도였다. 거의 강의 촬영이 아니라 일본어 공부를 하기 위해 회사에 다니는 수준이었다.
방학이 되어 잠시 계약이 종료되자 아예 회사를 그만둬 버렸다. 잘못된 길에서 얼른 빠져나와 내게 맞는 길로 가야 한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네 달 동안 네 시간 왕복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다가 갑자기 쉬려니 아예 그냥 계속 쉬고 싶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