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치기 해변의 오후
나와 다른 시간을 가고 있는 바다와 한 몸이 되어 출렁거리는 성산일출봉. 그 옆 수마포 해변의 아삭 거리는 검은 모래 밟으며 걷는다.
일출봉 해안가 구멍 송송 일본 해군의 자살 특공기지 ‘제주 일출봉 해안 일제 진지동굴’ 돌이켜 아픈 자국 하나 남기고 가는 저 뜨거움의 물집은 근대문화유산으로 남겼지만 강제로 동원된 노동자를 가둔 시간임을 안다.
수평선을 끌어안고 광치기 해변 사암 위에 섰다. 투명한 바닷물에 잠긴 발가락은 짠물에 꿈틀거린다. 파도 거품이 몰고 온 젖은 해초들이 패 석위에 시름을 부려놓는다. 그러자 마중 나온 아이들의 손길에 끌려간다. 그 뒤를 따라 아이들 엄마의 푸릇한 마음이 모아지는 모습에 해초도 바다도 지그시 눈감아준다. 정겨운 모습 바라보다 바람에 미소 버무려 보내본다.
올레길 풀숲 누르며 가끔씩 무리 지어 가는 소요에 파도는 출렁임 가라앉히지도 못하고 꿈틀 거린다. 내 마음도 수피처럼 일어 수평선 위로 부유하는 해변의 오후.
바다 멍.
나를 알게 되는, 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는, 오롯이 나만의 시간.
잠시 생각을 접고 수만 번 제 숨을 조였다가 푸는 바다의 태동 바라보다 패 석위에 햇빛 놓아주고 나온다.
밀물 때 섬이 되고 썰물 때 육지가 되었던 곳. 조수간만 차에 따라 육지의 길이 열리고 닫혀서 ‘터진목’이라는 안내판을 끼고, 굽은 등 펴지 못한 채 못난이 감귤을 팔고 있는 할머니. 간절한 눈빛 외면하지 못해 감귤 한 봉지 사들고 비닐봉지 흔들흔들.
발걸음 건들건들 걷다 마주한 ‘제주 4.3 희생자 추모비’와 ‘제주 4.3 성산읍 지역 양민 집단 학살터 표지석’ 또 다른 근현대사의 아픈 상처 기억하라는 ‘제주 4.3 터진목 유적지’ 토닥토닥 기울어지는 태양 표지석에 박혀 글자들과 빙글빙글 돈다.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는 슬픔은 아프다.
일제 강제노역과 양민학살 역사의 아픔이 서린 ‘제주 4,3 사건’ 현기영 작가는『지상의 숟가락 하나』의 소설 작가의 말에서 4.3을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언어절의 참사’라고 말한다. 인간이 사용해온 언어로는 그 참사를 설명할 수도 묘사할 수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에?
? 표 하나 달고 숙소 가는 길 서쪽하늘은 오조 포구 앞바다에 붉은 피 수혈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