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그 자리에 학원이 있었다
방송국 선배가 언뜻 말했던, ‘방송국에서 일본어로 된 영상을 번역하는 사람’이 되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당시에는 알 길이 없었다. 그것이야말로 정말 내 적성에 맞을지 어떨지도 해 본 적이 없으므로 알 턱이 없었다. 모든 것이 안개로 덮인 미지의 영역에 너머에 있었다.
그땐 미처 고려하지 못했는데, 당시 내 일본어 실력은 ‘그런 사람’이 되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일본어 음성을 절대 대본 없이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번역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선배가 말한 번역은 영상 번역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때껏 책만 열심히 읽고 영상은 거의 보질 않았다. 한자를 좋아해서, 듣는 것보다는 읽는 것에 더 몰두했다. 그래서 듣기 실력이 많이 부족했다.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사실 듣기뿐만 아니라 읽기, 쓰기, 말하기도 부족했다. 어이가 없을 만큼 모든 게 형편없었다. 나는 그저 일본어를 조금 공부해서 JLPT 1급을 땄을 뿐이었다. 어렸을 때 일본에서 살았던 적도, 커서 일본으로 유학을 갔던 적도 없는 순수 한국인. 일본에는 딱 한 번, 여행으로 오사카에 다녀온 게 전부였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나는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몰랐다. 충분히 높이 올라가 본 적이 없고 주변에 그런 사람도 없어서 어느 정도 수준이면 높은 건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오로지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뭐가 되고 싶은지만을 고려했다.
퇴사 전부터 이미 일본어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통번역대학원 입시 학원으로, 종로의 세무회계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부터 알던 곳이었다. 그 당시 오전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종로 일대를 여기저기 쑤시고 다녔다. 그래서 그 근처 골목을 속속들이 꿰고 있었다. 종로에는 유독 대형 외국어 학원이 많았는데, 그중 통번역대학원 입시 학원이라는 곳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눈여겨봐 뒀다가 취업 기념으로 바로 등록했다.
환경이란 정말 중요하다. 마침 내가 지나다니던 자리에 그런 학원이 없었더라면 결코 통번역의 세계에 발을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막상 학원에 다니면서도, 처음에는 통번역대학원에 들어갈 마음은 전혀 없었다. 통번역대학원이 뭐 하는 데인 줄 몰랐고, 아예 그런 대학원이 있는 줄도 몰랐다. 단지 모처럼 힘들게 공부해서 일본어 자격증을 땄으니 일본어 공부를 계속 이어가고 싶었을 뿐이다. 일반 외국어 학원의 일본어반은 성에 차지 않았다. 어떤 반이든 결국 교재에 실린 것을 외우게 하는 수준일 텐데, 그 정도면 비싼 학원비를 들일 것 없이 그냥 혼자 외우면 될 것 같았다.
통번역대학원 입시 학원의 수업은 생각보다 고됐다. 단어와 문장을 외우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몇 문단을 통째로 암기해 가서 즉석에서 낭송해야 했다. 내용은 신문 기사 축약본으로, 모르는 표현이 득실거렸다. 실은 싹 다 모르는 표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나 말고 다른 수강생은 다들 너무 잘했다. 정말 모든 걸 완벽히 외워 왔다. 혼자만 외워 가지 못하면 다 같이 낭송할 때 자괴감이 들 테고, 어쩌다 단독 낭송에 당첨이라도 되면 너무 쪽팔릴 터였다. 꿀리지 않기 위해 출퇴근길에 프린트물을 들고 다니면서 필사적으로 외웠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쾌감이 장난 아니었다. 매 수업을 무사히 마치고 나면 온몸이 해냈다는 만족감과 충만감으로 가득 찼다. 역시 학원비를 냈으면 이 정도는 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동엔 주중에는 직장에, 주말에는 학원에 다녔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인천과 서울을 오가야 했지만 힘들지 않았다. 일본어 공부는 입사하자마자 지긋지긋해진 회사 생활을 견디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회사에서 받은 월급으로 학원비를 낼 수 있어서 뿌듯했고, 수업 후에는 비싼 디저트를 사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회사를 다니기 전만 해도 통잔 잔고를 확인한 뒤 손을 벌벌 떨면서 지출했던 항목들이었다. 지금은 디저트가 아니라 더 좋은 것을 먹을 수 있다고 해도 절대 매일 왕복 네 시간씩 길바닥에서 보내고 싶지 않다. 그땐 체력과 열정이 받쳐 주는 시기였다.
직장을 관두고 나니 모든 시간을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일본어 공부에 쏟아부을 수 있게 되었다.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하고, 직장 대신 통번역대학원 입시 학원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학원에 다니면서 ‘나도 통번역대학원에 들어가면 어떨까’라고 생각만 하다가 마침내 내린 결론이었다.
번역가가 되기 위해 꼭 대학원에 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일본어와 관련된 학력과 경력이 전무했던 내게 통번역대학원은 든든한 배경이 되어 줄 것 같았다. 이미 입시 학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가까운 선택지를 놔두고 먼 선택지를 고를 이유는 없었다.
주 5일 학원에 갔고, 집에 돌아오면 밤이 늦도록 공부를 했다.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입학 시험에 합격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솔직히 말해 처음에는 어느 학교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떤 시험이 치러지는지도 전혀 몰랐다. 뒤늦게 시험이 꽤 어려워서 준비에만 꼬박 일 년 넘게 걸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갈 만한 학교는 두세 곳뿐인데 모집 인원은 극소수였다. 그런데도 학원에 수강생이 넘쳐났다. 그 안에 재수생, 삼수생도 섞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