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 시급 8만 원의 비밀
내 이른 퇴근과 남편의 퇴근 사이의 시간을 활용해서 틈틈이 부업으로 7명의 학생들에게 영어 중국어를 가르친다. 과외는 보통 7시에 끝나고, 일주일 한두 번은 9시에 끝난다.
광주, 경주, 창원, 김해, 서울, 경기.. 차로 최소 30분부터 최대 5시간 거리에 있는 아이들이지만, 세상이 좋아져 줌으로 어디서든 늘 같은 시간에 만나 공부할 수 있다는 이점을 최대 활용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내 과외 시급이 8만 원 상당이다. 요즘 꿀과외 시급이 보통 5만 원이라 하니 8만 원이면 과외계의 샤넬이라며 남편이 무척 높여준다.
그러나 난 그 값어치 이상의 교육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일단 영어 한 과목이 아니라 중국어도 동시에 가르칠뿐더러, 수업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숙제관리를
정말
철저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숙제관리에 들어가는 노고까지 다 합치면 솔직히 어떤 학생들에게는 돈을 좀 더 받아야 마땅하다. 허허.. ^^
오늘은 평소 내가 아이들 숙제를 관리하는 법을 기록해보려 한다.
내가 학생들에게 내주는 숙제는 다음과 같다.
크게 세 개.
1. 읽어야 할 분량(영/중)을 매 수업마다 내어주면 학생은 그 분량을 매일 오전 2번, 저녁 2번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일요일 빼고 매일 한다.
2. 매일 1-2장의 단어장을 쓴다.
3. 매일 영어 1 문장씩 응용한다.
숙제 소요시간은 아이들마다 천차만별인 게 신기한데, 정직하고 충실한 아이는 아침저녁으로 매일 총 1시간을 할애하고, 대부분의 효율적인 아이들은 30분 안에 끝낸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 숙제를 스스로 할까?
놉.
매일 한 아이에게 2통 이상의 전화를 한다. 총 7명이면 최소 15통의 전화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
그렇다고 모두가 내 전화를 기다렸다가 숙제를 올리는 건 아니고, 일곱 중 두세 명은 늘 일정한 시간에 숙제를 스스로 해서 올리는 편이다. 뒤에 분명 엄마의 조력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스스로 할 줄 아는 기특한 학생들이다.
하지만 나머지 서넛은 학교 다녀오는 시간 맞춰서 내가 전화를 해야 되고, 자는 시간 전에 전화를 해줘야 한다. 1년 했으면 이제 좀 혼자 숙제 올릴 때도 됐는데, 아직도 내가 전화를 해야 겨우 올린다.
그렇게 7명의 숙제가 모두 채워지면 난 그때부터 맘 편하게 자유시간을 즐길 수 있다. 그 시간이 보통 밤 11시이긴 하지만..
난 보통 전화로 아이들에게 이렇게 닦달한다.
1. 아이들이 학교 갔다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전화를 한다. 전화 한 통은 10초도 안 걸린다. "OO아~, 학교 잘 다녀왔어? 응 고생했어. 집이지? 선생님 녹음 숙제 언제까지 올릴 거예요? 4시? 응 알았어. 기다리고 있을게. 얼른 하고 쉬세요~~"
2. 과외 마치고 운동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보통 밤 10시 15분이다. 그때까지도 숙제를 안 올린 아이들에게 전화를 쭉 돌린다. "OO아, 뭐 해? 숙제 아직 뭐 못했어? 녹음이랑 단어장? 아니 여태 안 하고 뭐 했어요~ 얼른 숙제하고 빨리 쉬어요. 10시 40분까지 기다릴게요."
3. 10시 40분까지 안 올린 경우에는 다시 그 학생에게 전화하거나, 숙제 안 올린 학생 부모님들께 전화를 일제히 돌린다.
4. 전화를 씹는 아이들도 더러 있다. 2-3번 걸어도 안 받으면 어머님 혹은 아버님께 전화를 한다. "네~ 아버님! 에고 네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OO이랑 전화가 안 돼서요~ 저한테 전화 좀 달라고 해주세요!" 그럼 1분 안에 아이로부터 전화가 온다. "OO아, 전화 왜 안 받아요~ 선생님 숙제 11시까지 기다릴게요. 다 올릴 때까지 전화할 테니 얼른 끝내세요."
5. 한다 꼭 한다 약속해 놓고도 절~대 안 올리는 양치기 소년 같은 아이가 하나 있다. 그 친구에게는 이제 그냥 전화를 켜둔 상태에서 읽으라고 한다. 책 펴는 시간 10분 기다려주고, 전화 중에 15분 정도 읽는다. 난 전화 켜놓고 음소거해 두고 내 할 일 한다.
이래서 8만 원이라는 시급이 정확하게 산출된 금액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 노고는 그 이상으로 들어가 있다.
내가 이렇게 철저히 숙제를 관리하는 이유? 나의 영어 중국어 실력을 여기까지 끌어올려준 엄마의 노고를 그대로 본받은 것이다.
외국어의 기본을 단단히 다지는 그 과정이 없었더라면? 종합학원에서 문법으로 힘겹게 배운 영어로 시험은 좀 잘 봤을지언정 말로 자유롭게 써먹진 못했을 것이다. 중국어나 스페인어는 꿈도 못 꿨겠지.. 수능 치면 다 까먹는 영어. 초급회화부터 다시 배우느라 돈 또 들고 고생 꽤나 했었을 거고.
나도 초중학교 때 매일 읽어야 하는 영어 정말 귀찮았고, 그 과정 다 겪어봤기 때문에 지금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공감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냥 조금 귀찮았던 것뿐이지 나처럼 힘들이지 않고 쉽고 재밌게 영어 공부했던 친구들이 잘 없었다.
내가 내주는 숙제 양이 많아 힘들다 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그저 매일 똑같은 걸 반복해서 읽어야 되는 게 귀찮은 것뿐이다. 그게 힘들다고 생각한다. 힘듦으로 가장한 귀찮음이다. 이게 힘들다면 문법이나 시험대비해 주는 학원 가서 한두 달 시달려봐야 아.. 시인 선생님이랑 영어 중국어 다시 할래..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아무리 사교육이어도 어머님들의 조력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나에게만 전적으로 맡겨두기엔 교육에 한계가 있다. 내가 왜 이러한 방식으로 가르치는지, 왜 아이들이 숙제로 매일 똑같은 걸 읽어야 하는지 이유를 정확히 아셔야 하고, 아이들이 힘들다고 징징대도 뒤에서 뚝심 있게 버텨주셔야 하고, 나를 믿고 선생님을 대변해 주실 때도 있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휘둘려 게으름을 몇 번 눈감아주면 그때부터 나도 고생 시작이고, 아이들도 다시 습관 잡기 힘들고, 숙제를 빼먹는 만큼 어머님의 교육비도 그만큼 낭비되는 것이다.
요즘 드는 생각은.. 어머님들이 내게 아이를 맡기면 으레 나만큼은 잘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교육비를 꼬박꼬박 내시지만 숙제 관리는 너무 손을 놓고 계시니 아쉬운 마음이 크다.
원어민 있는 학원에 보내면 아이가 저절로 영어 말을 잘하게 되리라는 허황된 기대처럼, 내가 잘하니 아이들이 똑같이 잘하리라는 기대가 반영된 것 같다.
스탬프 찍듯 수업만 출석하고 시간만 때우고, 본인이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이 없으면 교육비 중 3분의 2가 고스란히 땅에 버려지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여튼 이렇게 나처럼 알뜰살뜰 숙제도 관리해 주는 선생님 만난 내 학생들과 어머님들은 정말 행운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숙제를 올릴 그날까지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