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문재 엽서 · 5
섬 속에서 나는 섬 밖, 섬 밖에서 나는 섬 속, 그 하루를 씁니다.
안개 깊숙이 스며드는 뱃길 따라 노화도 선진항 가는 이곳은 경계가 구분되지 않는 해남과 완도의 바닷길 그 어디쯤. 그대 얼굴과 얼굴이 흐르고 잠기다가 끊기는 경계의 혼란 속에서 안개바다는 자꾸 몸 바꾸고 나의 한 시절도 선 긋고 뒤집어 보지도 못한 채 여기까지 왔습니다.
자가용으로 온 승객들 모두 썰물처럼 빠져나간 선진항 텅 빈 부둣가 동천항 가는 택시를 기다리는 나와 등대 모형에 노화도 안내판은 낯설기 놀이합니다. 길게 이어지는 뱃고동 소리 끊어질 때까지 오지 않는 택시. 파도는 방파제 철벅철벅 오르내리며 잠시 그대가 다녀갔는지 몸 깊은 곳 금이 가는 소리로 울립니다.
항일운동의 성지. 안개와 고요가 길을 안내하는 가고 싶은 섬 소안군도는 노화도·보길도·횡간도·자개도 등의 4개의 유인도와 6개의 무인도를 이루는 소안도 태극기가 환영합니다.
철새 도래지 담수호 위에 뜬 태극기 조형물로 가는 데크는 습도 높은 날씨만큼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호수를 팔랑팔랑 헤엄쳐 가고 싶은 마음이 동그라미를 그립니다. 태극기 조형물은 가로 18cm 세로 12cm 총 2,420개의 친환경 부표를 사용하여 소안도의 브랜드 가치와 깨끗한 바다 가꾸기 운동 묵적으로 설치하였다고 합니다.
달이 떠오르는 길목인 달목공원 지나 소안 항일운동 기념관 가는 이 길에도 눈동자 없습니다. 소금 바람이 끈적끈적하게 점심을 실어 나르고 내 몸에 엉겨 붙어 떨어지지 않는 소금기처럼 맛집 추천받아간 상록수 식당 자장 면발 삼키지 못하고 입안에서만 허우적거립니다.
함경도 북청, 부산 동래와 더불어 항일독립운동 3대 성지로 69명의 독립운동가, 20명의 독립 유공자를 배출하였다는 소안도 항일운동 기념관 살포시 들어왔습니다.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소안의 애국선열들과 그들의 항일투쟁 정신을 역사의 교훈으로 남겨주기 위하여 건립하였다는 기념관입니다. ‘시대를 넘어 새날을 열다’ 문구를 시작으로, 왼쪽에는 항일운동 서훈자 아크릴 판에 청동 얼굴 열 지어 있습니다. 맞은편에는 당사도 등대 모형이 있습니다.
‘병자 수호조약 이후 일본은 자국 상선의 남해 항로를 통해 우리의 수산물, 쌀, 면화 등을 수탈하기 위해 당사도에 등대를 설치하였다. 이 등대를 1909년 2월 이준화 등 해상 의병 35명이 습격, 일본인 간수 4명을 타살하고 시설물을 파괴한 의거이다. 수탈의 상징인 당사도 등대 사건은 항일운동이 기폭제가 되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역사박물관」 소책자 참고
해무로 가득한 과목 해변 앞바다와 우중충한 하늘과 기념탑이 어우러진 커다란 액자 하나 걸어두고 오던 길 발가락 물집 터지도록 걷고 달려 동천 항행 배를 탑니다. 노화도와 구도(비둘기가 많아)를 잇는 소안 대교 지나 노화도와 보길도 잇는 연도교 건너왔습니다.
보길도 윤선도 원림은 축제기간 무료입장입니다. 전시관 들어서면 고산 윤선도의 생애, 세연정의 건축적 의미, 세연정의 ‘세연’의 의미, 부용동이라 한 연유, 보길 유물전, 시 어부사시사, 사진으로 보는 신 어부사시사 등 ‘주변의 경관이 매우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진다’ ‘세연’의 뜻처럼 전시관은 흐르는 물처럼 유연하면서 단정하였습니다.
후문으로 나오면 세연정 가는 길. 오른쪽 어깨를 돌려보면 해바라기 꽃 진 뒤 까맣게 씨앗으로 여물어가고 있습니다. 사이 길 두고 코스모스 바람에 살랑 거립니다. 먼 그대. 할 수만 있다면 그래 보고 싶습니다.
초록이 초록을 부릅니다. 흐린 날의 초록은 규격이 없나 봅니다. 정자와 어우러진 소나무와 연잎. 빛바랜 정자와 바위의 색이 하나가 되어 이루어 낸 세연정 그 누구도 반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매혹적인 눈이 눈을 가리는 풍경입니다.
간간히 부딪히는 관람객들 십여 년 전의 내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때의 나도 그랬지요. 술렁술렁 어떤 기록도 없이 오려내고 싶은 풍경도 없이 구겨진 마음만 가득했던 보길도 여정이었습니다. 보옥리 공룡알 해변에서, 예송리 해수욕장에서, 송시열 글씐 바위에서의 내가 보이는 오늘입니다.
반나절 리필해서 쓴 택시기사님 기다리는 불편함이 자꾸 헛발질을 해됩니다. 또다시 와도 그 자리일 세연정을 나섭니다.
그대라는 섬 밖에 나는 섬 속이었으며, 노화도 소안도 보길도 섬 안에 나는 섬 바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