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공항 활주로
혼잣말은 오래 씹을수록 질겨진다고* 한다. 혼자 오랫동안 걷는 길도 처음엔 뜨거웠다가 걸을수록 차가워진다. 열정이 지겨워서가 아니라 나만 모르는 세상에서 오는 고독이 시시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구름 검게 뒤집어진 하늘 잠깐 열릴 때, 걸음 멈추고.
제주공항 활주로가 환하게 보이는 ‘도리로’ 갓길 줄지어 자동차들 멈춰 섰고, 혼자 온 사람은 팔짱을 끼거나 뒷짐 지고, 가족과 온 사람은 아이 목말 태우고, 둘이 온 사람은 서로의 마른 손 더듬으며, 온몸 휘어지듯 와르르 몰아붙이는 바람을 뒤집어쓰고 열 지어 이륙과 착륙의 비행기 바라본다.
착륙하려는 비행기마다 강풍에 흔들흔들 위태롭게 곡예를 한다. 이곳 이 순간만 느끼고 볼 수 있는 풍경이 아슬아슬하다. 아니 허공의 춤사위가 즐겁다. 비행기의 기울기에 따라 낮은 곳, 더 낮은 곳으로 가려는 빛과 빛의 각도와는 다르게 높은 곳 더 높은 곳으로 갈 수밖에 없는 출구 없는 문.
잠깐, 순간에 강풍은 활주로에 닿을 듯 비행기 한 대 닿지 않는 곳으로 올려 보낸다. 기장의 순발력이 돋보인 순간이다. 아쉽게 사진은 없다. 순간 이동 눈으로 잡기에도 부족한 빛의 속도다.
비행기 안의 승객들 얼마나 불안했을까 제주공항에 착륙한다는 안내방송에 그들만이 아는 여행을 창문에 기대어 설렘 껴안고 있었을 승객은, 곧 마주할 그리운 얼굴에 마음은 무지개로 피어올랐을 승객은, 말린꽃처럼 바삭거렸을 입술들을 생각한다.
승객들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선물로 제주 창공을 비행할 수 있는 행운의 시간이었을까. 굳게 동여매는 안전벨트에 제주의 하늘은 먹구름이고, 기장의 안내 말은 더 이상 향기롭지도 마음에 여운을 남기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튼 장마철 강풍이 가져다준 오직 이곳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준 행운의 선물 비행기의 곡예다.
몇 년 전 로마행 비행기는 난기류로 인해 놀이기구 탄 듯, 심하게 출렁거려 비행기 멀미로 고생했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한잔 거나하게 취한 취객처럼 심하게 흔들릴 때마다 이대로 추락한다면, 우리는 어디에 가 있을까 대답 없는 질문을 던졌고 바위보다 두꺼운 불안을 끌어안았던 그때의 나.
지금 저 비행기 안 승객들 또한 감정의 도형은 동그라미였다가 세모에서 다각형으로 그려졌다 지워졌다 하였을,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는 비행기에 내 목은 자꾸 길어진다. 깨금발로 착륙하지 못한 비행기를 기다리다 지친 사람은 자리를 떠나고, 지나가는 사이 사진을 찍고, 사진에 찍히며 남겨진 발들은 서성이고 있다.
강한 바람에 풀잎들 쓰러진다. 착륙하지 못한 비행기는 어디까지 갔을까 어떤 이는 구좌리 창공에서 회항할 거라고, 어떤 이는 더 멀리 갔을 거라고 소곤거리는 말이 바람 따라 전해진다.
착륙할 때 활주로에 부딪히는 비행기 바퀴의 고무 타는 냄새는 별로이지만, 한 마리의 나비였다가 때론 똑 쏘는 벌이 되기도 하는 이륙할 때의 속도와 착륙할 때의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모습은 참 좋다. 항공사마다 비행기의 옷 색깔을 구별하는 즐거움에 젖어 있을 때 착륙하지 못했던 비행기가 잠시 방황을 끝내고 돌아와 가볍게 착륙한다.
비행기 안에서 불안하였을 승객들도 내 마음도 고요해질 때쯤.
*강혜빈의 시「라넌큘러스」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