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역에 정차한 봄 열차

채만식 문학관

by 김민재

‘삶이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어떤 삶이 가치 있는 것인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자신에게 던져봤을 화두이다. 길 없는 길을 찾아 나서는 꿈을 꾸며 그 꿈을 찾아 오늘도 떠나고 있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서 갈매기처럼 크고 아름답고 무겁고 빛나는 것이 되려면 그런 것들을 보고 자라야 하고, 깊고 아늑하고 그윽하고 따뜻한 것이 되려면 그런 것들을 많이 느끼며 살아야 한다는 그 다짐을 하면서

기차여행에는 삶은 계란과 김밥이 없으면 앙꼬 없는 찐빵이다. 그리고 커피와 낭만이 없으면 김 빠진 맥주. 묵은 이야기들 한 보따리 싸 들고 봄 열차를 탔다. 잠시 나를 찾아가는 여행. 존재의 확인은 너무 거창한 플래카드이고 봄 마중 가는 길 쯤으로 해두자. 학생 때 수학여행 떠나는 기분으로 달리고 있다. 먹고사는 일에만 얽매여 살아야 하는 못난 삶이 싫어 날기를 꿈꾸는 조나단의 갈매기처럼 오늘만은 생활의 빈곤함에서 며느리에서 아내에서 엄마에서 벗어나 ‘나’이고 ‘내 이름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싶다.


익산에서 군산시 내흥동 285번지 금강하구 둑 시작점에 있는 탁류의 작가이자 풍자문학의 대가 채만식 문학관에 왔다.

문학관 정문으로 들어서자 먼저 바다 냄새가 반긴다. 2001년에 문을 연 문학관 1층 로비는 평일이라 관람객이 없어 무료함을 달래던 중 우리가 들어서자 해설사가 반갑게 맞이한다. 전시실은 실제로 재현된 작가의 행동과 목소리를 경험할 수 있게 고증과 검증을 통해 연출해 놓았다. 자료보관실은 작품집과 친필의 소설 원고들이 전시되었고, 2층에는 50석의 영상 세미나실이 있으며, 그 맞은편 벽에는 탁류의 첫 장 부분이 액자 속에서 관람객을 맞고 있다. 베란다로 나오면 멀리 장항 제련소가 보이고, 서천을 잇는 방조제가 보인다. 문학관 앞 정원은 전부 잔디로 옷을 입었고, 문학광장 앞 기차 길이 봄을 부르며 이두 광장 너머 강물은 팔각정과 봄놀 이 가자고 한다.


‘백릉(白綾) 채만식 선생님은 전북 군산시 임피면 읍내리 274번지 동상마을에서 5남 1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습니다. 돈은 없지만 감색 상의에 회색 바지를 입고 모자를 쓰고 다녀 그를 <불란서 백작>이라고 불렀고, 병적일 만큼 결벽증 또한 심하였답니다. 탁류란 더러운 물의 흐름이라는 뜻입니다. 비옥한 농업지대인 까닭에 봉건 왕조의 사회기강이 문란해지던 구한말 관리·아전들의 행패가 극심했고, 일제의 수탈에 시달려야 했던 군산을 배경으로 1930년대 후반 일본의 경제적 수탈로 인하여 우리 민족이 겪는 경제적, 사회적 문제와 궁핍화 속에서 초봉이란 여성을 통해 개인이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나타냄으로써 당대 사회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탁류’ 속의 인물들을 문화 해설사분은 정말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다. 또 채만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96년 군산문화원에서는 탁류의 작품 무대인 ‘미두장’,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째보선창’ 등 3곳에 채만식 소설 비를 세웠으며, 2003년 11월에는 '한참봉 쌀가게'(콩나물 고갯길 중턱 왼쪽 공터), '정주사 집'(선양동 구름다리 중간), '큰샘 거리'(중앙로 흥국생명 옆), '제중당 약국'(구 군산역 앞 현 전북 약국), '금호 의원'(구 군산역 앞 삼성 디지털플라자) 등에 소설 비를 추가로 세웠다고 한다.

유치원생처럼 귀 쫑긋 열심히 듣는 사이로 봄날의 나른함이 창틈으로 스며들고 있다. 그 일제 암흑기에 처절하게 글을 썼다는 것은 그만큼 삶이 처절하였다고 볼 수 있다. 없는 길을 찾아 있는 길로 만드는 생은 아름답고 행복하다. 작가 채만식 선생 또한 일제 강점기 살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그가 남긴 작품을 읽으면서 우린 아름다운 생을 만들어 갈 수 있어 기쁨이다.


문학관 앞 금강 하구둑을 걷는다. 물억새 출렁인다. 아직은 강바람도 차다. 그러나 봄볕에 그을린 연자, 동애, 경남, 은안 선생님들 얼굴엔 화사하게 민들레꽃이 피고 있다. 싱싱한 태양이 강물에 금빛으로 빛나고 청둥오리 날아오를 때마다 볼에 스치는 바람소리가 발목을 잡지만 갈길 먼 우리는 신작로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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