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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Oct 10. 2020

운전을 배우길 잘했다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는 즐거움


 대학시절, 졸업 전에 미리 운전면허를 따두자던 친구들과 함께 운전학원을 다녔다. 기능 연습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실수담이나 온갖 수다를 나누느라 늘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도로주행을 하면서는 교외 휴게소까지 무사히 도착한 기념으로 휴게소 커피 한잔에 기뻐하기도 했다. 다행히 시험도 무사히 통과해서 1종 보통 면허를 따게 되었다. 그렇게 운전면허를 따는 모든 과정들은 아주 유쾌한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실제 도로에서 운전하는 것은 무척 긴장되는 일이었다.


 첫 발령을 받고 나니 아버지께서 도로연수를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몇 번 아버지 차를 몰게 되었는데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모른다. 무수히 많은 도로 위의 차들에 섞여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는 것 같은 느낌.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대로 한복판에서 시동이 꺼져서 진땀을 흘렸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집으로 들어가는 오르막길도 문제였다.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차를 몇 번이나 멈추었던 일 때문에 항상 언덕길을 오를 때는 긴장이 되었다. 차선을 바꾸는데도 시간이 한참 걸려서 모든 길들이 일직선이면 좋겠다며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러다 실제로 운전대를 잡는 것은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서였다.


 한 달간 들어야 했던 연수를 듣게 되면서 운전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연수원까지 차로 가면 30분 정도면 갈 수 있었지만 집에서 연결되는 대중교통이 없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집이 먼 친구들은 연수원 근처에 방을 잡고 다니기도 했는데 차로 30분 거리는 방을 얻기도 애매한 거리였다. 그 애매한 거리 덕에 운전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연수 첫날, 일찍 집을 나섰다. 주행은 예전보다는 나아졌는데 문제는 주차였다. 연수원 주차장에 들어갔는데 이리저리 차를 넣어보다가 전면주차도, 후면 주차도 못하는 상태로 멈추고 말았다. 그러다 지나가시는 분께 “죄송하지만 주차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렇게 부탁을 드려 주차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을 연수원까지 차를 가지고 다니면서 조금씩 운전에 대한 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꽤 오래 주차 때문에 애를 먹었다. 후진주차를 하는 동안 주차장 기둥을 여러 번 박았으니. 그나마 다른 차는 박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그야말로 사이드 미러로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와의 싸움이었다.


 그렇게 운전을 익히고 나니 서서히 도로 위에서 어떤 질서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신호 규칙을 따르며 각자의 목적지를 찾아가는 차들 사이에서 너무 겁먹을 것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너무 익숙해져서 긴장의 끊만 놓치지 않는다면 그 거대한 흐름의 규칙과 질서에 편승하여 나 또한 나만의 목적지를 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 목적지는 삶의 우연과 필연에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운전을 하다가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때는 자주, 벅찬 마음이 들었다.


 몇 해 전 제주도로 한 달 살기를 하러 간 적이 있다. 한 달간의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짐이 꽤나 많았다. 또한 한 달 차량 렌트 값도 상당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 들어온 생각은 “내 차를 가져가 보자”였다. 차에 한달살이에 필요한 짐들을 실어 보내고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가면 되겠다 싶었다. 알아보니 제주항까지 차를 선적해서 보내는 절차가 어렵진 않았다. 그래서 차에 요가매트까지 짐을 꼼꼼히 실어서 제주도로 보냈다. 다음날,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내 차를 찾으러 가는 것이었다. 바로 택시를 잡아 타고 제주항으로 가니 꼬박 하루 동안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차가 보였다.


 그 후로 한 달 동안 매일 운전해서 다녔다.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내가 좋아하는 길을 달리는 기분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특히 평대에서 성산까지의 해안도로의 바다와 꽃들이 너무 아름다워 시간은 더 걸릴지라도 일부러 해안도로로 달렸다. 옆으로는 맑고 푸른 바다가 일렁이고 차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해안을 끼고 구불구불 이어진 도로를 달리다가 아름다운 포인트를 만나면 잠시 차를 세워두고 눈으로 바다와 하늘을 담았다. 어떤 날은 해가 지기도 했고, 어떤 날은 해가 떠오르기도 했다. 또 어떤 날엔 파도가 높이 일었다.


 해안 도로만 다닌 건 아니었다. 중산간 지역의 도로들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주는지. 한라산을 중심으로 그 주변으로 촘촘하게 얽혀있는 제주의 지방도로 너머로는 푸른 초원, 한가로운 말들, 무성한 밭들, 삼나무와 편백나무들이 보인다. 그 사이로 난 2차선 길을 달리며 차 안으로 상큼한 숲의 향기가 들어올 때의 기분은 꼭 명상 테라피를 받는 것 같았다. 특히 용눈이 오름과 아부 오름 등 제주 동부 지역에 있는 오름을 자주 다녔는데, 오름 가는 길에 너르게 펼쳐진 푸른 억새를 잊지 못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키 큰 풀들 사이로 지나가는 일은 진정한 힐링의 시간이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자유롭게 다니는 일들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 주는지. 자주, 운전을 배운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생각한다. 물론 내비게이션이 있어 목적지를 찾는 것이 더 수월해졌으니 안전하게 원하는 곳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 길에서 새롭거나, 익숙하거나, 가슴 뛰거나, 편안한 자유를 만나게 될 것이다.


 


 

해안 도로를 달리다 보면 어떤 날에는 이렇게 해가 지는 순간을 만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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