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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Nov 08. 2020

강릉 바다 커피와 산사의 쌍화차

가을의 한가운데로. 강원도 당일치기

 해마다 가을이면 늘 가고 싶은 곳이 있다. 바다와 산이 아름다운 강릉과 그 주변 도시들이 바로 내 마음이 향하는 곳이다. 특히 날 좋은 날, 따뜻한 가을볕을 맞으며 해변 모래 언덕에 앉아 있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바다가 들려주는 지난 계절의 다소 쓸쓸한 노래를 찾아 듣는다. 그렇게 바다의 노래를 듣다 보면 물빛은 더욱 파랗게 되고 모래의 빛깔은 더욱 싱그러워진다. 그리고 따스한 가을볕이 서서히 피를 데워준다. 그런 행복한 기억의 순간들이 매년 가을이면 나를 소환한다. 아무래도 가을 바다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 같다.


  작년에 강릉 당일치기를 한 이후로 자신이 붙어서였을까. 이번에도 당일로 바다를 보러 가기로 했다. 다녀오는 길엔 고즈넉한 산사의 가을까지 만나기로 하고서. 큰 그림은 경포 해변과 월정사다. 일단 부지런히 달려가면 8시. 초당 순두부 오픈 시간이다. 언제나 그랬듯 따뜻한 순두부로 아침을 먹고 경포 해변 모래 위에 앉아 오전의 그 은근한 가을볕을 모으며 바다를 눈에 담아야지. 다음엔 인절미 소보루와 김밥을 사서 월정사로 넘어가면 가을 단풍이 드리운 산사를 만나겠지. 이런 일정을 계획하고 새벽 다섯 시쯤 집을 나섰다.



새벽에 강릉으로 가는 길. 가로등이 켜진 도로와 여명이 밝아오는 풍경들.


  새벽을 달리는 기분. 미지의 세계로 항해를 떠나는 것만 같다. 차가운 새벽 공기는 순간 긴장을 안기고, 망망대해에 떠있는 섬 같은 차창밖의 풍경들에 마음이 설렌다. 그리고 밤새 어두운 도로를 밝혔을 가로등이 일제히 꺼지기 시작하면 서서히 여명이 밝아온다. 그 하늘빛은 또 얼마나 아름답던지. 새벽에 길을 나선 건 참 잘한 일이었다. 일찍 나선 덕에 도로 정체 하나 없이 바다에 이르렀다.



강릉은 편의점 커피도 맛있다

 

 이 가을날, 얼마나 만나고 싶던 바다인가. 인적 드문 해변엔 아침 햇살에 모래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바다의 다채로운 파란빛들은 끊임없이 밀려와 파도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바다는 언제 보아도 좋다. 해변 뒤에 있는 편의점에서 원두커피를 사다 준 옆지기 덕에 바다를 마주 보고 커피를 마셨다. 강릉은 편의점 커피도 맛있다. 바다와 함께 마시는 커피라 그런가. 원두의 회전율이 높아서 그런가. 좋은 원두를 쓰는 걸까? 강릉의 편의점 커피가 왜 맛있을까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보았다.



 

 지난해 여름 저 바위틈에서 작은 게를 꽤나 잡았던 아들은 이번에도 게를 잡을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파도가 세서 바위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그래도 아이는 작은 생명들을 찾았다. 멀리서 밀려온 바닷물이 바위와 바위 사이에 머물렀다 나갔다. 많은 생명을 품고 있는 바다. 물뿐만 아니라 해변의 모래사장에도 아이를 기다리는 생명들이 있었다.


경포의 갈매기들. 서해와는 또 다른 느낌.

  

 갈매기 한 무리들이 해변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제히 모래사장에서 날개를 접고 서서 먼바다를 보던 갈매기들. 꼬마는 갈매기를 보더니 새우깡을 사달라고 조른다. 저도 먹고 갈매기들에게도 주고. 새우깡 한 봉지는 금방 끝이 났는데 신기한 것은 이곳의 갈매기들은 과자를 줄 때마다 모래사장에 나란히 서서 받아먹고는 아이의 손끝만 보고 대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서해의 갈매기들은 새우깡을 하나씩 던져줄 때마다 ‘나이스 캐치’를 외칠 정도로 공중에서 새우깡을 받아먹는 모습이 꽤 적극적이었는데 이곳의 갈매기들은 나란히 나란히 서서 먹는 모습이 사뭇 달랐다. 먹고 나서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한가로이 일광욕을 계속 즐겼다. 그리고 우리도 함께 햇살을 누렸다. 아무런 대가 없이 마냥 쏟아지는 그 햇살은 그저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열한시가 넘었다. 인절미 빵을 사러 베이커리에 갔더니 오픈 시간이 12시. 기다렸다 빵을 살까 하다가 바로 김밥을 사서 바로 평창으로 넘어갔다. 당일치기 여행에서는 적절한 시간 분배가 중요하니까.


월정사의 단풍들

 

 월정사에는 이미 깊은 가을이 내려와 있었다. 우리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강릉에서 사 온 김밥을 나눠 먹었다. 계란말이 김밥이었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여섯 줄만 산 것이 무척 아쉬웠다. 붉게 물든 단풍을 바라보며 차에서 나눠 먹는 음식은 뭔들 안 맛있었을까 싶다.

나뭇잎이 그라데이션으로 물들어. 정말 예쁘다!

적당히 김밥을 나눠먹고 월정사 입구로 걸어 들어가는데 곳곳에 색이 곱게 변한 나뭇잎을 보고 아이들이 감탄한다. 그러고 보니 전부 그라데이션으로 물들어 있다. 붉고, 더 붉고, 덜 붉은, 더욱 덜 붉은 것들이 모여 함께 가을을 나고 있었다.





 신라 선덕 여왕 때 지어졌다는 천년고찰 월정사. 산사를 감싸 안은 산들은 수채화를 그린 것처럼 것처럼 은은하게 가을빛을 받고 있었다. 아이들과 팔각구층석탑의 층수를 세보며 적광전에 올라가니 적광전의 단청이 문득 눈에 들어온다. 산사의 가을과 여러 빛깔로 아름답고 단정하게 그린 단청이 무척 잘 어울렸다. 이 산사는 천년이 넘는 가을을 만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테지.



산사에서 마시는 쌍화차

 

 산사 입구에는 유기농 빵과 차를 파는 카페가 있었다. 따뜻한 쌍화차가 생각나 들어갔다. 마침 야외 테라스가 비어있으니 마시고 가면 딱이다. 산사의 쌍화차에 비치는 가을의 나무와 잎 그림자. 몇 점 떠 있는 조각 대추들이 꼭 단풍 같다. 달콤하고 따뜻한 대추차. 산사의 대추차는 왜 맛있는 걸까. 맑은 공기 덕분일까? 대추를 달일 때 특별한 약수를 쓰는 걸까? 이런저런 이유를 생각해보며 대추차 한잔에 담긴 가을을 읽어보았다.


 이제 슬슬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다가오고.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1km 남짓의 전나무 숲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가며 주차장까지 돌아서 가기로 했다. 우리는 천천히 키 큰 전나무 숲을 걸었다.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 중 하나라는 월정사 전나무 숲길은 천년의 숲이라 그런지 너그럽고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졌다.(참 이곳은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이기도 하더군요) 곧게 뻗은 전나무 옆으로 오대산의 맑은 물들이 흐르고, 물과 함께 우리도 따라서 걸어내려갔다.





 어둑어둑 해가 지고, 새벽에 여명을 맞은 것처럼 저녁에 노을을 만나며 돌아가는 길. 가을이면 꼭 가고 싶었던 곳, 가을이면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어서 감사했던 날이 그렇게 지고 있었다. 이 감사한 가을 덕분에 아마 내년에도 그렇게 소환되지 않을까. 바다의 커피에서 산사의 쌍화차로 이어지는 그 여정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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