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꽃, 아른아른

-시문학파 기념관

by 김민재

모란으로 시작해서 모란으로 끝나는 듯 강진 읍내의 모란 간판과 담벼락에 그려진 모란꽃들로 연결된 ‘감성 강진의 하룻길’이 펜대에 매달려있고 펜촉은 푸른 하늘 도화지에 구름을 그리고 있다.


카프문학과 감각적 모더니즘에 휩쓸리지 않고 순수문학의 뿌리를 내리게 한 시문학 파는 1930년대 창간된 시 전문지 『시문학』을 중심으로 순수시 운동을 주도했던 시인들. 비록 3호로 끝났지만 모국어의 세련미에 몰두하여 한국시의 예술적 수준을 비약적으로 향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념관 입구 야외전시장 오른쪽은 대리석으로 세워진 『시문학』 1호 표지와 맞은편으로 『시문학』지를 창간한 김윤식, 정지용, 박용철 시인들의 청동상 하얀 마스크를 쓰고 바라보는 오늘의 모습과 생각이 궁금해지는. 벽면을 이용 시문학파 9인의 얼굴 부조 따라 계단을 오르면 영랑의 시가 한 면 채운 느린 우체통과 전시실.

원형의 자연채광(천정)에서 쏟아지는 빛을 받아 전시실 내부가 밝음과 어둠이 대조를 이루면서 실내의 답답한 공기를 부숴내고 있다. 갇힌 감정들이 빛으로 분산되는 시간이다.


‘시의 향기를 머금은 곳’ 문구와 함께 자작나무 기둥을 중심으로 한눈에 보는 현대시의 역사를 따라 신문에 보도된 활동과 시문학파 전후의 시인들인 한용운, 김소월, 김기림, 백석, 김광균 서정주, 윤동주 문학유파들 자작나무 기둥 삼아 동인지 운동의 효시인 창조파-폐허파-백 조파-신경향파-국민 문학파-해외 문학파-시문학파-모더니즘-생명파-청록파의 설명과 시인들, 영상관, 시인의 전당은 9명의 시인들 사진 및 약력, 친필, 전용 원고지, 일기장 등 유리관 안 작품집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1930년대를 풍미했던 카프 계열의 프로문학과 감상적 낭만주의 사조에서 벗어나 이 땅에 본격적인 순수문학의 뿌리를 내리게 한 모태가 되었다는 시문학파 기념관 옆 담장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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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 김윤식 생가

전라도의 정서를 시어로 순화한 생가 들어서면 꽃 지고 난 뒤의 모란 잎들만 너울너울 한국문인협회에서 세운 생가 표지석이 초가지붕을 지키고 있다. 군데군데 세워진 시비들 따라 사랑채에 들어서면 댓돌 위 하얀 고무신, 낡은 툇마루, 방안을 지키고 있는 단출한 고가구와 책상 화로 하얀 호롱 등잔 뒤로 청자도자기.


영랑은 휘문의숙 3학년 때 3·1 운동이 일어나 학교를 그만두고 강진에서 독립운동 만세운동을 모의하려다 체포되어 6개월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청산학원에 수학할 때 무정부주의자 혁명가 박렬, 시인 박용철과 친교를 맺었고, 정열적인 두 사람의 성격에 영향을 받아 민족주의적인 내용을 안으로 새기고 우리 고유 정서를 미화한 시를 쓴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귀향, 그때 최승일과 교우하면서 그의 누이동생 무용가 최승희(안막과 결혼 후 월북)와 가까이 지냈으나 부친의 반대로 개성 호수돈 출신의 교사 김귀연과 재혼한다. 첫 부인은 혼인 1년 만에 사별하였다.


한동선 교수의 『문학비 답사기』에서 ‘우리말이 도달할 수 있는 극상의 가락과 무늬로 읊은 가냘프고 질기고 순수한 서정은 윤선도의 서정과 일맥상통하며, 시문학파에서는 정지용의 시가 비단실로 짠 회화적이고 감각적이라면, 김영랑의 시는 무명실로 짠 음악적이고 정서적이다.’는 말한다.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오매 단풍 들것네 -전문

장독대도 감나무도 제자리 지키고 있지만 c-19로 백신도 단풍도 멀리 있어 깨진 계절만 바스락 거리다 아프게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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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_1440.JPG 생가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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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뒤편 세계 모란공원 가는 계단을 오르면 댓잎 파리 서로 몸 부딪치는 소리 정적을 깨운다. 생가를 둘러싼 담장 너머로 대밭과 길 따라 쭈욱 모란꽃 길. 우리를 숨 쉬게 할 수 있는 바람 따라 탐스런 모란꽃 송이 한 그루 마치 에두아르 마네의 작품 ‘작약’을 보는 것 같아 한참을 그렇게.


영랑의 청동상 키를 맞추고 바라보다 무엇을 염탐하러 온 사람 같아 슬쩍 내려다보면 하트 모양의 ‘모란이 피기 까지는’ 시비 곁으로 구암정 가는 전망대. 노을로 물들어가는 강진읍내가 소쿠리에 담긴 그림 같다.


김영랑과 함께 시문학파 동인으로 활동하며 시작품을 남겼지만 시집 한 권 펴내지 못하고 잊혀진 시인으로 한국 문학사에서 제대로 된 평가받지 못한 김현구 시인의 작품 담장 한 켠


‘나는 흔적이고 싶다.


가버린 것을 쫓을 수 없고

장차 올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지금의 나를 본다.’


가 담벼락에 딱 붙어 내 마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은 채 걸쭉한 골목은 짙어지고 있다.

자연과 인생에서 느낀 감정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김현구 시인. 여기에 오지 않았으면 몰랐을 그의 작품과 삶을 조명할 수 있었던 풍요로운 하룻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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