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자산 비중 60%를 상회하는 나라, 대한민국
사람에게 주거[住居]란, 단순히 주택이라는 흙, 콘크리트 등으로 만들어진 물리적인 그 건물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생활을 영위하는 장소 및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생활까지 모두 포함한 것을 아우른다. 단순한 부동산이라는 재산의 영역을 넘어 가족을 보호하고 휴식과 삶을 정비하는, 중요한 삶의 영역인 것이다.
생을 살아가는 생명체라면 자신을 보호하는 공간이 필수적이긴 하지만, 사람의 경우 화폐라는 수단으로 재물을 교환한다. 초기에는 몸 피할 곳을 찾아 동굴 등에서 보금자리를 만들었을 것이고, 자연에서 재료를 찾아 흙과 나무로 집을 짓다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형태의 주거 공간이 생겨났다. 이러한 공간의 수요는 높아졌고, 더 많은 양의 화폐를 지불하여야 그 공간의 소유권자가 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정말 많은 사람들의 인생의 20-30년의 화폐가 움직이지 않는 부-동의 자리에 묶여있게 되었다.
현재 30대를 지나고 있는 나의 시선에서 부모님 세대는 한창 몸을 갈아 넣어 국가가 고도로 성장하는 시대였고, 은행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자를 제공했으며,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캠페인이 벌어졌었다. 그들은 치열하게 살아냈고, 대한민국을 이끌었으며, 현재의 나라를 이뤄냈다. 노동의 강도가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되었던 1차 산업이 주 일거리였던 부모님의 어린 세대, 그들이 겪었던 일이 험난했던 세대가 있으니 자식은 몸 쓰는 일보다 머리를 쓰는 일을 하기를 바랐을 것 같고, 그것이 삶을 '살아내는 것 자체'보다 공부에 목숨 거는 형태의 교육 방법을 잣대로 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지 싶다.
게다가 젊은 시절 초반에는 다들 비슷한 수준으로 살다가 '정착한 위치가 어디였는지'라는 개인 삶의 운 적인 요소로 인해 지역에 따른 극명한 자산 격차를 누구보다도 체감했을 때의 그들의 심정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오히려 오늘날의 젊은 세대보다 더욱 격차를 느끼고 있지 않을까.
어느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도는 표현을 듣는, 부모라는 당사자는 이러한 사회적 풍토 때문에 더더욱 화폐라는 '거래 수단'에 대해 더욱 집착하게 만들고, 부동산 불패의 시대를 직접 겪었으니 누구보다도 이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러한 부동산 가격을 기성세대들로부터 받은 현재의 젊은 세대들의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노릇이다. 세대 탓을 하는 것이라기보다, 20살까지 생계와 관련된 일을 한 적이 없고 어떻게 보면 조선시대의 선비처럼 낫 드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도 배울 기회도 많지 않은 삶이었다.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도 4년 간 공부한 뒤 사회에 한 축이 돼라, 집값은 이러하고 먹고사는 행위는 이러하니 이제부터 스스로 잘 살아 보거라 하면서 월급 200만 원의 삶을 시작하면 막막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단순 계산으로 200만 원씩 한 달을 빠지지 않고 꼬박 41년을 저축해야 10억인데, 그냥 내려놓으면 되는 건가 하면서 무기력을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작은 땅의 네모난 꿈들은 언제쯤 수요가 떨어질까.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삶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