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여자 이태리, 시간을 걷다
폼페이 스카 비역에서 소렌토 가는 기차를 기다리다 만난 어린 소녀가 한국인 관광객으로 가득한 비좁은 틈 비집고 갑자기 카세트 틀더니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잘 추지도 못하는 예쁘지도 않은 춤 아니 춤이라기보다는 그냥 몸을 흐느적거리는 모습이 안쓰럽다. 앵벌이?
엄마인지 사주를 받은 여자인지 모르겠다. 좀 떨어진 자리에서 지켜보고 여행객들 구경하는 사이 기차가 들어온다. 순간 곽효환 시인의 시 한토막이 자리를 잡는다. ‘남루한 차림의 작은 소녀가 내민 들꽃 한 송이의 당혹감에 주머니 속 10유로짜리 지폐를 만지작거리다 끝내 어린 소녀의 얼굴만 가져왔다는’ 구절이 떠올라 씁쓸하다. 그 어린 소녀의 춤을 보면서 내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며 가져온 것은 무엇일까.
종착역 소렌토 역을 나오자 시인 잠 바티스타 쿠르티스의 흉상이 반긴다. 형 잠 바티스타 쿠르티스의 詩로 동생 에르네스토 쿠르티스가 曲을 붙인 ‘돌아오라 소렌토로’ 음악교과서에 배웠던 그래서 익숙한 소렌토가 정겹게 다가선다.
가로수 길 오렌지 주렁주렁, 르네상스 시대의 시인 토르 구 아트 타소를 기리는 이름 타소 광장 생동감 넘친다. 소렌토의 수호성인 안토니오 아바테의 동상 타소 광장 한복판 지키고 있는 모습을 스쳐간다. 이탈리아 성악가 ‘카르소’가 생을 마감한 엑셀시오르 호텔을 지나간다. 홈 메이드로 유명하다는 프리마베라의 젤라토 길거리에 서서 먹는 맛보다 카프리 섬 유람선 타기 위해 마리나 그라데 선착장 가는 내리막길. 그 지중해 물빛은 이탈리아 전통 술 레몬 첼로 한 잔 들이키며 아롱지고 싶게 다가온다.
새의 몸에 여자의 머리와 목소리를 가진 바다괴물 세이렌.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뱃사람들을 유혹해 바위에 부딪혀 죽게 하여, 이 곳을 지나는 모든 배들은 좌초되거나 바다에 가라앉아 무사히 살아 나올 수 없었다. 20년 만에 고향으로 가는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몸을 기둥에 단단히 묶고, 일행들은 밀랍으로 귀를 막아서 음악을 듣지 못하게 했다는 그리스의 작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인생의 고통이나 시련을 전쟁을 통해 보여주고 어떠한 유혹도 견뎌낼 수 있은 인간의 의지를 세이렌으로 대신한 것.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이 질문 속에 작가는 영웅 '오디세우스'를 통해 인생의 가치를 제시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다
몰타의 고조 섬 람라 베이 해변. 바다 쪽의 절벽에 있는 칼립소동굴이 강풍에 무너져 동굴은 폐쇄되었고 동굴 보지 못한 아쉬움을 함께했던 일행 사진 찍어 주다 미끄덩 엉덩이 꿍 발목을 다친 기억이 새록새록.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폭풍으로 섬에 표류된 오디세우스, 요정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불사신으로 만들어 줄 테니 영원히 같이 살자고 한다. 오디세우스는 거절하고 제우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칼립소의 사랑인지 집착인지 모를 7년을 접고 칼립소 동굴을 떠난다.
귀향 본능의 오디세우스와 귀향길을 막으려는 ‘세이렌과 칼립소’가 겹쳐진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