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번역 후유증 3

긴긴 치료의 끝

by 정시체

엉겁결에 시작된 치료는 장장 8년에 걸쳐 계속되었다. 매주 한 번 50분 내외의 상담과 약물 복용이 아예 루틴으로 굳어 버렸다. 상담이 끝나면 자동으로 다음 예약이 잡혀 약속을 어기기가 꺼림칙했고, 또 무엇보다 의사가 그만 오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험이 적용되어 비용이 별로 비싸지도 않았다. 언제 어떻게 치료를 끝내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는 사이 상담의 온기에 길들고 약물의 안정감에 절여졌다. 점점 치료의 끝을 상상하기가 두려워졌다.


솔직히 왜 그렇게까지 오래 상담을 받고 약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내 정신 건강이 그렇게까지 엉망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 이야기를 듣고 충고해 줄 다른 어른이 주변에 없었다. 8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의사는 내 가족을 대신해 주었다. 그는 내 30대 전부와도 같다. 이것은 어쩌면 건강하지 않은 생각일 수도 있지만, 치료를 마친 지 2년이 넘은 지금 돌아봐도 결론은 같다.


마비는 사라졌다.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치료를 시작한 지 일 년에서 이 년 사이였다. 그렇게 나를 괴롭히더니 갑자기 훅 사라져 한동안은 사라진 줄도 몰랐다. 귀는 아직도 예민하다. 지금도 늘 귀마개를 꽂고 있다. 하지만 이제 소리의 근원을 찾아 아파트 복도와 계단실을 헤맬 정도는 아니다.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지르거나 천장을 두드리지도 않는다. 다만, 하루가 너무 고되었던 날에는 귓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악이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럴 때는 무시한다. 그 정도 마음의 여유는 생겼다.


상담이 거듭될수록 이야기의 초점이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로 옮겨져, 먹고사는 이야기가 중심 테마가 되었다. 내 생계 수단은 번역이었기 때문에 대체로 번역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번역 일에 대한 불만과 불안을 끊임없이 늘어놓았다. 내용이 항상 같았다. 일감이 없을 때면 일감을 따기 힘들어서 생활하기 막막하다고, 일감에 허덕일 때는 일하는 강도에 비해 보수가 푼돈이라고 푸념했다. 징징대면서도 으레 마지막에는 번역 일을 놓을 순 없다고, 내가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일이며 너무나도 좋아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돌림노래와도 같았다. 늘 도돌이표를 찍고 원점으로 되돌아와 정해진 레퍼토리를 읊었다.


상식적으로 노동 강도에 비해 보수가 적고 형편이 필 가망이 보이지 않으면 다른 일을 찾는 것이 맞다. 정신과 의사는 학교나 기관 같은 곳의 진로 상담 선생님이 아닌데도 나와 함께 내 진로를 탐색해서 이런저런 대안을 제시하곤 했다. 나도 무시하지는 않았다. 의사가 충고한 대로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는 길, 그리하여 마침내 번역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로 나아가려고 무진 애를 썼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 창작 활동도 하고, 집 밖에 나가 업계 사람들도 만났다.


하지만 입으로는 불만과 불안을 호소하면서도, 나는 끝내 수렁과도 같은 번역 일을 놓지 못하고 계속해서 같은 돌림노래를 불렀다. 다른 길을 찾아보라는 의사의 현실적인 조언은 8년이 되도록 먹히지 않았다. 우리는 제자리걸음에 지치고 말았다. 의사도 나도 더는 서로에게 보탬이 되지 않고 피로만 쌓여 갔다. 이것이 치료가 파국을 맞은 이유다.


오랫동안 상담을 받은 것에 후회는 없다. 상담은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죽 풀어 놓고 스스로에게 맞는 답을 더듬어 나가는 과정이다. 8년간의 수련(?)을 통해 이제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늘어놓는 일에 거부감을 갖지 않게 되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이야기로 풀어 내고 찬찬히 따져보며 스스로를 점검한다. 그리고 다음 행동을 결정한다. 그렇게 한다고 당장 상황이 나아지진 않지만,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만큼은 나아진다. 그러고 나면 덩당아 상황이 나아지기도 했다. 모든 게 다 마음 먹기 나름이라는 말이 결코 헛소리는 아니었다.


멋도 모르고 항정신병 약물을 오래 먹은 것은 조금 후회한다. 하루아침에 상담이 중단되고 약도 끊겼다. 어느새 약에 의존하고 있었던 듯 바로 금단 증상이 나타났다. 치밀어오르는 불안과 우울을 꾹꾹 누르며 일 년 가까이 버텼다. 치료에 마침표를 찍고 싶어서 다른 병원을 찾지는 않았다. 약을 끊는 과정에서 충동에 휩싸여 사고도 치고, 약속도 깨고, 주변에 폐를 많이 끼쳤다. 의사의 말을 듣지 않고 내 고집만 부린 것 같아서 느닷없이 취직을 준비하기도 했다. 인생 망한 것 같았지만, 이제라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며 늘 같은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프리랜서의 삶은 너무 불안하니까, 관둘 수만 있다면 정말 번역을 관두고 싶었다. 잇따라 취직을 했다. 그리고 잇따라 퇴사했다. 역시 나는 직장에서는 3, 4개월이 한계였다.


치료 중단 후 일 년간 벌인 일들을 다음 일 년간 수습하면서, 체념해 버렸다. 내가 오랜 시간 꾸역꾸역 번역을 한 이유는 그냥 그 일이 맞았기 때문임을 깨닫고 어쩔 수 없이 다시 번역의 길로 돌아왔다. 벗어날 수 없다면 아예 깊이 파고들기로 작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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