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번역가가 되기 전 3, 어쩌다 취업 성공

교육 방송국 입사 그리고 파업

by 정시체

오래전부터 입버릇처럼 절대 직장 생활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다니던 나였다. 그래서 내 인생에 절대 직장에 다닐 일은 없을 줄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미리 말해 두는데 나는 모처럼 들어간 직장에서 내 한계인 마의 서너 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아르바이트 할 때 새던 바가지는 직장에서도 새는 게 당연했다. 아르바이트 할 때의 회의감이 직장에 들어갔다고 해서 갑자기 사라질 리는 없었다.


대체 이유가 뭐였을까?


나는 인천에 살았고 직장은 서울이었다. 집에서 직장까지 왕복 네 시간이었다. 출근하기 위해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났다. 1호선이 가장 붐비는 시간대를 피하기 위해 거의 첫차에 가까운 6시 차를 탔다. 9시까지 출근이지만, 차라리 한 시간 이른 8시까지 출근하는 게 나을 정도로 출근 시간대의 1호선은 빡셌다. 회식도 잦았다. 선후배 할 것 없이 칼퇴근하는 분위기였으나,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불시에 회식이 잡혔다. 6시가 되기 직전 ‘오늘 다 남아’라는 분위기가 조성되곤 했다. 참석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회식이 끝나 집에 들어가면 거의 자정이었다. 불면증이 생겼다.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데 혹시 늦잠이라도 잘까 싶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만, 이것 때문에 직장을 때려치운 건 아니었다. 나는 이동 시간에 관해서만큼은, 집만 인천에 있는 인천 사람으로서 완벽하게 세뇌되어 있었다. 대학 시절에도 졸업 후에도 줄곧 인천과 서울을 오가며 공부하고 일했기 때문에, 서너 시간 들여 통학하고 통근하는 것이 내게는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했다. 매일 아침 1호선에서 부대끼는 모든 사람이 나와 비슷한 처지였다. 심지어 생활 기반이 서울이라 친구들도 서울에 있으므로 놀 때도 서울로 가야 했다. 그래서 직장을 선택할 때 집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는 별로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그럼 무엇 때문이었을까?


입사하고 한 달쯤 지나자 황당한 사태가 벌어졌다. 선배 PD 일부가 집단 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그들은 방송국 본관 앞에 텐트를 치고 매일 아침 사무실이 아닌 텐트로 출퇴근하기 시작했다. 잘은 몰라도 연봉 인상, 근무 처우 개선 같은 것을 조건으로 내건 듯했다. 솔직히 나로서는 그저 황당하기만 했다. 그곳이 첫 직장인 데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나는 AD로서 선배 PD 두 명을 보조하고 있었다. 선배 두 명이 맡은 네댓 과목의 촬영실에 함께 들어가 촬영 환경을 세팅하고 촬영을 보조했다. 촬영이 끝나면 녹화된 영상을 적당히 자르고 적재적소에 자막을 달아 학생들이 보기 좋은 형태로 편집했다. 간혹 영상에 삽입할 전문가 인터뷰를 따기 위해 외근을 나갔고, 교수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촬영 일정을 조정하기도 했다.


내 전담 PD 중 한 명이 파업에 참여하면서 그 선배와 하던 일이 공중에 붕 떠 버렸다. 책임 PD가 없는 상태에서 갓 입사한 AD 혼자 뭘 어떻게 하면 될지 막막하기만 했다. 영상을 만들지 않으면 학비를 내고 사이버 대학에 입학해 해당 과목을 수강하던 전국의 수많은 학생이 제때 강의를 들을 수 없다. 그러면 1학기 학사 일정에 심각한 차질이 생길 게 뻔했다. 강의 영상이 제날짜에 규칙적으로 서비스되어야 매주 출석 체크도 제때 이루어질 테고, 그래야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도 제때 치러질 터였다.


선배 PD가 천막에서 농성 중이든 말든 영상은 서비스되어야 했다. 그 말은 즉, 그가 하던 일을 어떻게든 직속 AD인 내가 고스란히 이어받아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일을 다 배우기도 전에 업무 공백을 메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주 야근을 했는데, 어이없게도 국립 대학이라 야근 시간에 제한이 있어서 밀린 일을 마음껏 처리할 수도 없었다. 어차피 나는 아침 8시까지 출근했으므로, 못 다 한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편집실로 달려가곤 했다.


파업했던 PD들은 학기 말이 되자 전부 복귀했다. 그들이 내걸었던 조건이 받아들여져, 본래 의도했던 대로 근무 환경이 개선되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그들이 복귀했을 즈음 나는 이미 혼자 모든 업무를 처리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파업이 끝나든 말든 더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무슨 일이든 혼자 알아서 하면 되었으므로 편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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