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고 들어온 학생
‘대체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통번역대학원에 붙었는지 신기할 정도다’
대학원에 다니는 첫해에는 계속 이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거의 ‘문 닫고 들어온 수준’이라고 자조 어린 말을 할 정도였다. 내 동기들은 모두 굉장히 뛰어나고 부지런한 사람뿐이었다. 정말 희한한 것이 분명 번역과인데 통역도 잘했다. 단 한 명도 지각을 한다거나 과제를 안 해오는 사람이 없었다.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유능하고 성실할 수가 있을까 싶었다. 예대 출신인 나로서는 살면서 처음 보는 인종들이었다. 숨이 턱턱 막혔다. 그런 사람들과 같이 공부하려니 너무 피곤했다.
대학원 합격 통지를 받고 개학하기까지 약 세 달간 나는 일본어와는 담을 쌓고 펑펑 놀았다. 얼마나 실컷 놀았는지 그 짧은 기간 동안 한자 쓰는 법을 살짝 까먹고 말았다. 그래서 개학 후 첫 수업 시간, 일본인 선생님에게 제출하는 자기 소개 쪽지를 온통 ‘히라가나 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한자가 순간적으로 생각이 안 났는데, 당장 써서 내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이게 나였다.
그들과의 실력 차이를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대학원 과정 2년 안에 메울 수 있는 차이는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기를 쓰고 메워야 했다. 우리 과는 나를 포함해서 6명뿐이었다. 그 안에서 못하면 너무 눈에 띄었다. 혼자 버벅거릴 때마다 안 그래도 엄숙한 교실 안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솔직히 그렇게 실력 차이가 나고 마음고생을 할 줄 알았으면 애초에 통번역대학원이라는 곳에 들어갈 생각을 안 했을 것이다. 정말이지 모르는 게 약이다.
학교에 다니는 2년 동안 캠퍼스를 여유롭게 거닌 적이 별로 없다. 오로지 우리 대학원 건물과 매점만 오갔다. 마침 두 건물 다 정문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등교 후 대학원 건물로 직행해서 수업을 듣고, 기력이 달릴 즈음 매점에서 허기를 달랬다. 열람실마저 매점 바로 위에 있었다. 배치가 너무나도 절묘했다. 굳이 힘들게 캠퍼스를 돌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공부에 찌들어 그럴 여력이 없었을 뿐더러, 대학 새내기도 아니라서 그런 낭만 따위는 말라 비틀어진 지 오래였다. 결국 학교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졸업했다. 이제라도 찬찬히 돌아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곳에서 한 고생을 생각하면 너무 지긋지긋해서 아직까지도 그 근처에는 별로 가고 싶지 않다.
한 학기에 예닐곱 과목을 수강했다. 매일 이른 아침과 늦은 오후까지 적으면 두 시간, 많으면 여섯 시간도 넘게 수업을 들었다. 번역과는 특성상 거의 모든 수업에서 매번 번역 과제가 나온다. 그 과제가 곧 다음 수업 내용이 된다. 즉, 서로의 번역을 체크하는 시간을 갖는다. 통역과 달리 즉석에서 말로 때울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수업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려면 모두가 반드시 과제를 해 가야 했다. 다들 너무나도 성실해서 굳이 과제를 잊지 말라고 당부할 필요도 없었다. 나만 잘하면 되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누군가 과제를 안 해 온 모습을 전혀 보지 못했다.
대학원 재학 기간 내내 주눅이 들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맞나 보다. 일 년 고생하고 나니 그럭저럭 학교 생활에 익숙해졌다. 원래는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고 과제를 전부 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는데, 신기하게 언제부터인가 모든 것이 제법 할 만해졌다. 일본어로만 진행되는 수업도 조금은 마음 편히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수많은 과제를 처리하는 데도 요령이 생겼다. 여유가 생기고 속도가 붙으니 다른 일도 추가로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학업 외에도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다. 나는 1학년 2학기부터 졸업할 때까지 쭉 과 대표였다. 그래서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스터디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담당 교수님, 여러 선생님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일정을 조율해야 했다. 또 2학년 내내 박사 과정 연구에 동원되어 각종 조사를 하고 방대한 연구 문서를 제출해야 했다. 방학 때도 결코 쉴 수 없었다. 일본 연수 계획을 짜고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이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그 와중에 번역 일도 시작했다. 내 목표는 단기적으로는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는 것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프리랜스 번역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 목표를 잊은 적도 없고 의심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2학년 때부터 소소하게나마 번역 일을 찾아 병행했다. 졸업 후 정말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을지 미리 가능성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