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하나로 꿈을 그려낸 세한의 송백이 되어

3. 목포 문학관(박화성, 김현)

by 김민재

목포역 앞 정류장 목포 문학관 가는 15번 순환버스 원도시와 신도시를 잇는 배차시간이 참 길고도 길다. 택시를 탈걸 때 늦은 후회와 기다린 시간이 아쉬워 역 광장 오고 가는 사람들 바라보며 학창 시절 읽었던 박화성『백화』, 강경애『인간문제』, 김말봉『찔레꽃』를 그리워할 즘 버스가 왔다.


문화예술 정류장에서 내리면 갓바위 문화타운에 위치한 목포문학관이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있다. 문학관 오르는 길 맨 먼저 반기는 박화성 흉상과 차범석 선생의 글 ‘씨 뿌리는 여인 아! 박화성’ 탄생 백주년 기념비 반긴다.


목포문학관은 근대극을 최초로 도입한 극작가 김우진, 여류 소설가로서 최초의 장편소설을 쓴 박화성, 사실주의 연극을 완성한 극작가 차범석, 평론 문학의 독보적인 문학평론가 김현 등 1,2층으로 문학관을 채우고 있다. 입장료 2,000원. 직원이 없다. 문학관 관람객도 없다. 입구에 설치된 선생들의 기념비와 인사하고 박화성 관으로 들어간다. 문학관 통째로 내 차지다. 무덤처럼 고요하다. 그러나 즐겁다. 이 순간 모든 걸 잊고 오롯이 홀로 선생의 생애를 만날 수 있다는 행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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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성 관

입구에 들어서자 센서 등 켜지면서 선생의 흉상이 반긴다. ‘생애와 문학’ 안에는 친필 원고들과 사진들이 어깨를 나란히 시작으로 귀중품이던 다듬잇돌, 평소 사용했던 장신구 및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재현해 놓은 집필실에는 책장과 책상이 단조로이 놓여있고, ‘문학사적 위상’ 코너에는 방한한 루이제 린저와 함께 찍은 사진, 펄벅 자택 방문 사진, 대만 여류들과의 사진들이 걸려있다. 선생의 연대표와 벽면 가득 매운 『백화』신문 연재가 도배를 하였으며 그 앞 문학관에서 주체한 시화전 작품들이 줄지어 놓여있다. ‘문인 가족 박화성’에서는 문학평론가이자 언론인 장남 천승준, 소설가와 희곡작가 차남 천승세. 서울대 영문과 교수 3남 천승걸. 소설가 맏며느리 이계희. 가족사진과 작품집들이 진열되어 있다.


선생은 숙명여고 졸업 후 일본 여자대학 영문과 중퇴. 1925년 이광수의 추천으로 <조선문단>에 「추석전야」로 등단한다. 식민지 조선의 경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착취당하는 여성 노동자 영신의 현실과 분노를 형상화한 리얼리즘의 미학에 바탕을 둔 작품이다. 영신의 기막힌 정황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예리하고 감각적인 수사로 표현되었다는 점. 1920년 그 시대에 빼어난 기법에서 예술성을 돋보이게 한 작품인 동시 차가운 바닷물에 던져진 미끼처럼 암울한 시대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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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작품 활동은 1932년 단편 「하수도 공사」부터다. 목포의 유달산과 시내 사이를 가로질러 흐르는 하수도 공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 당시 일본은 빈민구제 사업의 하나인 하수도 공사 사업을 벌였으나 청부업자와 자본주의 지주에게만 이익이 돌아갔다.

일본인 청부업자가 부정한 경리로 부실공사가 되자 노동자들의 임금을 착취하고 체불 노임을 횡령하려는 것을, 동관이 앞장서서 그들과 싸워 끝까지 받아낸다. 인간의 노동력의 위대한 업적을 선생은 동관을 통해 세상에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단순한 노무자들의 체불 노임을 해결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이러한 일들을 민족독립으로 연관하여 승화시켰다는 점이 예술성을 부여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단편 「호박」을 <여성>지에 발표한 것을 끝으로 해방이 되기까지 일제의 우리말 말살정책에 항거하여 절필하기도 했다.


『백화』는 1932년 6월부터 11월까지《동아일보》에 연재된 소설로서, 당시 여성 작가의 작품으로는 처음 시도된 신문 연재 장편 역사소설이다. 고려 말을 배경으로 백화라는 기생이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겪는 고통과, 여성을 수단시하고 욕망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음모와 폭력을 물리치고 순수한 사랑을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고려 사회에서 억눌린 삶을 살던 여성을 전면에 부각해 여성이 사회에 끼치는 힘이 남자 못지않음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선생은 이 작품을 통해 당시 성행했던 사회적 관심과 민족적 관심을 융합시키는 데 성공하였고, 또한 한 여성의 불행을 개인의 문제로 국한하지 않고 민족적 불행으로 통찰한『백화』를 통해 과거를 차용해서 현재의 문제를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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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육아, 지방 여성작가라는 삼중의 불리한 여건 속에서 작품을 잉태한 “ ~아이들과 억지로 정을 떼 가며, 호랑이 노릇을 해가며, 어머니에게는 불효를 해가며, 도둑놈 도둑질할 구멍 엿보듯이 밤낮으로 조용한 시간만 가져볼 궁리나 머리에 가득하게 가지고 집안일은 밤을 새워해 가면서, 구설께나 들으면서도 이 붓대를 놓지 못하는 것을 무슨 천형으로 생각하였다."는 선생의 말씀이 명치끝에 와 머문다. 조건 좋은 나에게 무딘 질문하고 깨진 답조차 하지 못하는 내가 안타깝다.


“펜 하나로 꿈을 그려낸 세한의 송백이 되어” 문구와 흉상을 옆으로 2층 계단 오르는 어둠. 걸을 때마다 센서 등 켜진다. 내 몸 전체가 켜지는 것 같다. 이 넓은 문학관을 혼자 감상하기에는 너무 붉다는 두려움도 잠시 김현 관으로 이어진다.


*참고: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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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관

왼쪽 벽면을 가득 채운 ‘김현을 만나다’에서는 문학평론가 및 시인들의 한마디가 아크릴 안에 가득하다. 문학평론집 줄지어 서있고 ‘뜨거운 상징의 생애’ 연보가 액자 안에서 선생을 말하고, 중앙에는 슬라이드에서 선생을 가득 채우고 있다.

2층 밖으로 나오니 목포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갯바람 봄볕에 버무려져 길 따라 역에서 애타게 기다리던 15번 버스가 쉽게도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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