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땅이 패 인다. 황토 땅 붉은 눈물 쏟아붓는다. 한여름의 열기 식히는 낙숫물이 연주한다. 처마를 바라보며 연 이틀 교향곡처럼 들었다.
비 온 뒤의 하늘은 청명하다. 하루사이 가을바람이다. 카페에서 울리는 피아노 선율로 아침을 여는 심은석 시인의 ‘비목’과 ‘아르헨티나 영화 ost’가 주는 울림은 가을의 시작을 풍요롭게 한다. 신선한 공기와 버무려진 음악은 가슴 저미는 슬픔이 있고 마음을 여는 아름다움이 있다. 오랜만에 듣는 ‘비목’은 왠지 모를 아련함에 잠시 기둥에 기대어 가사를 음미해 본다. 사모님이 피아노 전공이라 시인은 피아노 칠 줄 모른다는 겸손함을 건반으로 누르고 나는 마음으로 음표를 그리고 바람은 선율을 필사한다.
선선한 공기와 따가운 햇볕 그 어디쯤 머물고 있을 여름과 가을 사이 문학기행 간다. 입주한 이윤협, 김영래, 최찬희, 심은석 작가들과 박병두 촌장이 이끌고 가는 땅 끝의 바람은 뼈와 살을 모아 가을을 익히고 있다. 모종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제법 진초록을 자랑 있고 배추 잎, 부끄럼 많아지는 고개 숙인 누런 벼, 폭우가 던진 잔해로 쓰러진 벼들과 한층 높아진 하늘구름 떼어내어 머리에 꽂으면 나도 구름처럼 흘러갈 수 있을까. 그곳으로.
지리산 등반 중 실족사한 고정희 시인 생가다. 3년 전 땡볕 머리에 이고 아스팔트 길 걸어서 왔던 길 오늘은 편안하게 자동차로 왔다. 고요함이 오전을 삼키고 있다. 새로 생긴 정자와 허물어진 담장, 컹컹 짖어대던 강아지와 마루에 앉아 방문객을 맞이하던 시인의 올케는 보이지 않고 담장 벽화 속의 강아지만 반긴다. 3년간의 빈 시간을 그려본다. 이 대문 안과 밖의 문인들과 고 시인을 사랑한 수많은 독자들 다녀갔을 것이다.
대문 뒤 벽면에 동판으로 새겨진 시 ‘모든 사라진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의 일부다.
오 모든 사라지는 것들 뒤에 남아 있는/둥근 여백이여 뒤안길이여/모든 부재 뒤에 떠오르는 존재여/여백이란 쓸쓸함이구나/쓸쓸함 또한 여백이구나/그리하여 여백이란 탄생이구나/
고뇌에 찬 고 시인의 사진 한 장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마치 운명을 예고한 듯 머릿속이 뒤숭숭하여 돌아선다. 어떠한 기록도 남기지 않은, 묵언의 대화로 애도하며 여백으로 남고 싶은 나와는 달리 심은석 시인은 늘 평온하라는 방명록에 흔적을 남긴다.
나도 너로부터 사라지는 날/내 마음의 잡초 다 스러진 뒤/네 사립에 걸린 노을 같은, 아니면/네 발아래로 쟁쟁쟁 흘러가는 시냇물 같은/고요한 여백으로 남고 싶다/그 아래 네가 앉아 있는
김남주 시인의 생가다. 굳게 닫힌 문은 마치 시인의 삶 같아 마음이 뒤숭숭하다. 작은 정원에 시인의 흉상 앞 누군가 놓고 간 듯 마른 꽃 몇 송이 치우고 옆에 핀 백일홍 한 송이 꺾어 흉상 앞에 올려놓는다. 저항시인이 투옥하고 있을 때를 형상화한 듯 한쪽 교도소 같은 작은 창고 빙 둘러 시어들이 자리를 빛내고 있다.
우수영 법정 스님의 생가 3년 전 땡볕 들이받으며 빈 골목을 헤매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하다. ‘무소유란 불필요한 것을 같지 않는 것’이라 스님은 말한다.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 사이에서 나는 또 헷갈리기 시작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불필요한 것 또한 무엇이란 말인가에 골몰하다 그만 빈 하늘만 바라보다 스님의 뒷모습 따라 나도 뒤돌아선다.
국밥 한 그릇 비우고 심은석 시인이 떠난 뒤 화원반도 에돌아 다시 송호해변이다. 어제와 같지는 않지만 아직도 태양은 따갑다. 송정실 새로 입주한 『산중일기초』의 최찬희 작가와 사박사박 모래알갱이 같은 마음 둘 발바닥에 새기며 걷는다.
저녁노을과 걷던 모래 길. ‘바다가 발설한 빛의 언어를 받아 적는다.’ 고 한 홍일표 시인의 시어를 생각하며 혼자서 잘 놀았던 노을빛의 해변. 오늘은 찬희샘과 함께라서 좋은, 함께라서 즐거운 시간, 함께가 주는 위로와 위안으로 달려오는 파도의 푸른 힘을 따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