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재 Mar 25. 2019

2. 완벽한 폐허, 폼페이

-- 그 여자 이태리,  시간을 걷다

신전



             

날 저물고

판 돌 위로 구르는 이슬 차다     


용암 쏟은 베수비오 침묵이다

사라진 도시의 인간 화석들

죽음의 순간들 굳은 표정 말린다

화산재 수백만 대군을 이끈 폐허

신전의 사체가 귀신처럼 보인다

지붕의 속살 드러난 틈새로

은빛 별들이 하늘 채우고 있다    

 

시간 모르는 신전들

그 사이 드문드문 핀 꽃 양귀비

붉은 눈

내가 나를 내보이지 않으려는

닮은 듯하여

충혈된 눈망울 더 붉어진

어둠의 유적지

기둥들 온몸으로 지탱하고 있는 나를 본다     

 

견디는 것이 머물 수 있는 삶이었기에

몇 세기가 피었다 지고

이제 사라진 폐허의 신전들

무너진 한 귀퉁이 문질러

가슴에 갖다 대어 본다   

  

이루어지는 것 힘들어도

무너트릴 수 없는 것이

서로의 마음 지탱해 주는 것이라면

그대가 나의 신전이다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우산 끝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최후의 그 날을 설명하는 것 같아 슬픈 석류 꽃물 뚝뚝, 우리를 반기며 오후를 삼키고 있는 포르타 마리나와 만난다. 비에 젖은 아본 단차 중심가 이천 년 전 로마제국으로 들어가는 시간의 통로 따라 걷는다. 큰 판 돌 깐 도로는 비에 젖어 미끄럽다. 디딤돌 사이 마차가 지나갔을 선 자국 선명한 옆에 새겨진 남근 형상 표시가 새롭게 다가선다. 사창가를 가리키는 표시? 아님 부와 행운을 상징하는 표시? 지붕 없이 폐허의 집터 기둥 비집고 꽃 양귀비 주홍의 빗물 빌려와 더욱 화사하게 웃는다.


 욕심은 길을 만들고 바람은 그 길을 지운다는데, 실제 폼페이는 성적 타락이 매우 심했던 곳이라 한다. 홍등가에는 빛바랜 포르노의 프레스코 그림이 벽과 천정에 있다. 옛적 소돔과 고모라의 땅과 같이 번성했지만 성적으로 타락한 곳, 그래서 천벌을 받아 멸망한 완벽한 폐허의 도시. 경작된 땅이나 채소밭과 연관되었던 비너스가 아이러니하게 사랑과 쾌락의 도시 폼페이의 수호신이었다니. 아니다. 사랑이나 여성의 아름다움과 연관되기 때문에 수호신일 수도 있겠다. 고대부터 예술의 주제가 되었으니까. 조각상 ‘밀로의 비너스’와 산드로 보티첼리의 그림 ‘비너스의 탄생’이 말해주듯이.



 스타비아 공중목욕탕 지나 가마형 벽돌 화덕과 대형 맷돌 돌아가는 빵집 뒤로 대리석 기둥 즐비한 포럼에서 우산 속 향순아씨와 기념사진 한 장 찰깍. 카피툴린 신전 돌아 나오는 길 팔다리 잃고 고개 숙인 청동상. 뒷목을 당긴다.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기며 마치 인생 마지막 날처럼 살라’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폐허의 폼페이 여기, 지금의 나에게 묻는다. 카르페 디엠의 삶을 살고 있는지?                                                                  

작가의 이전글 1. 그 여자 이태리, 시간을 걷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