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자도 편지·3

- 그 일주일

by 김민재


셋째 날

J선생님의 고향 추자도. 섬을 품은 아침 바다가 보여주는 상큼이 다른 빛의 시간을 꾸미고 있는 듯합니다. 평화롭고 아름다워서 슬프다는 문장을 풍경이 쓰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소개한 숙소 '유창민박' 사장님 부부와 고구마 밭에 왔습니다. 여행지에서 현지인과 현지인처럼 지낸다는 게 쉽지 않은 낯가림이 심한 내가 선생님 덕분에 함께 할 수 있어 고마운 마음 한 가득입니다.


하늘의 해와 구름은 숨바꼭질 하고 바다는 여전히 강풍에 파도가 높습니다. 소금바람에 고구마 순들이 빛을 잃었지만 고구마는 튼실합니다. 해풍의 시간이 키운, 파도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고구마를 수확하는 기쁨이 묘하게 다가옵니다. 마치 내가 심고 키운 농산물처럼 애틋하기도 합니다.


20211018_065931.jpg 숙소앞 정자
20211017_075724.jpg 추자항의 하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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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했을 멸치들 소금에 덧칠하고 세월에 뭉개져 선명한 액체로 거듭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멸치 젓갈 통들. 그 사이에 앉아 바람과 파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윤슬에 빛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고구마순 줄기를 따고 있습니다. 손끝에서 고구마순 넝쿨에 달린 순들이 음표로 톡톡 떨어집니다. 노래는 되지 못하고 대신 빨래 줄에는 옥양목 천이 바람에 펄럭이며 가락을 맞추고 있습니다. 멸치가 투명한 액젓으로 거듭난 흔적이지요.


밭에서 수확한 고구마 한 솥. 김이 무럭무럭 피워 오릅니다. 맛있게 먹고 산책길 나섭니다. 영흥리 모자이크 벽화 골목 지납니다. 다른 벽화들은 벽에 그려져 있지만 여기는 모두 모자이크로 장식된 벽화입니다. 터키 제우그마의 모자이크 박물관 벽화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겨움이 묻어나는 여기도 선생님의 등하교길 이었겠지 하는 생각에 꼬맹이 적 선생님을 그려보며 신나게 걷습니다.


20211017_092442.jpg 고구마밭과 신양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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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배기 동네 어르신 오르막길 오르고 내리고 운동중인가 봅니다. 추자등대 가는 길 물으니 추자 처사각 왼쪽으로 가면된다면서 “왜 여자혼자 산길을 가느냐고, 남편이랑 같이 다녀야 위험하지 않다”고 염려하십니다. 괜찮다고 혼자서도 잘 다닌다고 걱정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조심히 다니겠다고 어르신을 뒤로하고 그리 깊지 않은 산길을 오릅니다.


산속은 빛이 들지 않는 나무들의 세계입니다. 산새들이 소란스럽습니다. 조용한 산길 그들만의 시간을 방해하는 방문객 내가 지나 가니 소란해질 수밖에요. 천천히 감상하며 오르고 싶어도 너무 음침하다보니 마음이 발걸음이 자꾸 뒤뚱거리게 합니다. 내가 빛을 옮겨 올수도 없고, 헉헉거리며 달리다보니 바다가 열리고 표지판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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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유년시절 친구들과 수없이 오르내렸을 ‘큰 산’에 자리한 추자도등대는 2005년 6,7m의 작고 오래된 등대를 철거하고, 1980년 2월 27일 점등된 추자도등대는 등탑의 높이가 24m로 사무실과 홍보관 등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선생님도 고향에 다녀올 적마다 등대와 눈인사하였겠지요.


코로나 19로 홍보관은 테이프로 입구를 막아 들어갈 수 없었지만 등대 입구에 ‘알렉산드리아 파로스 등대’ 모형과 추자도 모형도가 바다를 지키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자 프톨레마이오스는 스스로 이집트의 왕으로 즉위하여 자신을 구원자 라 칭하고 알렉산드리아 항구 부근의 파로스 섬에 등대를 건축하도록 명령하였다는 파로스 등대. 추자도 등대와 어떤 상징성을 갖는 걸까. 아마도 BC 280년 무렵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에 의해 파로스 섬에 세워진 것으로 등대의 효시라는 상징성 때문 아닐까 혼자 질문하고 대답하고 사방이 환한 바다색을 붙잡아 눈이 시리도록 바라보다 한 500여개쯤 되는 나무계단을 내려옵니다.


등대는 항로 표지 중 하나인 불빛 색깔, 모양 외벽 색깔, 음향, 전파 등을 이용해 항구의 위치와 장애물에 대한 경고, 항로 한계 등을 항해사에 전달한다고 하지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등대가 생명 줄이었을 추자도 등대는 유인등대라 합니다. 바다 멀리 빛이 닿아 어부들의 나침판이 되는 등대. 나는 주변사람들에게 얼마나 빛이 되는 사람이었을까 생각하다 부끄러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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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7_154113.jpg 알렉산드리아 파로스 등대 모형
DSC_5819.JPG 추자도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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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7_153754.jpg 등대에서 바라본 추자항

일요일 오후를 통과하여 후포 해안가 정자에 앉아 있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보는 노을이라고 상상하며 다른 시간으로 가고 있습니다. 무수히 많은 곳에서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있지만 이곳의 일몰이 따른 방식으로 다가오는 것은 선생님의 유년 시절이 여기에 있어서겠지요.


20211017_164903.jpg 후포해안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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