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자도 편지·4

- 그 일주일

by 김민재


넷째 날

혼자인 법을 알지 못하면 기대고 바라고 매달리고 실망하고 미워하고 다시 기대게 됩니다. 그대 없이도 혼자 잘 노는 나는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겠지요. 아니 괜찮은 사람입니다. 나는.


그대는 무슨 자신감? 하고 묻겠지요. 그래요 혼자 다니는 숲길은 무섭고 두렵습니다. 오늘처럼 독산 절벽 길 혼자 오르는 날은 더욱 불안합니다. 그래도 마음 근육은 어느 정도 붙은 듯해서 도전해봅니다. 아니 용기 근육을 기르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네요. 용기가 가끔은 무모해질 수도 있겠지만.


이틀이나 배가 뜨지 않아 관광객이 전혀 없어 텅 빈 독산 절벽 길 오릅니다. ‘나바론 하늘길’ 표지판 따라 나무계단 숨 가쁘게 올라서면 보이는 것들 아득한 절벽입니다. 안전하게 나무계단과 말뚝에 철재 난간이 세워져 있지요.

20211018_070143.jpg 추자항의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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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0_110555.jpg 독산 절벽 (나바론 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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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낚시 여행객이 영화 ‘나바론 요새’에 나오는 절벽과 닮았다고 해서 부르게 된 명칭이지만, 이곳에서는 ‘독산 절벽’이라 부르길 바라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 안내 책자와 표지판도 나바론 하늘길이 아닌 독산 절벽 길로 안내판이 교체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독산은 돌산의 추자도 방언이라고 하지요. 해발 129.7m로 하늘을 향해 치솟을 듯 한 이 길은 수직 절벽의 산길을 트레킹 코스로 개발하였다고 합니다.


하늘과 바다와 절벽이 하나가 되어 경계가 없는 듯합니다.


색에 멍들어 버린 바다,

빛에 물들어진 하늘,

색과 빛에 바래어진 나.

발은 절벽 위에 있고,

눈동자는 팽팽한 수평선 위를 걷고 있습니다.


그대가 버리고 간 시간도

내가 놓치고 온 삶도

모든 것들이

풍경으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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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_5764.JPG 나바론 하늘길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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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계 미국인 작가 줌파 라히리는 “머물기보다 나는 늘 도착하기를 아니면 다시 들어가기를 아니면 떠나기를 기다리며 언제나 움직인다.” 소설 『내가 있는 곳』에서 말합니다. 나는 늘 어딘가로 떠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내 사주엔 역마살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가 봅니다. 생각이 많아 떠날 때도 있지만 생각 없이 떠나는 때가 더 많은 걸 보면 역마살이 많은 거겠지요.


가파른 데크 계단 어디쯤에서 만나는 말머리 형상의 말머리 바위는 그리움이 많은가 봅니다. 먼바다를 바라보며 끝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대책 없이 멋있어 보이는 건 무슨 조화일까요. 그래서 말머리 바위와 나란히 서서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봅니다. 이런 내 모습을 보았다면 그대는 대책 없이 청승맞다고 하였겠지요. 그래요 난 적당히 고독하고 충분히 청승맞고 적절하게 고립을 자처하는 그래서 그대와 나는 함께할 수 없나 봅니다.


‘고려 말 최영 장군의 2만 5천여 군대가 추자에 머물렀을 때 1천 마리에 가까운 말들도 함께 머물다 갔다고 합니다. 그때 어쩌다 말 한 마리가 남겨졌거나 최영 장군이 추자도를 지키라고 일부러 남기고 떠나버려 장군을 그리워하다 굳어 말머리 바위가 된 것 같다’고 추자도 안내 책자는 이야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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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바라보면 아득 뒤 돌아보아도 아찔 잠시 숨 고르기 하라는 정자가 절벽 위에 떠 있는 듯합니다. 시원한 바람에 기대어 봅니다. 해풍과 염분을 버티며 꿋꿋하게 제 얼굴 뽐내고 있는 남구절초 바닥을 깔고 앉아 계절을 알리고 있습니다. 정자를 뒤로 수직의 계단을 내려옵니다. 아득과 아찔 사이에 바다와 낭떠러지가 있습니다.


참 굴비 조형물이 하늘에서 헤엄치고 있습니다. 조기의 고장 답지요. 바닷속이 답답하여 하늘에서 노닐고 있는 조기일까요. 그 조형물 건너 코끼리를 닮은 듯 닮지 않은 듯 코끼리 바위를 지나며 오르락내리락 흘린 땀 훔쳐보라는 나무의자에 앉았습니다.


오늘은 제주도에서 배가 들어왔나 봅니다. 혼자 만끽하는 자유를 두세 명의 관광객에게 내주고 있습니다. 험한 절벽 계단 오르는 일 쉽지 않은 듯 그들은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갑니다. 의자에 앉아 바라보는 수평선 덥지도 춥지도 않은 멍 때리기 좋은 날씨입니다. 멀리 한라산 주변을 서성이는 흰 구름들 손짓합니다. 휭 하니 건너오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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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8_110513.jpg 멀리 보이는 한라산
DSC_5772.JPG 코끼리 바위
20211018_110832.jpg 코끼리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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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8_113226.jpg 한라산

어제 만났던 추자도 등대 지나 내리막 올레길 바람케 쉼터 지나 발전소까지 냅다 달립니다. 바쁠 것도 없는 여행 놀며 쉬며 다녀도 충분한 시간인데 왜 자꾸 달리는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넘어지거나 미끄러지면 다치기 쉬운 산길을, 스스로 자처한 고독이 고립되었다는 두려움으로 생각이 미끄러진 건 아닐까.


쉬엄쉬엄 걸어야 들을 있는 풀잎 소리

가끔은 멈춰야 제대로 품을 수 있는 풍광처럼

인생 또한 그러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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