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 지우다

by 김민재


나무의 사계절이 비치된 영통도서관에 가면

그때그때 바뀌는 풍경 속

아무리 불러도 듣지 못하는 이름이 있다


소란스러운 발소리 거리에서 멀어진 지 오래, 밤은 근엄하게 온다지 갈라진 바람을 끌어 모으듯 맹렬하게 달려온 알코올 젖은 자동차에 7월의 횡단보도 빗금 지운 칸나는 붉게 울었다


오늘의 날씨, 회오리

오후를 갈라 기억을 꺼내놓고

우울이 안개처럼 어슬렁거릴 때

사방팔방으로 튀는 혜윰 봉지 속 씨앗들 밀봉하고

오랜 시간 몸에 가둔 뜨거운 물집 터트린다


당신의 지구 끝은 내 꿈속인지라 나는 다른 생의 모퉁이를 돌아 자꾸 나를 부르지만 목소리 없는, 오늘도 당신의 기일은 있고 내 생일은 없는, 구름이 내일을 몰고 온다

분류기호 800과 500 사이

각진 나무틀에 박힌

언젠가 있었던, 언제든 가질 수 없는

펼쳐 보고 싶지 않은 낡은 비밀 스멀거린 이름

생각을 지우고 기억을 버리면 모든 의미가 증발할까

죽은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시린 눈길 따라

문학과 과학기술 사이 나무 위로 날고 있는 부전나비 떼

두 손으로 비늘 가루 받아낸다


이 모든 것, 내 일이 아니다


*혜윰: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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