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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Mar 21. 2019

1. 그 여자 이태리, 시간을 걷다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신이 피어야 할 시간이 오면 피는 꽃은 아름답다고 한다. 그런 꽃처럼 나를 스스로에게 꽃 피우고 싶어서 또 르네상스를 꽃피운 유럽 건축미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긴 비행을 한다. 


 마음이 길을 만들 듯, 내가 만든 마음의 길이 흔들릴 때 다 잡고 싶어서 나선 길. 그러나 이룩한 비행기는 난기류에 놀이기구가 된다. 풍랑에 휩싸인 배처럼 출렁이고 바이킹을 탄 듯 흔들린다. 손에 든 유리잔 물이 출렁거리다 옷을 적신다. 기내 안이 고요하다. 서로가 무사함을 기도하는 중일까. 이렇게 추락한다면 우리는 어디에 가 있을까? 

 이태리, 그대에게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을 듯하다. 비행기에서의 멀미와 감기몸살의 시작은 여행기간 내내 힘들게 하는 복병이 된다.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

  인류에 큰 영향을 끼친 도시. 토스카나 지방을 말할 때 “이탈리아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토스카나는 사람을 두 번 미치게 한다. 도착할 때 한 번, 떠날 때 또 한 번” 외면의 아름다움에 매료되기도 하지만 내면에 깊이 뿌리내린 르네상스 정신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는지도 모르겠다. 역사와 예술, 문학과 과학에서 천재들 브루넬리 스키, 기베르티, 다빈치,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등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르네상스 시대정신을 꽃피울 기반을 조성한 메디치 가문이다. 학문의 중요성을 인식한 메디치 가문은 중세 암흑기에서 벗어나 르네상스를 꽃피울 예술가와 학자들을 발굴 후원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술품들은 인간 정신을 숭고한 경계로까지 날아오르게 하는 수단이라 한다. 그런 예술품을 만들어 낸 피렌체. 


 

 낯선 샛길 낯선 건물 사이사이 시뇨리아 광장 가는 길. 단테의 집 앞 벽과 보도블록에 새겨진 단테 두상과 눈 맞춘다. 그냥 보면 희미한 형태로 남은, 그 부분에 물을 부어서 보면 선명하다. ‘단테 두상을 찾아 밟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하여 중요한 일을 앞둔 사람들은 일부러 찾아본다는 사진 한 장 찍어 보내고, 유럽에서 네 번째로 크다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꽃의 마리아 성당 간다. 


 조토의 종탑이 푸른 하늘을 찌르고, 건축의 역사를 새로 쓴 브루넬레스키의 작품 대성당 주황의 돔이 가슴 뛰게 한다. 조토의 종탑에 올라 피렌체 아름다운 시가지를 바라본다면 행복하겠다는, ‘아름다움에 넋을 뺏겨 심장이 뛰고 쓰러질 것 같은’ 경험을 했다는 작가 스탕달의 말이 실감 나겠다. 또한 우피치 미술관의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못 보고 가는 아쉬움이 깊다. 


 예술의 본질은 ‘없애는 것’ 그래서 조각예술의 한 장르를 개척한 미켈란젤로와 예술의 본질은 ‘덧붙이는 것’이 회화예술의 최고 장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두 거장의 갈등이 심했다 하니 예술가로서의 자존심 아닐까  


아홉 번째 月과日

  -단테와 베아트리체 


         

초하루 그리고 오월 

폴코 포르티나리* 파티에서 보았습니다

서로의 감정에 대해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아홉 살 나는

혼자만의 사랑 안개 속에 흘러내렸습니다   

  

나를 파먹다가 부스러기가 된 아홉 해를 건너왔습니다

폰테 베키오 다리를 가득 채운 빛의 그대에게 빨려갑니다 

건네고 싶은 말은 입안에서 솜사탕처럼 사라집니다

베벤누토 첼리니 동상 사랑의 열쇠 풀어놓고 

빛의 그대 모습 훔쳐만 보다 돌아섭니다


그대에게 물들고 싶은 마음 접을 수가 없습니다   

  

젖을 수 없는 나라에 있습니다

그대에게 물들어 있었던 오랜 기억의 시간이

‘환상 여행기’*로 꽃피고 있습니다


우리 맞잡을 수 없는 손 내가 내 손을 잡습니다


스물넷, 그대는 아르노 강물 따라 갔습니다

내가 본 두 번의 만남 그 사용설명서에

아흔 아홉 개의 칸토와 서곡에 그대 있습니다


나는 플로렌스에 추방당하고

그대를 품은 고향을 잃습니다

반평생 순례길 컴컴한 숲 속 헤맸습니다 

열병은 라벤나*에 나를 부려놓았습니다

     

신곡 안에

베아트리체는 잘 있습니다

     

신곡 밖에

단테도 잘 있습니다


혼자만의 우리는 혼자인 만큼의 서로에게 함께 입니다     


 누렇게 뜬 아르노 강물 따라온 폰테 베키오 다리. 베벤 누토 첼리니 동상 앞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없다. 평생 베아트리체를 품고 산 단테의 사랑 속 이별도 없다. 그러나 내가 온길 다시 가야 하는 베키오 다리에서 길 잃었다. 

사진 찍다 일행을 놓치고 혼자 서성인다. 사거리 막다른 곳. 사방천지 붉은빛 각막을 뚫고 머릿속은 하얗다. 페트라르카가 절절히 사랑했던 라우라, 단테의 사랑 속 베아트리체는 시로 소설로 다시 태어났지만 그 어디에도 없는 내 사랑은 길 잃고 아르노 강물에 둥둥 떠다닌다.


 잠깐 아주 잠깐의 나를 놓아버리면 나는 어디로 흘러갈까. 아련한 추억 속에 떠 있는 어떤 이미지를 품고 사는 것. 아름다운 건축물과 예술품 뒤 틈새에서 솟아오르는 온갖 형언하기 어려운 색체와 형상들. 내가 만난 피렌체는 내가 품고 살 수 있는 추억 속의 이미지가 되길 바라면서. 우두커니가 되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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