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길에 쌓인 발자국

-신동엽 문학관

by 김민재

땡볕 머리에 이고 잃어버린 발목 챙겨 길을 재촉하는 농부의 어깨 위로 부소산성을 넘는 초록물결 들썩이는 유월 초하루.


도착은 해도 다다를 수 없는 시의 길 따라온 신동엽 문학관 초입. 이영진 시인의 구상으로 신동엽 문학관 가는 길은 사람이 달려가는 형상의 아트 이정표가 매우 인상적이다.

전미영 작가의 '황동 벤치'


박영균 작가의 '궁궁을을'


생가터 앞 도로에 새겨진 “발자국이 쌓여 길이 되었다”의 수많은 발자국이 만들어 낸 길. 주황색 보도블록 사이를 두고 마치 시냇물 흐르듯 새겨진 이 작품과 전미영 작가의 금강을 형상화 한 황동 벤치가 조화롭게 이야기를 꾸미고 있다.


시인의 서서시 「금강」과 어우러진 작품은 붙잡을 수 없는 그 무엇이 발자국을 만들며 구부러진 길을 펴고, 생가 맞은편 벽면 시인이 노래한 아사달과 아사녀를 형상화한 박영균 작가의 타일로 펼쳐진(「궁궁을을」-남부여에서 북부여까지) 작품 위로 폭포처럼 쏟아지듯 한 낮, 빛을 부수고 있다.


푸른 잔디 마당이 고즈넉한 생가를 이끌고 가는 시인의 정신세계가 탄생한 자리. 시인이 만든 ‘야화(들불)’문학 동아리에서 문학을 설계하고 토론하였다는 생가 마루에 앉아 잠시 그 시절 시인의 열정을 상상해본다.

시인의 모든 정신세계가 이루어졌다는 마루에서 옆으로 돌아 앉아 고개를 살포시 올리면 부인이자 짚풀 생활사 박물관장이었던 인병선의 시「생가」가 신영복 교수의 글씨와 임옥상 화가의 동판 디자인이 문지방을 지키고 있다.


생가 앞 잔디마당 위로 돌계단 서너 개 오르면 보는 각도에 따라 표정을 달리하는 임옥상 화가의 설치미술 「시의 깃발」은 청명한 하늘에 시인의 시어들을 파종하고, 나는 바람에 나부끼는 시어들을 눈으로 줍는다.

임옥상 작가 '시의 깃발'



문학관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책들이 천정에서 춤을 춘다. 수상자의 작품집이 공중에 매달려 제 모습을 자랑하는 북카페이자 쉼터이며 신동엽 문학상 수상 작가관이다.

문학관 김형수 관장님과의 해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교수님의 이야기들로 꽃을 피웠고, 과장님의 문학관 소개는 설렘 한 가득이다.


신동엽 문학관 건축물은 시인의 시「산에 언덕에」을 형상화시킨 건축가 승효상의 작품이다. 건물 안과 밖의 연결고리로 골목길이 이끌고 물길이 부소산성 산책길을 이루며, 움집터를 건물이 안으면서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알맹이 가득한 건축물로 건축가들도 방문한다는 설명이다.

옥상 오르는 길
김형수 관장님과 구본주 작가의 '쉿, 저기 신동엽이 있다'

문학관 본체 왼쪽 모서리「쉿, 저기 신동엽이 있다」 구본주 조각가의 작품은 일제 강점기와 독재체제를 통과하면서 끊임없는 감시를 견뎌야 했던 신동엽과 구본주가 한 공간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모습은 시인과 조각가의 정신이 짓든 대면이라 한다.


신동엽 문학관은 지붕 없는 미술관이다.

문학관 건축물부터 곳곳에서 펼쳐지는 작가들의 작품이 심심하지 않게 숨바꼭질하듯 나타난다. 이처럼 골목에 끌려가듯 문학관 옥상에 오르면 나규환 조각가의「바람의 경전」인 기타 소리 송수신 안테나를 타고 신동엽의 노래가 구름에 두둥실 실려 간다.

나규환 작가의 '바람의 경전'
심정수 작가의 '신동엽 흉상'


잔디를 배경으로 옆 벽면에 꿈틀거리는 청동의 무리들 뚫고 60년 전 시인의 숨결을 오늘 속으로 흘려보내는 듯 숙연해진다는 관장님의 소개는 교육이 있어 사무실로 떠난 뒤, 나는 한참을 바람의 경전에 귀 기울이며 땡볕에 놀다 마주한 심정수 조각가의 신동엽 흉상. "펜은 칼보다 더 날카롭고, 촉은 창끝보다 예리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흉상이 중정을 지키고 있는 문학관 안으로 스며든다.

제2 전시실은 ‘어느 암벽 등반가의 신동엽길’이란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신동엽 시인이 생전에 남긴 북한산 등반길 ‘산 사진’ 20여 점에 대한 정확한 해석과 고증의 그 길을 따라가는 사진과 ‘김기섭, 시로 쓴 비망록’을 밀어내며 제1 전시실로 향한다.


버리기라면 일가견이 있는 나는 중, 고교생인 아이들 교과서를 버리고 어렵게 다시 구입하고 그럼에도 또 학교에서 필요한 것들을 버리는 나를 아이들은 본인들 방 물건은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손대지 말라는 경고를 자주 했다.


불안해서 버리는 나와 소중해서 버리지 못하고 어린 시절의 자료들을 모아둔 시인의 부친과 자료를 받은 부인의 사랑으로 문학관 제1 전시실은 풍성하고 따뜻하다.


신동엽과 식민지 시대, 전주사범 시절, 한국전쟁, 풀잎사랑,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신춘문예 등단 신문 스크랩, 시집 『아사녀』, 시인의 길, 껍데기는 가라, 서사시 「금강」, 살아오는 신동엽, 다시 만나는 신동엽 등 시인이 39세 간암으로 사망하기까지의 일대기가 환하게 펼쳐져 있다.

‘시인의 시는 작은 체구와 깐깐한 성격과는 달리 언제나 서사시적인 긴 호흡이 담겨 있었고, 민족사의 수난을 바탕으로 한 역사의식이 강하였으며 민족의 큰 설음을 가슴에 품었던 사람이다’고 『함동선의 문학비 답사기』에서 함동선 교수는 말한다.


맞은편 안으로 들어서면 검은색과 흰색이 조화를 이루며 시인과 부인의 편지, 읽었던 책들, 시집, 문인들과 함께 했던 기록들, 연구도서, 생가 복원 및 묘지 이장 자료와 사진, 초고 원고 및 노트와 벽면과 칸칸이 세운 가벽에 시「금강」,「산문시 1」,「껍데기는 가라」,「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의 시어들이 반짝인다.


밖에서 안으로, 안에서 밖으로 감상해도 연결되는 건축물은 시인이 바라보았던 논밭과 금강은 마을을 이루어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허위와 거짓의 껍데기를 버리고 알맹이만 남길 바라던 시인 정신을 느낄 수 있었던, 시인의 발자국이 쌓여 시의 길이 된 문학관을 나온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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