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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Mar 18. 2019

혼자라서 향기로운 시간

-- 여수, 1박 2일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읽다 내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여수행 ktx를 탔다. 내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길에 또 다른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여수에는 어떤 시간이 있을까.   

  

삶의 행복은 어디서부터 일까? 진홍빛 햇살이 달리는 차창으로 비치는, 분홍색으로 빛나고 있는 내 얼굴과 대책 없이 투명한 하늘을 보는 지금 이 순간에서 찾아야 할까. 침묵하고 있는 낯선 표정들을 읽으며 그 침묵이 의미하는 무언가를 찾고 혼자서 미소 짓는, 그런 순간순간의 행복이 좋아 배낭을 꾸리는 게 아닐까. 

       

9월의 작열하는 태양과 맞서 여수엑스포역에서 내렸다. 초가을 정류장에 앉아 오지 않는 돌산대교 건너 숙소 행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성수기엔 사람이 많아서 기다리고 비수기엔 사람이 없어서 기다려야 하는 시내버스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 낀 나의 여수,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두 번의 환승 끝에 허기진 배를 달래려고 숙소 앞 돌산 연이네 식당에 들렀다. 그런데 일인 식사는 안 된단다. 혼자 온 여행자는 밥을 먹을 수 없는 인심에 야박함이 느껴진다. 그럴 수도 있겠지, 생각하며 내 자신을 달랜다. 혼자라서 안 된다는, 혼자이기에 식당 밥도 먹을 수 없다는데, 그럼 굶지 뭐, 라고 포기하니 배고픈 마음이 일시에 사라지는 듯했다. “아름다운 여수”, 자연이 주는 그 슬로건처럼 친절도 아름다우면 더욱 아름다운 여수로 거듭날 텐데, 하는 아쉬움 반 안타까움 반을 뒤로 하고 다른 여수를 찾아 걸었다.    


돌산공원에 가기 위해 가는 중간에 버스에 올라타리라 생각하며 걷는데 버스는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택시조차 잡히지 않았다. 시내버스 노선인데도 타는 승객이 없어 외곽지대는 오지 않고 다시 되돌아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가 있다는 걸 향일암 갈 때 알았으면서 금세 잊고 또 기다리다 지쳐 다시 걸었다. 여행에서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알았다.


보도블록 위로 돋아난 잡풀들 밟으며 사드락 사드락, 머리카락 흘러내리듯 바다 위로 오후의 태양이 그렇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듬성듬성 공원을 서성이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돌산과 자산을 연결하는 해상 케이블카를 탔다. 거북선대교 위를 지나는 1.5km 구간 약 10분간의 여유와 여수 앞바다가 통째로 들어왔다. 그리고 저 아래 하멜등대가 손짓했다. 힘들여 올 만했다. 앞 빈 케이블카가 출렁, 뒤따라오는 케이블카도 텅 빈 채였다.     

나의 지나간 시간들이 줄줄 새는 듯하다. 시간은 공간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시간이나 공간도 휘어진다고 했는데, 지금 내 시간은 어떻게 휘어지고 있을까. 

    

오동도 갔다. 몇 년 전 아들과 함께 걸었던 길이다. 그때보다 대나무는 더욱 번식하여 빛이 스미지 않는 대숲, 동백 숲 사이로 찰방 대며 스치는 다람쥐들조차도 긴장하게 만드는 한적한 길이다. 코끼리 열차가 끈긴 지 오래다. 방파제 끝까지 내려앉은 노을을 붙잡고 바다는 깊어지고 있다. 바다 쪽으로 나의 현재가 깊이 휘어지고 있었다.     


태양을 머리에 이고 돌산대교를 건넜다. 한강 다리 한번 제대로 걸어서 건너보지 못한 아쉬움을 돌산대교가 달래준다. 일 인 식사 거절의 후유증이 불안을 가져온다. 아침과 저녁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허기를 채웠지만 여수에 와서 지역 음식을 못 먹어 본다는 것은 아쉽겠다는 생각을 버리게 한 교동시장 안의 장어탕 한 그릇이 달래주었다. 10여 년 전 거문도 가는 길목 여수 <칠공주 식당>에서 먹었던 장어탕 맛의 기억이 났다. 


 이순신 광장의 거북선 한 척에 승선하는 것과 관람은 무료였다. 실제 상황을 재현한 거북선 내부 관람 후에 이순신이 작전 계획을 세우고 군령을 내린 곳으로 국보 제304호 진남관은 보수공사 중이였다. 조금 걷다보니 고소동 벽화마을이었다.

 

 고요함을 고요함으로 느끼게 해주는 건 소란스럽게 왔다 간 사람들 때문이다. 소란스러움을 소란스럽게 느끼게 해주는 건 아무도 없을 때 그 빈자리를 채워줬던 정적 덕분이다.      


고소동 벽화마을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한 무리의 수학여행 온 학생들 시끄럽다. 그 시끄러움이 주는 공간, 그리고 학생들이 떠난 뒤 온기가 골목 곳곳에 숨어 있었다. 갑자기 나타나는 정적에 문득 체코의 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생각하게 해 주는 왁자지껄하던 학생들이 떠난 공간이 주는 고독이 불쑥 나에게 다가왔다. 무분별한 발전으로 인해 오히려 퇴보하고 사라져 가는 것들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개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벽화로 아름다움을 추구한 공간이 주는 천사마을의 고독이 버무려졌다.  

     

허영만 만화가 작품들과 이야기할 수 있고, 안도현 시인의 「연락선」을 낭송할 수도, 오포대와 이순신 전술 신호연 박물관이 있는, 아기자기한 벽화 골목은 해양공원에서 시작해 고소동 언덕까지 1,004m 구간이라 ‘고소 1004 벽화 골목’으로 불린다. 보고 읽고 듣고 걷고, 이제 잠시 쉬어가기 위해 카페 <낭만>의 통유리 밖으로 펼쳐진 바다를 보며 마시는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겼다.   




투명한 햇빛이 쫑포 포구에 내려앉은 오후, 발길이 해양 레일바이크 쪽으로 촉수를 세운다. 성수기가 지나간 뒷자리는 한적하다. 혼자 바퀴 굴리는데 힘들지 않겠느냐는 나의 우려와 혼자서도 많이 탄다는 직원의 격려로 레일 바퀴는 신나게 굴러간다. 자전거도 탈 줄 모르는 나는 평생 처음 허벅지 근육을 토닥거렸다. 

     

만날 수는 없지만 항상 마주 보며 나란히 가는 철길은 함께여서 좋겠다는 부러움이 무릎팍 위 그림자로 새겨진다. 혼자라서 좋을 때는 언제일까 항상 혼자이다 보니 무엇이 좋은 것인지 모르면서 파도와 함께 밀려오는 바람을 느끼며 해안선을 달리다 보면 마래 터널이 입을 벌리고 있다. 어서 오라고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은밀하게 유혹한다. 유턴하여 돌아오는 길, 보이지 않는 언덕에서는 저질 체력을 나무라듯 열심히 굴려도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내 뒤 연인들은 답답한지 바짝 붙어 내게 힘을 보탰다. 얼마나 답답하였으면 하는 미안함, 그리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 뒤로 무리 지어 바퀴 돌리는 학생들의 깔깔깔 웃음소리가 여수 앞바다 물수제비로 뜬다.      

  

혼자서는 할 수 없을 거라 색종이 접듯 접어버린 시간들이 하나씩 펴지고 있는 색깔들 중 하나가 희끗희끗한 내 머리카락처럼 솟아나고 있었다. 그렇게 여수는 나에게 혼자라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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