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혼불 문학관( 최명희)
한우리 독서지도 상록 선생님들과 함께 한 문학기행. 경기전 입구 ‘풍남정’ 식당의 돌솥 비빔밥. 전주 하면 비빔밥과 콩나물 국밥. 우린 전주의 문화를 먹고 있다. 오후 4시가 넘은 시간이라 많이 허기졌나 보다. 누룽지까지 긁어모으고 있는 걸 보면서 마주 보이는 성당으로 향한다. 로마네스크와 비잔틴 양식이 혼합된 건물로 한국의 교회 건축물 중 곡선미가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며 화려한 건물로 손꼽히고 있다는 전동성당 앞에 섰다. 영혼의 허기라도 채워보고 싶어서다.
건축은 '인간을 담을 그릇을 빚는 작업'에 흔히 비유되고 있다 한다. 그래서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그 생김새가 서로 달라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은 인간과 자연 그리고 건물 공간이 서로 거슬리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인데, 한국의 교회 건축물 중에서 이런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 바로 전주교구 전동성당이라고 한다. 전동성당은 한국교회 최초의 순교자들인 윤지충(바오로)·권상연(야고보)이 순교한 자리에 세워졌다. 이들은 유교식 조상 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태워 참수형을 받았으며, 오른편 정원에 '한국 천주교 순교 1번지'라고 새겨진 선돌이 서 있다.
경기전과 ‘최명희 문학관’은 둘러보지도 못하고 남원에 있는 ‘혼불 문학관’으로 달린다. 여행이란 여유를 가지고 다니면서 그곳의 숨결과 호흡을 같이 하여야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빨리빨리 문화인 한국인의 습성 탓인지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생활상인지 그렇게 여유로운 여행이 안 된다.
전주를 조금 벗어나자 '몽마르트르 천주교 성지 치명자산’이 보인다. 진리의 뜻을 세운 사람과 순교자들을 흠모하는 순례자들에게는 믿음의 고향이며, 기도 공원으로 사랑받는 한국의 혹은 전주의 몽마르트르(순교자의 산)를 지나 17번 국도를 달린다. 임실 치즈의 고장 건너고 오수에 들어서자 도로변에 애견공원 오수 의견상이 반긴다. 주인을 위해 목숨 던진 충견 생각에 잠시 숙연해지는 데 곧바로 혼불 문학관 이정표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꾸불꾸불 시골길 따라 마음도 함께 꾸물꾸물 시골스러워진다.
그렇게 산길과 논길을 따라 한참을 가다 보면 강모의 아내 효원이 순천에서 신행 올 때 전라선 기차를 타고 서도역에서 내리는 장면을 묘사했던, 강모가 전주로 유학할 때 이용했던 자그마한 간이역 서도역을 만날 수 있다. 구舊 서도역은 당시 모습으로 복원하여 영상 촬영장으로 보존하고 있는데, 1932년에 지어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역사로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서도역을 지나 철길 건널목을 통과하여 좌측을 보면 교회가 있는 서촌마을이 있다.
그 옆길을 따라 또 한참을 가면 호성 암을 품고 있는 567m의 노적봉 아래 노봉마을이 비스듬히 자리하고 그 아래로 농민들 마음의 고향인 무논들이 널따랗게 펼쳐져 있으며, 문학관의 옆쪽으로 푸른 물이 넘실대는 청호저수지가 위치하고 있다.
커다란 물레방아가 입구에서 우리를 맞이한다. 문학관은 터가 꽤 넓고 규모도 크다. 돌계단을 오르면 커다란 마당을 사이에 두고 기와지붕의 한옥 건물 두 동이 위엄 있게 자리하고 있다. 전통 한옥은 우아하고 고상해 보여 매안 종가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마당에서 올라온 길을 돌아보면 색다른 풍광을 만나게 된다. 멀리는 장수 팔공산이, 그 오른쪽 옆으로는 보절면 천황산이, 그리고 옆의 멀리로는 지리산이 에워싸고 있다. 뒤로는 노적봉과 계관봉이 바로 위에서 굽어보고, 좀 멀리로는 풍악산이 굽어본다. 빙 둘러 산이 감싸고 있어 평안함을 느낀다.
연초에 휴관일 줄 모르고 들렀다가 못 보고 간 전시관에는 유물 전시실과 집필실인 작가의 방, 주제 전시실이 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작가의 얼굴과 자필 글씨인 ‘최명희 혼불’이란 글이고 생전에 작가가 사용했던 만년필과 잉크병이 인상적이다. 작가의 만년필과 그 옆에 놓인 꼼꼼하고 치밀하기까지 한 작가의 취재 수첩과 자료집이 있다. 생전의 작가를 만나는 듯한 친근감. 17년의 혼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작가의 집필 방을 재현해 놓은 곳을 지나 복도 양쪽으로 최첨단 디오라마(10장면)가 이어진다. 강모와 강실이가 복사꽃 아래서 소꿉놀이하는 장면, 강모와 효원의 혼례식, 효원의 흡열 정, 액막이 연 날리는 모습, 춘복이 달맞이 장면, 인월댁 베 짜기, 강수 영혼식, 쇠 여울네 종가 마루 찍기, 청암대 장례식, 청호저수지가 말라 바닥을 드러내는 모습 등 소설 속의 주요 장면들을 인형과 모형들로 꾸며 놓았고 음향 효과도 들을 수 있다.
‘혼불이란 우리 몸 안에 있는 불덩어리이다. 사람이 제 수명을 다하고 죽을 때 미리 그 몸에서 빠져나간다는 혼불은 목숨의 불, 정신의 불이다. 우리 몸속에 있다가 죽을 때 미리 그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혼불로 존재의 핵이 되는 불꽃이다. 이러한 존재의 핵, 우리 민족의 핵, 정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소설『혼불』이다’고 한다.
혼이 다 빠지도록 쓴 글 가슴 한구석이 멍멍하다. 선생은 혼이 다 빠지도록 글을 쓰고 그 자취를 남겼지만 나는? 내가 내게 묻지만 답은 없다. 아니 답할 수 없는 내가 있을 뿐이다. 무엇인가 쓴다는 것은 가슴을 태우는 일이다. 한 편의 글이 써지기까지 겪는 고통이 얼마나 힘이 들면 우리는 산고의 고통이라 할까. 아이 낳는 것만큼 글쓰기의 고통 또한 힘이 들기 때문에 문학관을 탐방할 때마다 나는 아프다.
전시실을 나오면 옆 건물의 교육관 앞에 소원을 돌에 써서 모아놓은 소원성취 돌무더기가 있다. 우리 선생님들 돌멩이 골라 소원을 써넣고 있다. ‘사랑과 건강’ 은안 샘의 소원 돌멩이다. 그 소원 꼭 이루길 난 마음속으로 기원해 본다. 예쁘게 기념사진도 찍는다. 교육관 옆으로 큰 대청마루가 자리하고 있다. 한옥의 기둥과 마루, 대들보에 드러난 나뭇결의 무늬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전통 한옥 그냥 보기만 하여도 포근하고 편안하다. 너무 빌딩 숲에 길들여진 우리 삶이 삭막해져 가고 있으며, 한옥이 우리 정서에 맞는 구조라서 더 애정이 가나 보다.
모든 것이 쉽게 버려지는 오늘의 세대에 진정한 생명력의 근원은 무엇이며 나는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우리 조상들은 무엇을 먹고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을까 하는 궁금증들을 해소시켜주는 책.
『혼불』은 ‘우리나라의 기후와 풍토, 산천초목, 생활 습관, 사회 제도, 촌락 구조, 역사, 세시풍속, 관혼상제, 통과 의례, 그리고 주거의 형태와 복장, 음식, 가구, 그릇, 소리, 노래, 언어, 빛깔, 몸짓들을 단순한 토막 지식으로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행하고 치르고 감당했던 선조들의 숨결, 손길, 염원과 애증이 선연히 살아나도록 애절하게 재생해냈다.’는 점에서 고개를 숙인다.
서구 문화의 가속화로 우리는 전통문화의 상실을 감수해야만 했다. 머리로는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있지만 몸으로 실천하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은 세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다. 전통은 수구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시대에 뒤진 것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높기 때문이다. 그만큼 전통에서 거리가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는 같은 한국인이면서 서구적 한국인과 한국적 한국인이 공존하고 있다’고들 한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의 것, 우리의 전통문화가 소멸되어 가는 오늘날. 진정한 생명체 정신은 ‘혼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근원에 대한 그리움, 뿌리의 복원은 진정한 우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며, 이제는 이러한 뿌리에 대한 그리움의 의식마저도 사라져 가고 있다.
“「근원에 대한 그리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를 있게 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윗대로 이어지는 계보의 사다리가 저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켰죠.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생각하며, 어떤 음식을 먹으며 살았을까. 이 평범하고 소박한 의문이 저를 17년간 붙들어 맨 근거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따라서 갔던 큰집이나 어머니를 따라서 갔던 외갓집이나, 또는 어려서 보았던 정다운 그 어른들의 생활모습들이 저의 가슴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한 자 한 자 원고지를 메우고 있었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의 작가의 말이 가슴에서 떠나질 않는다.
청호 저수지 앞 원두막에 앉아 바라보는 청명한 하늘 잠시 붙잡아 본다. 어릴 적 버스도 다니지 않는 새벽 시오리 눈길. 고창읍에서 월산리 산정마을까지 명절 때면 아버지 손잡고 큰집 가던 내 모습과 작가의 모습이 함께 겹쳐온다. 어린아이가 그 먼 길을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서 때론 걷고 업혀서 간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춥고 졸리고 호랑이가 살았다고 한 산길을 돌아갈 때면 무섭고 그 어린 마음에 난 명절이 없었으면 하였던, 정말 큰집에 가기 싫다고 떼쓰던 어린 날의 한때. 그게 다 작가가 말하는 근원인데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뿌리인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