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통번역대학원 입시 학원 2

알 수 없는 자신감으로 번역과와 통역과 모두 준비

by 정시체

입시 준비 2년 차에 통번역대학원에 합격했다. 그해 선발 인원은 단 여섯 명이었다. 그 안에 내가 포함된 것은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나는 그저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일반인에 불과했다. JLPT 1급을 딴 것은 번역가가 되기 위해 간신히 걸음마를 뗀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토익 점수가 높은 것과 영어로 유창하게 말하는 것이 별개인 것과 같은 논리다. 하물며 외국어를 제법 잘한다고 해도 그것을 우리말로 번역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그냥 잘하는 정도로는 안 되고 정말 정말 아주 아주 잘 해야 했다. 확실히 경험과 기술이 필요한 영역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나는 통역 말고 번역이 하고 싶었으므로 두 과가 분리된 학교를 지망했다. 하지만 번역과뿐만 아니라 통역과 입시도 함께 준비했다.


두 과는 시험 방식이 전혀 달랐다. 번역과는 100% 필기 시험으로, 일본어 지문과 한국어 지문이 주어졌다. 배포된 백지 위에 일본어는 한국어로, 한국어는 일본어로 번역해서 쭉 적어 내려가면 된다. 손으로 써야 하기 때문에 어떤 한자든 완벽히 외워 쓸 줄 알아야 한다. 전자사전을 지참할 수 있는데, 하나하나 검색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통역과는 100% 구술 시험으로, 한국어 음성과 일본어 음성이 주어졌다. 1, 2분 남짓 그 음성을 듣고 메모리한다. 메모리란 들은 내용을 순간적으로 암기해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재생하는 것을 말한다. 정말 완전히 똑같아야 합격률이 높아진다. 빠뜨린 부분이 있다면 이어지는 문답에서 만회할 수 있다.


번역과는 정원이 너무나도 적었는데, 통역과는 번역과보다 두 배 많이 선발했다. 그래서 번역과에 떨어지더라도 일단 통역과에 들어가서 번역과로 전과할 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발상이다. 학칙에 전과가 가능하다는 말은 있지만, 정말 전과한 사람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아무도 전과를 원하지 않았다. 전과의 전 자도 들어 본 적이 없다. 통역과 번역은 너무나도 성격이 다른 영역이다. 수업 진행 방식도 전혀 다르고, 요구되는 능력도 완전히 다르다. 번역과는 긴장감 속에서 순발력 있게 진행되는 통역 수업을, 통역과는 꼼꼼함과 인내심이 요구되는 번역 수업을 못 견뎌 한다. 막상 닥치면 둘 다 할 수는 있지만, 체질적으로 안 맞는 것이다.


내 읽기 쓰기 실력은 너무 부족했다. 일상적인 한자도 제대로 쓰지 못해 히라가나로 적곤 했다. 그런데 듣기 말하기 실력은 더더욱 부족했다. 짤막한 일본어 문장 하나를 똑같이 재생하는 것도 버거웠다. 한자를 열심히 외우면 번역과에 붙는 건 어찌어찌 가능하다 해도, 통역과에는 절대 붙을 리 없었다. 그 과는 원래 유학을 다녀온 사람, 교포나 원어민이 학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백번 양보해서 통역과에 붙는다 해도 그 실력자들의 세계 속에서 살아남을 리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번역과와 통역과 입시 모두를 꾸역꾸역 준비했다. 무슨 자신감에선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될 것 같았다. 번역을 할 수 있고, 어쩌면 통역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꿋꿋하게 모든 시험에 응시했다.


학습 차원에서 보자면, 하나의 언어를 다양한 방식으로 공부하는 것은 도움이 되면 되었지 결코 손해를 보는 일은 아니다. 한 가지 방식으로 접할 때보다 실력이 훨씬 빨리 늘어난다. 또 어차피 사회에 나가 일을 하다 보면 번역이고 통역이고 가리지 않고 다 해야 한다. 외국어를 할 줄 안다고 하면 당연히 통역과 번역 모두 가능할 거라는 인식이 있다.


내 처참한 실력으로는 입시에 합격할 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것을 학원 선생님들은 분명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내게 현실을 일깨워 주지 않았다. 열정은 넘치는데 실력이 따라 주지 않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외면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차피 나는 그저 여러 수강생 중 한 명일 뿐이다. 입시에 성공하든 말든, 수강료만 따박따박 내면 굳이 공부하겠다는 학생을 말릴 필요는 없다. 그리고 또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다. 가끔은 절대 안 될 것 같은 일이 되고야 마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니까.


내 실력은 꾸준히 빠르게 올라갔다. 그때가 되어서야 선생님에게 ‘정말 놀랍도록 많이 늘었다’, ‘안 될 것 같았는데 어쩌면 될지도 모르겠다’라는 솔직한 격려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해 입시에서 정말 기적이 일어났다.


안 된다는 생각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았다. 직장을 때려치우고, 그때까지 번 돈을 모두 학원에 쏟아부었다. 그 길이 아닐지 모른다고 의심하는 순간 갈 곳을 잃고 휘청일 것 같았다. 그러면 망가져 버릴 것 같았다. 뭔가를 아주 당연하게 여기고 한 치의 의심도 품지 않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고 미련한 짓이지만, 엄청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무작정 달려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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