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평화

-빛의 벙커

by 김민재

“그림을 본다는 것은 내면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그림은 내면의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도달하기 힘든 지점까지 마음을 이끌고 심연의 낯선 곳까지 우리를 안내한다. 그러나 그림이 어떤 해답을 알려주거나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질문할 뿐이다.” 『나를 위로하는 그림』에서 우지현 작가의 말이다.

지금 내 마음 어떤 것인가. 주파수가 맞지 않아 지지직거리는 라디오의 잡음 같은 것.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막막함이 어떤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것. 무심코 던진 말들에게 깨지고 찢어져 생긴 흉터 지우는 것. 텅 빈 나를 보이기가 두려워 어딘가에 가두는 것.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 싶어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나선 여기. 빛의 벙커.


택시가 나를 부려놓고 간 텅 빈 주차장. 여유롭게 주변을 어슬렁거려 본다. 커피 박물관 정원 노태우 대통령의 벙커 기념식수 하귤 나무가 말을 건다. 작년 고흐, 고갱 전에 이어 올해 또 만나게 되어 반갑다고 한다. 춥고 삭막한 계절에 친구랑 다녀가더니 오늘은 혼자 우중충한 장마철에 일찍 도착하여 기다리는 시간 지루한지 묻는다.


여행에서 기다림이란 무엇일까. 생각과 물음은 괄호 안에 넣어두고, 모네의 작품 「양산을 쓰고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린 여인」과 모자를 쓰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린 나 기념사진도 찍어두고 입장한다.


관람객이 찍어준 사진


빛의 폭포가 실내에 범람한다. 지중해의 물결이 밀려온다. 푸름이 요동친다. 꽃들이 춤을 춘다. 선과 도형들이 출렁인다. 사방에서 잔잔하고 부드럽게 음악이 흐르고 어둠에서 쏟아지는 빛. 미디어아트는 클로드 드뷔시, 모리스 라벨, 조지 거슈윈, 빌리 홀리데이 등의 음악이 눈과 귀에 녹여진다.


인상주의에서 모더니즘까지. 르누아르, 모네, 샤갈, 피사로, 크로스, 시냑, 보나르, 발타, 망갱, 마르케, 블라맹크, 뒤피, 프리에스, 드랭 등 약 20여 명의 예술가와 명화. 처음 보는 화가와 작품이 많았지만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 그림이 주는 위안과 빛에 반영된 그림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듯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완벽한 평화. 평화란 모네가 가족과 행복한 한때를 그린「산책」이 아닐까. 모네의 빛이었던 아내 카미유와 아들 장의 모습과 양산을 쓴 풍경이 마치 들판을 떠다니며 흰 구름과 하나가 된다. 평화롭고 사랑 넘치는 모네의 행복했을 한때의 마음이 내게로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지중해 색으로 감싸 안은 라울 디피의 작품들은 내가 마치 프랑스의 한 부분에 서있는 착각을 하게 한다. 붉은 꽃으로 피어오르는 루이 발타 작품에서는 꽃밭에 앉아 있는 듯하다.

여기저기서 추억을 담기 위해 작품 앞에 포즈를 취하는 모습들 또한 명화 속의 주인공처럼 또 다른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파울 클레 음악을 그리다’의 작품은 공상적인 상형문자와 자유로운 선묘가 춤을 추듯 흘러간다. 마치 동심으로 돌아간 듯 스며든다.


‘파울 클레. 독창적인 회화 언어로 사물의 본질적이고 정신적인 의미를 전하려고 한 천재적인 추상화가. 우주 변화의 비밀을 깨달은 미술사에 큰 영향을 미쳤던 화가. 미술 작품이 사람을 즐겁게 하는 장식품 이상의 것인 통찰력을 주고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다음 백과사전의 설명이다.


그의 작품들이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 움직이는 빛과 색이 선으로 그어지다 도형으로 펼쳐진다. 음악이 그림을 밀어주고 그림이 음악을 받혀주면서 완전히 나와 마주한 시간.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본 시간. 기념품 샵에서 모네의「양산을 쓴 여인」구입한 컵 받침. 평화로운 마음으로 나온다.


셔틀버스는 잠시 휴식 중. 골목 돌담 길. 감귤나무 주렁주렁 매달린 초록 감귤에 지중해 화가들의 이야기를 걸어두고 간다. 먹음직스럽게 잘 익어가라는 당부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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