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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Apr 03. 2019

5. 천 번의 굽이 길 아말피

--그 여자 이태리, 시간을 걷다

포지타노에서 비에트리 술 마레까지 13개의 마을 품고 있는 아말피 해안도로.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에 지정된 지중해 해안을 품은 도시.

천 길 낭떠러지 위로 펼쳐진 색과 빛의 잔치.

카메라는 인간의 눈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을 실감하면서 절벽을 깎아지른 집들을 바라보다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인간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미학적 감각은 무엇일까?

색, 빛, 형태, 집들의 형태가 빛을 받아 하나의 색 덩어리로 살아나는 아말피.

천 번의 굽이 길.

‘아말피란 이름의 님프와 사랑에 빠진 헤라클레스는 그녀가 죽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땅에 님프를 묻고 그녀의 이름을 붙였다’는 곳     


등 뒤 해안선이 나를 밀며 달려오는 듯,

눈앞 절벽이 흘러내리는 듯,

풍경이 내 눈을 삭제할 것 같은 거기, 

어디쯤에 포지타노와 만난다.

그림보다 더 아름답다고 극찬한 포지타노를 사랑했던 피카소.

그 말을 실감하며 노점상 납작 봉숭아 오월을 사서 한 잎 베어 문다.

입안 가득 고이는 침과 향기 버물러진 지중해의 과즙  

이 달콤함 뒤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서로 만나지 못하는 말과 눈이 허공에서 낭비되는 시간 


절벽에 매달린 파스텔톤 집들을 보며 하늘에서 집이 떨어진다는 표현이 너무 과장되지 않을 빛과 색체의 향연

포지타노는 시칠리아 왕국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페데리코 2세가 자신이 사냥한 매를 사육하며 훈련시키던 곳이라고도 한다.     


천 번의 굽이길

    


SS163도로 천천히 가다보면 

빛깔이 나를 갖는 듯 

또 다른 빛깔에 내가 들어 있다     


어디선가 본 듯

언젠가 만난 듯

하양의 집과 비취의 기억      

젖은 눈망울로 빛을 갉아낸다 

    

시간을 잊은 지 오래

절벽에 무겁게 올라온 건물들  

빛과 색을 모아  

폭포처럼 지중해로 떨어지는 한 낮     


기억나지 않는 어제와

까마득한 내일이 

생각을 잠재우고 있다


잡히지 않으며 아른거리는

만져지지 않고 지나가는 

풍경에 미끄럼을 타다


그만, 포지타노에 가려던 길 잃었다                                             

 

포르닐와 아리엔 조 해변이 더 예쁘고 덜 붐비며 여유롭다지만.

우리는 예쁘지 않아 동네 사람들에겐 인기가 없다는 스피아지 그란데 비치로 간다.

내려가는 좁은 길목.

부겐베리아 진분홍 꽃 화사하게 웃는 넝쿨 아래로 길게 늘어선 가게들 어서 오라 손짓한다.

옷가게와 만나고 레스토랑 건너 레몬 테마 기념품 즐비하게 늘어서서 레몬 사탕 새콤 달콤 향기 내뿜는다.      


해변 한쪽에 앉아 내 시선을 데려간 지중해의 수평선 아득하고,

산타 마리아 아순타 성당 마욜리카 돔 황금빛 유혹하고,

귓가에선 조심조심 왔다가는 파도 소리 올라오고,

코끝을 적시는 바다 냄새 은은하게 자극하는,



『에덴의 동쪽』작가 존 스타인벡은 이곳에 머물며  '포지타노에 홀리다'를 '하퍼스 바자' 지에 게재하여 대박을 터트렸다는 곳.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티가 파파라치에게 찍혀 세간에 알리게 된 곳.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머물다 간 곳.

여기, 잠시

다시 못 올 젊은 날처럼 다시 오기 힘들 포지타노.

마음의 궁기 채워지지 않지만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슬픔 하나 슬그머니 남겨 두고 유람선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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