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서 그리워하다, 여기

2. 홍사용 문학관

by 김민재

늘 마음에 품고 살았던 시인이었다. 왜 그 시인에게 마음이 끌렸는지는 모르겠다. 노작의 시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시왕전(十王殿)에서도 쫓기어 난 눈물의 왕이로소이다’를 만나러 간다.


노작공원 안 아담하고 붉은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작은 도서관이 먼저 반긴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뒤로 빙 둘러 그 옆으로 주황색 안내 책자 한 권 집어 들고나니 ‘홍사용의 삶’ 이 말을 건다. 이슬 ‘露’ 자에 참새 ‘雀’ 자를 쓴다는 호 ‘노작’ 정갈하게 진열된 선생의 일대기가 연대표로 나열되어 있고 삶의 발자취가 있다. 1900년대부터 40년대까지 일제 강점기 문예활동 작가들 ‘한국 근대시사’에 관한 기록들이 하얀 아크릴 안에 숨 쉬고 있다.

DSC03268.JPG


시의 한 토막 잘라 온 듯한 손택수 관장의 “문학관이 고체처럼 굳으면 무덤 속의 관이 된다. 문학관을 액체처럼 흐르고 스미게끔 만들겠다는” 관장이 시인이라서 시적인 인터뷰를 하시는구나 가슴에 와 닿은 ‘뉴스페이퍼’ 인터뷰를 머리에 새겨 넣으며 하얀 대리석 2층 계단을 오른다.


‘문화사’를 설립하고 문예지 『백조』와 사상지 『흑조』를 기획, 『백조』만 간행했으나 3호로 단명하고 말았지만 박종화, 이상화, 나도향, 박영희, 홍사용 등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 문예 동인지를 창간한다. 홍사용은 우리나라 신극운동에, 근대극 운동의 선구적 극단인 토월회에 가담해 문예 부장직을 맡았고 직접 서양극 번역과 번안 그리고 연출. 박진, 이소연과 ‘산유화회’를 결성하고 1930년에는 홍해성, 최승일과 신흥 극단을 조직하기도 했다.


2층 전시실에는 기억의 방, 추모의 방, 토월회 등 구간이 나누어져 있으며 어머니를 향한 독백의 시 1923년 선생이 창간한 『백조』지 3호에 실렸던 「나는 왕이로소이다」가 반긴다. 다시 읽어 본다. 휘문의숙 2학년 때의 친필들 진열장 안에 고요히 앉아 반긴다.


DSC03272.JPG


선생의 작품들 눈과 마음으로 담아낸다. 그리워서 그리워하다 그리워하였기에 나 여기에 있고, 선생은 거기에 있다.


전시실 옆으로 북 카페에 들어서면 책장 가득 다양한 종류의 책들과 여유를 마시고 가라 한다. 밖으로 나오니 ‘노작 홍사용 묘역’ 표지판이 길을 안내한다. 노작 공원 뒤로 나무 데크 토닥토닥 발맞춰 걷는 듬성듬성 진달래 꽃 활짝 웃고 있다. 오랜만에 미세먼지 없는 날 진달래꽃 빛깔 참 예쁘다. 묘역에는 조화 몇 송이와 시비와 비석이 묘역을 지키며 반석산 오르내리는 사람들 심심치 안은 눈요기로 하루를 채운다.


DSC03302.JPG


문학관 옆 노작공원 홍사용의 문학작품을 새겨둔 네 개의 석벽. 그중 「나는 왕이로소이다」 석벽 앞 벤치 앉아본다. 봄볕 따뜻한 등 뒤 석벽에 새겨진 시가 자꾸 등짝을 친다. 무엇이 조급하게 하는지 모를 일상에서 벗어나 오늘 하루 반석 도로 오고 가는 자동차 소리 들으며 벤치에 앉아 한없이 바라보는 하늘빛 푸른. 어린 날의 그 푸름이 여기에 앉아 나이 먹음을 풀어내고 있다.

이전 11화펜 하나로 꿈을 그려낸 세한의 송백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